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참여 문학 이후로


90년대부터 문학 위기론은 늘 있어 왔다.


왜?


대중들이 더 이상 문학이란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80년대에 불었던 독서 열풍은 90년대에 와서 줄어들었는가.


이는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80년대 5공정권 시절, 방송과 미디어는 땡전뉴스라고 불리우며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당연히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갈수록 커져갔고, 그런 요구가 쌓이고 쌓여서 문학에서 터진 거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진실을 문학에서 찾았지. 그래서 독서 열풍이 분 거야.


하지만 방송과 미디어가 정상화되기 시작하는 90년대부터 사람들은 굳이 문학에서 진실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80년대 참여문학을 보고 뛰어들었던 서울대 국문학과 - 비평가 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은 문학에 수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문학의 새 활로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기존에 있던 이데올로기적 문학(참여 문학)을 배제하고, 개인의 진정성, 진실된 내면성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웃기는 사실은 그 내면성에 치중한 문학이라는게 기실 일본식 사소설의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무능력한 개인, 저항성이 거세된 심리묘사 등등. 


내면성이란 것이 무엇이냐. 21세기에 와서 데카트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리는 없을 테고, 개인의 경험을 쓰는 것이라고 하면 이 경험이라는 것에 현실이 없을 수가 없다. 결국 내면성의 문학이라는 것은 집단주의에 대한 비평가 집단의 혐오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제 비평적 권위를 지키기 위한 허상의 개념이라는 거지 ㅎㅎ


더 비참한 것은 그렇게 문학판이 개편을 했음에도 대중들은 문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전 시대의 문학을 이분법적인 광기에 휩쌓인 시대라고 규정한 문학동네에게 참여문학으로 돌아갈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상매체의 대두로 문학판이 완전히 끝장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10년 이후 유튜브 채널이 일상화 되었을 때의 이야기일 뿐, 그 이전까지만 해도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순간들은 많았다. 문학 동네가 그 위기의 원인을 영상매체가 아니라, 시대를 잘못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면 문학이 이렇게까지 침몰하지는 않았겠지.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혐의는 결국 문학동네 내지 엘리트 비평가 집단에게 있다. 80년대에 누렸던 계몽적 권위를 다시 복권하고 싶다는 저열한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결국 문학은 서브컬쳐가 되었지만, 여전히 문학동네 비평가들은 한국 문학이 뒤진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장르문학적 기법을 사용해서 대중들의 인기를 끌어 자신들의 권위를 복권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박민규의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다. 일종의 대중영합주의를 구축한 셈인데, 당연하지만 이러한 영합주의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 


문제는 그렇게 장르적 기법을 써도 한국 문학은 재미 측면에서도 영화나 게임 같은 매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논의가 등장했다. 특히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기존 방송 미디어,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들의 진실을 향한 요구(굳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여성 혐오적인 방송 미디어가 여성들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했다.)가 문학으로 해소된 사례고, 이런 사례를 토대로 물밀듯이 페미니즘 소설과 성소수자 소설이 사소설의 형식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문학 동네도 이런 시류에 편승해 비평적 권위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시도는 어떤 정치적 의미도 갖지 못하고 기실 소비주의와 입을 맞추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실제 소설책이 서점에 깔리는 구조는 이렇다. 카르텔 내부에 있는 작가가 출간하면 관련 문예지에서 열심히 띄운다. 문인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은 신문사와 출판사 광고를 통해 홍보되고 대형 서점에 깔린다. 독자들은 가판 앞자리를 선점한 작품들 사이에서만 선택하게 된다. 독자가 외면한 시장에 희망은 없다.


현재도 한국 문학은 비평가들로 인하여 침몰하는 중이다.


침몰하는 것을 보고도 탑승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제 스스로 죽을 길로 걸어 들어가는데 누가 말리겠나? 다만, 이미 탑승한 놈들은 똑같이 소비주의에 맞춰서 성소수자 젠더권력 따위의 글을 쓰던가. 내려서 다른 살 길을 모색하거나 해라. 그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