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15살 쯤이었어.


그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 때는 그림을 그렸지.


그 전에는 피아노를 치기도 했었고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 나이대 애들이 형식적으로 배우는 교양 비슷한 걸로 학원을 다녔어.


결국 다 그만뒀지만.


재능에 벽을 느낀 것도 있었지만, 나는 예술을 하면서 그 행위가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림은 한계가 있었고, 피아노도 마찬가지야. 정형화된 형식이 나를 가둔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찾은 게 글이고.


우리 집안은 흙수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 사는 편도 아니었고,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어. 너무 흔한 서사긴 한데, 여튼. 나는 그런 집안에서 장남으로 자랐어. 아는 애들은 알겠지만, 가부장적인 집에서 장남으로 사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야. 아버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숨이 막혔고, 어머니는 내 여동생을 사랑하지, 나를 사랑하진 않았어. 나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했고, 때문에 나는 내 진짜 감정을 꾹꾹 삼켰어.


공부는 어느 정도 괜찮게 했지만, 그게 완전히 무너진 건 중학생 때부터였어.

중학생 1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학생이 된 나를 몰아치고, 몰아쳤어. 제대로 된 인간 관계는 없었고, 그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언제나 가면. 또 가면을 쓰고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하다 보니까, 정신이 우울해지고 매 순간순간이 고통이 아닌 순간이 없었어.


자해를 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그냥 내일 아침 고통없이 심장마비로 죽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어. 어머니는 내 자해자국을 보고 나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했고, 나는 당연히 그걸 완강히 거부했어. 그냥, 내가 정신이 나갔단 걸 믿고 싶지 않았나봐. 나도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걸 알았는데, 병원으로 가서 의사에게 정신병이란 걸 듣는 순간 나는 정말 정신병자가 되는 셈이잖아. 나는 그게 싫었어.


그래도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니까 결국 상담을 받았어. 그래도 상담사한텐 편했어.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들어줬으니까. 나중엔 이 상담사도 날 버리고 외지로 가서, 날 대한 그 모든 태도가 돈에 의한 거란 걸 깨달아서 우울해졌지만, 어쨌든 상담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 글을 썼어. 꾹꾹 눌러놨던 감정들을 글로 쓰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아. 

여튼 그렇게 어찌저찌 고등학교로 올라가게 되고, 나는 문창과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하게 돼.


그래서 1학년 때부터 문창과 입시 학원을 다녔어.

선생은 내 글에 막연한 분노가 있다고 했어.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이야.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은 우울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우울보단 분노에 더 가깝거든. 어쨌든, 나는 거기서 매주 글을 썼어. 3년 동안.


인간관계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었어. 중학생 때 왕따를 당하고, 상담사마저 나를 버리니까 무서워서 사람을 깊게 못 사귀겠는 거야. 늘 형식적인 대답에 형식적인 대화만 간간히 나누고,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그런 건 없었어. 계속 가면을 쓴 거지. 내 본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걸 냉담하게 반응하는 순간순간들이 너무 괴로워서, 그냥 사람이랑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어.


많이 외로웠고, 괴로웠어. 그럴 때마다 글을 썼어. 의존할 사람이 없어서 글에 의존했어. 그렇게 3년을 쓰니까 실력은 동급생에 비해서 많이 뛰어나졌어. 자기 자랑 같지만 사실이야. 내가 생각하기에도, 주변인과 선생이 생각하기에도 내 글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사이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지난 2019년은 입시 시험만 준비했어.


나는 나를 구속하는 형식이 싫다고 아까 이야기 했지? 그 말 그대로, 문창과 입시에도 정답이 존재해. 되도록 긍정적이고, 밝게 끝나는 엽편들을 선호하는 편이야. 반면, 나는 끝이 없는 비극을 좋아했어. 긍정적이고 밝게 끝나는 소설들은 삶을 기만한다고 생각했어. 생각해봐, 당장 이 순간에도 세상엔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과 약자들, 그리고 무수한 비극들이 생겨나는데, 그걸 외면하고 희극에만 몰입하는 게 어떻게 삶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가 있겠어? 그런 글은 아편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틀에 나를 맞추는 건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견뎌냈어.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한 이해자를 찾고 있었고, 문창과에 간다면 그 이해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집착 하나만으로 글을 깎아내고, 깎아냈지. 그래서 수시와 정시를 모두 끝마치니, 나는 모든 실기에서 떨어진 패배자가 되었어. 선생이 붙을 거라고 확신했던 서울예대는 수시와 정시 모두 1차도 붙지 못하고 떨어졌고, 남은 대학도 마찬가지였어.


