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으로 텍스트에 집착해왔다. 대단한 문장이, 강렬한 이미지로 내게 다가와 삶을 흔들거라 믿었다. 한때는 아포리즘에 심취해 있기도 했었다. 깊이 있는 사고.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믿었고, 나는 그것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존립시킨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정상적으로 살기를 바랐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부러워했으며, 그렇기에 끊임없이 허기를 느끼는 자신을 합리화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나의 선망에 불과하다. 내가 상정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질투의 고통도 하염없는 부끄럼도 모든 행위 후에 뒤따라오는 회의적인 고민 또한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그곳에 편입되지 못하는 자신은 고독한 선구자였고, 언젠가 힘이 빠졌을 때 그곳으로 흘러가게 되면 번민을 잊을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언제나 한 쪽에 발을 걸쳐 둔 채 두 개의 문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신이 썩 깊이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고민과 현실은 누구에게나 공존한다. 나는 그것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귀찮았고 그들을 이분법의 인간상에 던져 놓음으로써 편해지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돌이켜 보면 나의 모든 선택은 편리를 위한 정당화에 불과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용감한 선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찾아내는 건 기분의 문제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자신에 의한 일종의 사디즘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마조히즘인가. 무얼 바라고 이렇게 늘 스스로를 괴롭히는가를 생각해보니 그것에 쾌락을 느끼고 있었나. 경악스럽다.

시끄럽고 뭉툭한 소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곳은 데시벨이 높은 것과 상관없이 의외로 잠이 잘 온다. 오늘 밤에도 나는 나를 괴롭히느라 정신이 없을 모양이다. 언제까지 이런 미련한 짓거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그 끝에 구원이 존재한다는 어리숙한 생각은 저버린지 오래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 것인가? 지독한 악취가 난다. 나의 심장에도, 나의 손톱과 음모에도 검게 멍울진 무언가가 짓이겨 있다. 나는 점점 더 역겨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