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시인이자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
익명(59.12)2020-06-20 17:02:00
답글
그건 정식 등단으로 보기 힘듦. 지금으로 따지자면 출간된지 1년 정도 된 문예지에 돈 주고 등단하는 격임.
죽왕(genpioneer)2020-06-20 17:06:00
답글
니가 말하는 소년지는 문예지라기엔 좀 모자란 잡지임. 그리고 저기 작품을 올린걸 등단했다 하기도 좀 뭐한게, 그냥 내기만 하면 쉽게 실어주는 정도였거든. 대학내일같은 잡지 알지? 딱 그정도지만 그것보다 아래. 그리고 곧 폐간됐지.
죽왕(genpioneer)2020-06-20 17:08:00
답글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고 그 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0년 일제 경찰의 학생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후배 정병욱과 함께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나와 북아현동 누상동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함께 하며 시작에 몰두하였다. 그 후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할 무렵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원고를 정병욱에게 증정한 후 일본 대학으로 유학 준비를 하게 된다.
익명(59.12)2020-06-20 17:08:00
답글
원고료를 받았대
익명(59.12)2020-06-20 17:09:00
답글
원고료는 당연히 받지 그럼 안 받냐?
죽왕(genpioneer)2020-06-20 17:11:00
답글
넌 뭐 하나 써서 원고료 받은 적 있냐?
익명(59.12)2020-06-20 17:12:00
답글
나야 아주 많지. 근데 그게 지금 얘기중인 거랑 무슨 상관이지?
죽왕(genpioneer)2020-06-20 17:14:00
답글
원고료 많이 받아봤어? 어디서?
해방후에 정지용이 먼저 동주를 알린 거지 왜 마광수냐
익명(59.12)2020-06-20 17:15:00
답글
잘 아는 거 같네. 그러면 니가 윤동주 민낯을 발표해 봐. 뭐 다른 게 있을까 몰라? ㅎㅎ
익명(59.12)2020-06-20 17:17:00
윤동주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이미지가 되어, 비판적으로 보려고 하는 순간 '친일'프레임에 갇혀버리는...
익명(211.57)2020-06-20 17:04:00
답글
비판적으로 봐봐.
익명(59.12)2020-06-20 17:07:00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2월 윤동주의 3주기 추도식에 맞춰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을 임시로 발간하였고, 같은 해 3월 정식으로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12]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 의해 제정되었다. ......
익명(59.12)2020-06-20 17:05:00
답글
헛소리. 윤동주는 자기만의 시세계를 만드는 대신 백석의 시세계와 사춘기의 정서를 어설프게 조합했지. 그게 엄청나?
죽왕(genpioneer)2020-06-20 17:11:00
근데 정말로 윤동주가 마광수에 의해 만들어진 시인이라면, 40년대 당시에 이북지방 조선문학총동맹 문인들이 윤동주 찬양해 마지 않았던 건 왜 그런거냐? 마광수가 타임머신타고 40년대 북한까지 날라갔었나?
익명(112.152)2020-06-20 17:20:00
답글
정확히 1947년에 정지용이 유고시집에 추천사 써주면서 윤동주가 인정받았는데, 자기들은 윤동주랑 달리 더러운 놈들이라 그런지 197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윤동주 폄하를 시작함
그거를 마광수가 자기 식으로나마 다시 복권시킨거고
결혼은스시녀와(106.102)2020-06-20 17:35:00
답글
7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윤동주를 폄하했어? 구체적으로 누가?
익명(59.12)2020-06-20 17:42:00
답글
구체적으론 모르는데 딱 1970년대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했대
결혼은스시녀와(106.102)2020-06-20 17:45:00
답글
대충, 소극적 저항을 한 윤동주다? 그랬겠네. 안중근도 있는데 말이지? 김일성도 있고?
