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유리 액정에 비친 시간이 싫었다
남자는 테레비 구석탱이에 비친 오전 여섯 시 이십 분 서울 맑음이 싫었고
오늘의 안건으로 생기는 여파가 싫었다
그의 손목시계속 초침과 분침이 몸이라도 맞대는 순간에 남자는 쾌감이라도 느끼는 듯 숨을 헐떡인다
넌지시 그에게 시간이라도 묻는 말에 남자는
하나는 아홉시 사십둘분에 하나는 다섯 시 사십 둘분이지요. 라고 한다

남자는 왼쪽의 손목에 한 쌍의 시계를 차고 다닌다
왜 시계를 두 개씩 차고 다니요? 묻는 말에 하나는 서울의 시간이고 하나는 그리니치의 시간이라고 한다
남자는 두 개의 도시를 넘어 두개의 대륙을 가느다란 왼쪽 손목에 차고 다닌다

시간이 권좌의 전유물일 때가 있었다
주식은 꽁보리에 감자를 캐어 먹던 때, 시간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는 참혹하게 빨갛고, 음습하고 쿰쿰한 골목, 때아닌 자정에 용두질이나 일삼는 것들이 늘어날 때에 시간은 아무개의 것들이 되었다
남자는 초침도, 분침도, 시침까지 없는 요즘 시계들이 싫었다
전원을 끄고 키는 얇디 얇은 도회적인 손가락이 싫었다
요즘에도 손목 시계를 사용하는 이들은 흔치 않기에 남자는 때론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는 했다

남자의 집인 서울의 아파트는 월세로는 칠십에 방은 두개다
남자의 새하얀 와이셔츠 밑으로는 오토매틱으로 돌아가는 서울과 그리니치가 있다 그것은 남자 맘에 따라 도쿄일 수도 있고 모스크바일 수도 있다 또 리우데자네이루일 수도 있고 북극점 일수도 있다
문득 그리니치의 흔한 아파트에 사는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마거릿이라는 여자가 그에게 물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마거릿은 흔한 이름일 것이니 그리니치의 마거릿은 없을 리 없다.

아, 금시의 시간이 어찌 됩니까?
생경한 문어체에 남자는 대뜸 당황하고는 그리니치의 시간을 말해준다 남자는 도버 해협을 건넌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벽을 만지고 핏빛처럼 새빨간 이층버스도 보고는 한다
그리니치는 서울보다 여덟시간 느리지요. 마거릿은 멀어진다. 아, 가지마시요. 외쳐도 남자는 마거릿이 가장 흔한 여자의 이름임을 알기에 아쉬움만 남긴 채 서울로 온다

서울은 해가 뜨기 직전인 오전 다섯 시 오십둘 분이다 그리니치는 여덟시간이 느리다 마거릿은 그리니치에 있고 가장 흔한 이름이다

요즈음에는 시계를 차는 이를 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