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이 나의 책상 한구석을 차지한 다음날부터 나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베타라는 물고기는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몸이 불편한 물고기를 돌보는 방법이라던지,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 한구석에는 그가 헤엄치고 있었고, 지금도 책상 한쪽에서 작은 지느러미로 잔잔하지만 치열하게 물장구치고 있을 그를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에게 베타는 사육이 편리한 물고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누군가는 베타를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 담아 키우고 있었고 심지어는 사무실의 머그컵에서 키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수류가 필요 없고 작은 수조에서도 잘 지내는 물고기라지만 흰색 자기질 머그컵에서 홀로 헤엄치는 베타의 모습은 물고기라기보단 찻잔에 둥둥 떠있는 다 쓴 녹차 티백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
모비딕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한계는 너무도 분명했지만, 그와 간단한 대화라도 가능했더라면 그들의 주인이 소셜미디어에 자랑스레 올려둔 베타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너희는 정말 한 컵 남짓한 공간만 있으면 충분한 건지.
타자 소리 가득한 사무실에서 녹차 티백과 다름없는 채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지.
나는 자연스럽게 지난 주말을 떠올렸다.
숱한 사랑의 역사를 가진 그녀, 그녀와 모든 걸 함께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는 선명한 외로움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가장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란히 걸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어긋난 지 오래였다.
마침표를 찍어야 할 나의 손은 어떤 곳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공연히 허공만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고 한 시절을 쏟아내고 있는 나였지만 어느 도랑에도 고이지 못한 채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사랑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며 나의 여름이 다시 한번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해의 완성과 관계의 종말은 같은 선상에 서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받아온 이해와 배려의 총량을 알기 위해서는 비로소 그것을 내 손으로 저버리고야 말았을 때 차갑게실감하는 것이다. 그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후회와 슬픔은 마지막까지 나를 놓지 않아 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회개이자, 죽어버린 마음에 대한 추모인 것이다.
이해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그것을 잃어버려야 한다니, 말장난과 다름없을 만큼 모순적인 사색이지만 딱히 반박할 의지도 없을 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많은 계절이 지나는 동안 사랑은 언제나 태연스럽게 서있었고 찬란하리만큼 강렬한 색채를 뿜어냄과 동시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흐려지는 날도 많았기에 나는 사랑이라는 교활한 녀석의 형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대체 어디쯤에서 피어나고 저물어져 가는지.
생물을 키우고 보살피는 건 사랑이 결여된 채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는 내 사랑의 형태를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모비딕을 내 방에 데려왔다. 그러고는 마치 자폐에 갇힌 사람처럼 그 작은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물방울과 붉게 타오르는 그의 꼬리를 바라보며 나의 사랑이 여기 있노라고 하루하루 안도했다.
생물을 키워내고 돌보는 일의 마지막이 항상 그렇듯 모비딕의 이야기 또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애초에 내가 그 작은 (그것도 장애를 가진) 물고기를 데려온 것에 원대하고 커다란 의미는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의 위선 가득한 마음은 작고 연약한 생명체를 정성스레 보살피고 있는 우울한 남자의 허상을 만들어 냈고 나는 기꺼이 그 허상에 빠져들어 있느라 굼떠가는 그의 헤엄치는 모습은 헤아리지 못했고 그의 꼬리를 보며 안도하는 일에 깊게 취해 있던 나머지, 날이 갈수록 너덜 해지는 꼬리 끝은 보지 않으려 했다.
나는 내가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착각하는 것들에 깊게 매료된 사람이다. 몇 번의 사랑을 거듭하면서 언제나 외면하고 부정하던 나의 추악함을 들춰낸 것은
여름밤 오갈 곳 없는 나의 손에 들려져 있던 편지 한 통도 아니었고 늦은 저녁 몇 시간이고 눈물을 흘리며 주택가를 서성이던 어느 밤도 아니었다.
모비딕이 새하얗게 뒤집어 낸 배.
위선이 머물렀던 그의 꼬리는 아래로 가라앉아 나풀거리고
이기심만이 나를 올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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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별뜻 없어 기본적으로 물고기 키웠던 이야기라 물 이기도하고 - dc App
물 이라는 글자 90도로 뉘이면 꼬리 찰랑거리는 베타처럼 보이기도 해서 물이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