익명(59.12)2020-06-20 17:49:00
답글
소극적 저항자체를 인정 안 하고 독립운동 안 했다 그랬을 듯
워낙 운동권이 자기들 사상이랑 운동에 참여적이지 않은 사람들 배제했잖아
결혼은스시녀와(106.102)2020-06-20 18:07:00
답글
정작 윤동주가 독립운동 진짜로 한 건 십몇년 후에 재판기록에 조선독립운동이랑 사상범, 내란모의로 적혀 있는 걸로 독립운동가 인증됨
결혼은스시녀와(106.102)2020-06-20 18:08:00
난 윤동주 좋은데 ? 네 말의 근거가 등단이냐 난 등단제 찬성하고 등단이 최소한의 거름막 역할을 한다고 보지만 진짜 예외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윤동주는 훌륭한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시인이자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
그건 정식 등단으로 보기 힘듦. 지금으로 따지자면 출간된지 1년 정도 된 문예지에 돈 주고 등단하는 격임.
니가 말하는 소년지는 문예지라기엔 좀 모자란 잡지임. 그리고 저기 작품을 올린걸 등단했다 하기도 좀 뭐한게, 그냥 내기만 하면 쉽게 실어주는 정도였거든. 대학내일같은 잡지 알지? 딱 그정도지만 그것보다 아래. 그리고 곧 폐간됐지.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고 그 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0년 일제 경찰의 학생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후배 정병욱과 함께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나와 북아현동 누상동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함께 하며 시작에 몰두하였다. 그 후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할 무렵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원고를 정병욱에게 증정한 후 일본 대학으로 유학 준비를 하게 된다.
원고료를 받았대
원고료는 당연히 받지 그럼 안 받냐?
넌 뭐 하나 써서 원고료 받은 적 있냐?
나야 아주 많지. 근데 그게 지금 얘기중인 거랑 무슨 상관이지?
원고료 많이 받아봤어? 어디서? 해방후에 정지용이 먼저 동주를 알린 거지 왜 마광수냐
잘 아는 거 같네. 그러면 니가 윤동주 민낯을 발표해 봐. 뭐 다른 게 있을까 몰라? ㅎㅎ
윤동주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이미지가 되어, 비판적으로 보려고 하는 순간 '친일'프레임에 갇혀버리는...
비판적으로 봐봐.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2월 윤동주의 3주기 추도식에 맞춰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을 임시로 발간하였고, 같은 해 3월 정식으로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12]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 의해 제정되었다. ......
헛소리. 윤동주는 자기만의 시세계를 만드는 대신 백석의 시세계와 사춘기의 정서를 어설프게 조합했지. 그게 엄청나?
근데 정말로 윤동주가 마광수에 의해 만들어진 시인이라면, 40년대 당시에 이북지방 조선문학총동맹 문인들이 윤동주 찬양해 마지 않았던 건 왜 그런거냐? 마광수가 타임머신타고 40년대 북한까지 날라갔었나?
정확히 1947년에 정지용이 유고시집에 추천사 써주면서 윤동주가 인정받았는데, 자기들은 윤동주랑 달리 더러운 놈들이라 그런지 197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윤동주 폄하를 시작함 그거를 마광수가 자기 식으로나마 다시 복권시킨거고
7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윤동주를 폄하했어? 구체적으로 누가?
구체적으론 모르는데 딱 1970년대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했대
대충, 소극적 저항을 한 윤동주다? 그랬겠네. 안중근도 있는데 말이지? 김일성도 있고?
소극적 저항자체를 인정 안 하고 독립운동 안 했다 그랬을 듯 워낙 운동권이 자기들 사상이랑 운동에 참여적이지 않은 사람들 배제했잖아
정작 윤동주가 독립운동 진짜로 한 건 십몇년 후에 재판기록에 조선독립운동이랑 사상범, 내란모의로 적혀 있는 걸로 독립운동가 인증됨
난 윤동주 좋은데 ? 네 말의 근거가 등단이냐 난 등단제 찬성하고 등단이 최소한의 거름막 역할을 한다고 보지만 진짜 예외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윤동주는 훌륭한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런 닝겐이랑 말응 섞었군 아! 내가 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