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한정해서 본다면 그렇다는 겁니다.
저와 제 문우들은 소설을 문학으로 보지 않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문학의 범주에 소설도 들어가긴 하니까 평가를 할게요.
한국 소설은 쓰레기입니다. 이건 감히 단언할 수 있어요.
세계적으로 본다면 한국 농구보다도 한국 소설이 더 급이 낮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시는 안 그래요.
한국 시는 세계적으로 견주어보아도 수준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가난 속에 살면서도 꿋꿋이 시의 최전방에서 싸운 시인들 덕분이죠. 얼마 전 불행하게 사망하신 황병승 시인같은 분들, 전 그런 분들 존경합니다.
곰팡이 핀 방 안에서 세계를 창조해낸 분들이죠.
그런 예술가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감정 1차적으로 찍 배설해놓고 그게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상욱이나 인스타 시인들을 혐오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지하철 탈 때마다 스크린도어에 걸린 공모작들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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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기형도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만, 둘 다 마광수란 인간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 우선 알려드립니다.
저는 윤동주가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형도가 시인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가 시를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도 하고요.
한국 시가 세계에서도 잘썼다 할 수 있는 이유는 외국에선 이미 사장돼서 존재하지도 않는 장르가 됐기 때문에 시대를 못 쫓아가고 아직도 시 쓰고 있는 한국 시가 수준 높다 자위할 수 있는거지 진짜 외국이랑 비교하면 수준 낮을 듯
그리고 당신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면 반대로 윤동주, 기형도를 시인취급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문단 관계자와 교수들도 있을 텐데 그걸 가지고 자기만이 맞다 하는거는 너무 틀에 박힌 생각이 아닌지?
1900년대 시로 비교해보아도 한국 시는 세계적으로 우수합니다.
외국에서 시가 이미 사장되어 존재하지도 않는 장르라고요? ㅋㅋㅋㅋ 님 어디가서는 제발 그런소리 하지 마세요. 무식하단 소리 들어요.
미국 문학은 이미 18세기에 소설로 주류장르가 넘어갔고 시는 지금 와서 비문학한테도 밀립니다
현재 사장된 장르라고 해도 과언아님
그리고 윤동주, 기형도를 시인으로써 생각하는 문단 관계자와 교수들이 있는데 자기의 말만이 옳다 말하는거는 틀에 박힌것 아닌가요?
미국 문학이요? 미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류이고 전부인가요?ㅋㅋㅋ 애초부터 미국은 소설이 우위였어요. 그리고 지금 미국 문학계는 자본때문에 문학의 본질을 잃은지 오래라서 사조도 없고 수준도 없는 장르소설이랑 문학의 경계가 없어진지도 오래입니다. 무슨 미국 문학을 들이대요. 미국 문학 자체가 망했는데.
미국문학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을 포함 모든 문학에서 시 자체가 사장되고 있다고요 그리고 한국 문학이 미국 문학과 철학사상 영향을 초기부터 받았고 그 수준도 미국에 못 미치는데 미국이 다는 아니여도 한국 문학보다는 예술사적으로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국문학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요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데 다른 문화권들의 문학에서 시가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시장에서 사라지는 거죠. 시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다만 예전만큼의 넓이가 없는 거지, 더욱 견고하고 깊게 세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시가 사장되었다구요? 모르면서 무식한소리 하지 마세요.
대중에게 외면받는 예술이 사라지는 거지 뭡니까 결국 지금의 한국처럼 새로운 변화없이 자기들끼리만 놀게 되는 썩은 물이 되는건데 예술이 대중과 영합하는 것도 안 좋지만, 대중에 완전 외면당한 채로 자기들끼리만 있게 된다면 그것도 결국 의미없고 자폐적인 지금 한국소설과 다를 바 없는 게 됩니다
예술은 대중한테 외면받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뭔가 크게 오해하고 계시는데 원래 예술은 귀족적인 것이었고 또 그럴때가 예술이 제일 융성했었죠. 예술이 수준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게 언젠줄 아세요? 범 자본주의 이후 대중들에게 영합한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제대로 모르면 말씀 아끼세요.
결혼을스시녀와 선생님(이하 편의상 결혼 선생님이라 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결혼 선생님께서는 문학의 유지에 있어서 대중의 힘을 중요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의 경우를 보면, 당대에 대중들에게 읽히던 경제자본적 시는 오늘날 읽히지 않는 반면, 당시에는 읽히지 않았던 문학자본적 시는 오늘날까지 그 문학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문학의 유지 및 계승에 꼭 대중의 이해가 필요한 지 의구심이 듭니다.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시대가 왔는데 대중에게 완전 외면받아 돈을 벌 수가 없다면 재능 있는 사람들은 다른 돈 벌 수 있는 직종으로 떠나겠죠
귀족적일 때 문화가 융성했다 하는데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이 아닌 한국으로만 한정해보면 신분제던 조선에 소위 문학적 가치가 있는 시가 몇 개가 있습니까? 아까 말한대로 훨씬 귀족적이었던 조선시대 문학보다 신분제가 무너진 이후 1900년대 위 시한 한국문학이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귀족적인 사조가 있어야 문화융성한다면 왜 조선의 그 누구보다 귀족적인 시들인 군왕을 찬양하는 시들은 쓰레기취급받습니까?