그렇다고 실기를 망친 건 아니야. 수시는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정시 때는 제시어에 맞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완벽한 글을 써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도 떨어졌어. 사실, 문창과에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기성 문단, 기성 세대에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어. 글의 퀄리티는 완벽했으니, 결국 문제는 내 사상과, 내 시선이라는 셈이지. 같이 입시를 준비한 친구는 날 보고 너무 잘 써서 대필 의심으로 떨어뜨린 게 아니냐는 위로를 건네줬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그 말이 사실이면 난 이 문학판에서 내 이해자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사실, 이미 알고 있었어.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야. 공감 같은 건 그냥 허상에 불과해. 같은 감정을 떠올렸다고 생각해도, 그게 100% 동일할 순 없다고. 이해자도 마찬가지야. 정신병에 걸린 평범한 외모의 남자를 누가 힘을 쏟아가며 분석하려 들겠어? 누가 감정을 받아주겠냐고. 없어. 아무도. 돈을 주면 카운셀러야 기꺼이 해주겠지. 근데 그게 진짜 이해겠어? 결국 그것도 기만이야.


결국 이 세상엔 진정한 무언가란 없어.

다 기만과 제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그 무언가지. 나는 그 무언가도 못하는 머저리고. 난 그냥 정신병자고 병신이고 허상이고 텅 빈 그 무언가에 불과해.


그래서 관뒀어.


내가 문창과 입시를 3년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그거야.

글쓰겠답시고 문창과 준비하는 녀석들 중에, 진짜 오래 붙어서 진득하게 글쓰는, 재능 있는 애들 중에 정상인 애는 없어. 다 정신병자여야 가능한거야. 다들 집안이 불우하거나, 사회 생활에 있어서 어긋남이 있어서, 그런 부적응자들이 문학이라는 비주류에 투신을 하는 거라고.


그래서 문학에 있어서 재능이란 저주에 가까운거야.

문학에 재능이 있는 애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거든. 


글은 훈련만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어.

그렇지만 문학은, 네 고유한 시선이 들어간 문학은 아무나 쓸 수 없어. 더 웃긴 점 알려줄까? 그 고유한 시선도 심사위원, 기성 문단의 모범적 답안에 맞추지 못하면 그냥 나가리야. 


결국, 순문도 누군가의 취향을 맞춰야 하는 거라고. 씨발, 이게 말이 돼? 순수 문학은 어떤 시장의 가치도 개입되지 않은 문학 그 자체만을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문학 동네는 장르적 색채를 잔뜩 쳐넣은 신경숙을 밀어주고, 박민규를 밀어준 건데?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의 차이가 도대체 뭐야? 


알아, 결국 살면서 글은 타인에게 읽히기 위해 있는 거라고. 

난 그게 싫어. 


싫어서 그만두는 거야. 우울하게 살기도 싫고, 옳은 삶을 실천하기 위해 그 무언가도 하지 않을거야. 

내가 그토록 좆같아했던 체제에 투신하려고 해.

어떻게 수능 성적에 맞춰서 지잡대 문창과에 왔지만, 자퇴하고 그냥 기술이나 배우려고.

이 글을 쓴 이유는 그냥 하나야


네 글 보고 공감해줄 병신은 없으니까 정신병원 가거나 다른 일 찾으라고.


아, 물론 독자 상관 없이 네 예술세계를 풀어놓고 싶다면 상관하진 않을게.

근데 문창과 단톡을 계속 보다 보니까. 뭐 자신의 글로 사람들의 공감을 뭐 이런 개좆까는 병신 같은 소리를 하는 연놈들이 있더라고. 그거 그냥 시간 낭비니까. 다른 일 찾아봐.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