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는 해변은 없고 자그마한 부두만 있을 뿐이었다
발자국을 남길 수 없는 곳이라고 의역하자
바다가 몸을 움츠린 날이면 오래된 우물의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은 오래된 사랑의 기록 정도라고 하자
안개가 짙은 날에는 창문을 열 수 없었다 바다에서 태어난 안개를
방으로 들이는 건 터부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소주를 까거나
낡은 카드 뭉치를 가져와 포커를 치곤 했다 그들은
하트를 가장 높은 그림으로 쳐주었다
섬은 점점 메말라가는 중이었다 지난 여름 폐경이 온 여자는
양복쟁이들이 섬을 거세시켰기 때문이라고 지껄이며 침을 뱉었다
창문 앞까지 드리운 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도배된 석회빛 벽면을 스크린 삼아 배설되는
자막조차 없는 오래된 프랑스 무성영화를 보듯,
거울을 보는 것보다 조금은 우아하고
적나라한 경멸의 과정이다
그 섬에 당신은 하나도 없고 길을 잃은 말들만이 안개처럼
옷자락을 스칠 뿐이었다
바닷마을 사람들이 래그 타임의 대가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도의 싱커페이션을 겪어 본 일이 있다면
당신이 없이도 나는 여전히 변덕스럽다
바람이 거센 날에는 부두로 나가 파도의 맥을 짚으며
한참을 가만히 서있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인간을 마중하기 위해
불구가 된 섬을 등지고서
한참을 굶주린 짐승처럼 입을 크게 벌리면
발음할 수 없는 낱말들은
안개처럼
래그타임 연주법과 프랑스 무성영화의 전성기는 거의 일치합니다. 한 세기 전의 일이죠. 요즘따라 오래된 것들을 찾게 되네요...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모순적인 노스탤지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구요. 과거는 절판되어 구하지도 못하는 책 같아요.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 -이동진 영화 평론가, <미드나잇 인 더 파리> 그냥 윗 분 댓글 보고 생각이 났어요. 안개하면 무진기행이죠, 그렇죠? 저는 무진을 떠나고 있어요. 안녕히 있을게요.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