예술이 귀족적일 때 가장 융성했다고 했지 사회에 귀족이 존재할 때 예술이 융성했다고 했나요? 결혼님은 예술을 논하기 한참 이전에 기본적인 독해력 부족이신거 같으니 밑으로는 댓글 다셔도 지우겠습니다. 기초적인 공부부터 하고 오세요. 기초도 없이 함부로 말 지껄이는것도 남한테 민폐입니다.
공감.
이건 니 말에 동의한다. 나역시 예전부터 늘 예기했드시 윤동주나 기형도는 너무 자폐적이야. 읽은 사람한테 오히려 썩은 기운을 파는 짓이야. 덧붙여 윤동주는 진짜 그겸부류중에 하난데....... 나중에 니가 잘 설명하곘지. 별로 말한 껀덕지가 있는 인물이 아니지
궁금한거. 시집이란 게 묶는 기준이 시인 각자에게 있나? 시집을 묶으면 순서가 생기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케 생각함. 시인마다 다른 부분인가. 그림으로 치면,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모아서 전시를 하는 건 좀 다른건데. 그 순서에 논리나, 플롯이 있는 게 아니잖아. 시라는 부분을 통해 전체를 상상하는 건 전적으로 감상자의 몫인가? 그거는 또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시집을 들면 항상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물음이 생김. 시쓰는 입장을 들어보고 싶다.
시인이 시집의 시를 배치할 때는 어느정도 생각을 가지고 정교하게 배치하는 거임. 처음과 끝의 두세 편은 더더욱.
교수새끼였네
1. 문예사조가 타 문화권 문학들에 비해 너무 느리게 유행을 탐. 다른 데서 100년, 200년 전에 하던 걸 이제서야 하고 있음.
(소설에서 이건 치명적인 결점임.)
2. 문체나 표현에 아직까지도 지나치게 집착함. 이건 소설이란 갈래가 본질적으로 언어예술보다는 서사예술에 가깝다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부족한 병신들 탓임. 문장만 멋부리고 표현만 신선하게 한다고 소설이 이루어지는 게 아님.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문장과 표현에 지나치게 집착함.
3. 어떤 울림이나 그런 걸 줄 만한 서사가 없음. 이건 한국인의 경험 빈약 탓임. 다채롭지 못한 사회 탓에 생활양상이 거의 비슷비슷하고 경험도 다 거기서 거기라 좋은 서사가 안 나오는 듯함.
4. 이건 일제강점기 소설에서부터 지속된 고질병인데.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들이면서도 그걸 뚫고 나가는 힘이나 강한 의지조차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기만하는 주인공들.
문예사조란 건 대중의 유행처럼 천박한 게 아닌데. 이미 네 주장은 거기서부터 실패작임. 전공이 뭔진 모르겠으나 난 네가 문학이나 예술에는 완전히 무지하다고 생각함. 그리고 뭔가 크게 착각하는데, 문학은 결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음.
너무 무식하면서 길게 아는 척 해서 댓글 전부 삭제하겠음. 니가 지금 싸지른 말들 완전히 틀린 소리고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에서 나온 헛소리들이란것만 알아두면 됨.
죽왕 선생님, 문학의 귀족적 특성이라 함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눈은 존재하죠?
그리고 그 눈으로 누구나 피카소의 작품들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과 감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어떤 규칙, 다시 말해 그 예술 장르의 규칙에 대한 감각적 학습이 수없이 있어야 하며 작품이 탄생하던 시기와 작가의 예술사조에 대해 외재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밖의 다른 부분들도 많죠. 동의하십니까?
그런 건 하루아침에 갖춰지지 않습니다. 학습과 이해와 훈련이 반복적으로 거듭된 끝에 감상자는 비로소 작품을 스스로 감상할 만한 수준을 얻게 됩니다.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예시로 드시면서, '보는 것'게 초점을 두셨는데, 그렇다면 문학에서 귀족적 특성은 독자의 수용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이신건가요?
그렇게 일정 수준을 넘은 감상자들은 그 예술장르를 감상하고 평가합니다. 그 집단. 즉, 일정 규모 이상의 계(system)를 통해 예술은 귀족적이 됩니다. 대중들과는 무관합니다.
담론적 차원에서의 특성이었군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고, 그를 위해 독자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작품이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선 중간 판매자를 거쳐야 하고, 판매자는 대중에게 팔리는 작품만 전달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중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그 독자는 제가 말하는 감상자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대중에게서 외면받고, 스스로도 대중과 얽히지 않으려 하는 문학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홀로 태어나 홀로 사라지는 것이 문학이라면, 왜 굳이 문학이 존재 해야 하는 것입니까?
작가와 감상자가 있기에.
하지만 사회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여 부품화 되어버린 이들이 만들어낸 경제적 기반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왤케 멍청한 글을 쓰노
응 둘 다 쓰레기야
라노벨보다 안 팔리고 안 읽히지만 아무튼 수준이 높다구요
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는게 수준이랑 무슨 상관이지ㅋㅋ 생각머리하고는
수준특징:지가정함
이새기 지금 뭔 생각하고 있을까 ㅆ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벨상 받은거 한강인데 병신아
소설을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음. 부터 에고 존나 쎈 글싸개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