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출판사와 미팅 때 있었던 일들을 풀어봅니다.


저는 투고해서 A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고, 작년 소설을 내며 데뷔를 했습니다. 원고는 A출판사와 계약을 하기 전에 몇몇 출판사에서 관심을 주기도 했는데요. 그 중에 B출판사와 있었던 일입니다. B출판사에서는 투고를 하고 석달이 지나서야 답이 왔습니다. B는 신생 출판사라 신인 저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뒤늦게 미팅 제안을 주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미팅 장소는 합정 교보문고 근처였습니다. 출판사 사람들은 허구헌날 책에 둘러싸여 살 텐데, 어쩜 미팅 장소도 이렇게 책방 근처에서 잡는 걸까요. 평일 저녁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편집자와 마케터가 함께 나왔습니다. 미리 저녁 먹을 장소를 섭외해 둔 것은 아니라서 출판사 사람들은 저를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합정의 밤거리는 번잡했습니다. 대책없어 보이는 그들의 행동이 싫지 않았어요.


결국 우리는 건물 2층에 위치한 퓨전 중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임경선 작가는 한 칼럼에서 첫 미팅 때 중국집으로 이끄는 출판사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글 쓴 적이 있는데요. 출간이 고팟던 저는 중국집은커녕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준다한들 마다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곳에서 탕수육과 짜장면 등을 시키고서는 칭따오 맥주도 한병 시켰습니다. 마케터와 편집자 두 분 모두 저보다는 연배가 높았습니다. 초면인 저는 고개를 돌려 술 한잔을 마셨고, 출판사 사람들은 저에게 "아이고, 작가님. 고개 돌리지 말고 편하게 드세요. 편하게." 라며 챙겨주었습니다.


식당은 조금 시끄러웠습니다. 책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집중이 어려운 장소였지요.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는 본격적으로 원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커피숍을 찾아, 또 헤맸습니다. 한 복합상가 건물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나란히 몸을 실었습니다. 서로의 뒤통수를 보며 남자 세명이서 오르다보니, 방금까지 우리가 위치했던 지하에 커피숍이 눈에 띄였습니다.


"아, 저기 커피숍 있네,"


결국 우리는 1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다시 원래 있던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습니다. 또다시 서로의 뒤통수를 보며 한줄로 나란히 서서요. 그 모습을 보니 우리는 마치 발리우드의 영화 <세 얼간이> 속 주인공들 같았습니다.


커피숍은 여성 취향이 물씬 풍기는 핑크색 투성이었습니다. 인테리어의 절반은 핑크로 도배되어 있던 그 곳에서 편집자와 마케터는 따뜻한 커피를, 그리고 저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누군가는 김연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황석영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제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편집자 분은 제 원고를 미리 a4로 뽑아와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이면지가 아닌 깨끗한 종이였습니다. 편집자 분에게 묻고 싶었어요. 편집자님, 제 원고를 출력하는데 종이가 아깝지 않던가요. 잉크가 아깝지 않던가요. 제 글이, 제 원고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던가요.


미팅 때 편집자 분이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출판업은 사양업이며, 심지어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왕따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만드는 자신과 책을 파는 마케터는 바보라고 했습니다. 편집자분은 저를 가리켜 "이곳에 발을 들인 작가님도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보라고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사양업이나 바보라는 단어보다 편집자님이 불러준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마음이 더 동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요. 책을 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바보가 될 수 있노라고. 흔쾌히 바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편집자 분과 합정역에서 헤어지면서 저는 물었습니다.


"편집자님. 그러면 저, 이제 다른 출판사에 투고 안 해도 괜찮을까요?"


편집자 분은, "네. 작가님. 이제 투고하지 마세요. 저희랑 책 내시죠." 라고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B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신생출판사였던 B는 편집자와 마케터가 공동 대표로 있던 곳이었습니다. 원고 계약을 앞두고 두 분의 동업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B출판사에서는 편집자가 나가고 마케터가 대표로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저는 줄곧 편집자와 원고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마케터만 남아 있는 출판사와 굳이 원고 계약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다시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A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후 데뷔작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B출판사와 있었던 합정의 밤거리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들 보다 어린 사람임에도 고개 돌리지 말고 편하게 술을 마시라고 해준 것도 좋았구요. 대책없이 식당과 커피숍을 찾아 헤메던 그 시간들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바보라고, 작가라고 불러준 것이 좋았습니다.


글을 쓰고 다듬고 파는 일은, 지금 세상에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일입니다. 세상에는 책 말고도 재미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지요. 가끔 문갤에 글을 쓰거나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여전히 세상에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출간 작가가 작가 인증이라며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는 것을 보고서는, 아 나도 내 책을 한번 이곳에 얘기해볼까 싶지만 선뜻 용기가 생기진 않네요.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누구나 작가로 불릴 수 있는 세상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 이름으로 된 책 세권 정도 나오면 그때야 겨우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들국화의 전인권은 한 예능 프로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자기가 왜 호랑이인지 몰라요. 사람들이 호랑이라고 불러주니까 호랑이가 된 겁니다."


저는 스스로 "나는 작가입니다..." 라고 말하기가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작가라고 불러준다면 그때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책은 냈지만 여전히 작가라고 불리기엔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문갤 사람들 모두, 꾸준히 바보 짓을 하며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