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無能)
대부분의 회사나 학교의 마지막 시험은 면접으로 되어있다. '서류나 시험으로는 알 수 없는 지원자의 자질을 검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면접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행해지며, 소위 '압박 면접' 으로 지원자들이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다. 그런 엄중한 분위기 속, 끝끝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내 차례가 오고야 말았다. 상대를 관통할 것 같은 깊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귀하가 본 폐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가장 무난하고 틀에 박힌 질문이 날아왔다. 이미 혼자서 수백 번은 연습해 온점의 위치마저도 하나하나 기억날 듯한 A4 면접 시트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침착한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경제와 금융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예로, 고등학교 때에는 부 활동으로 경제동아리에 입부하여 세계의 경제 추이와 한국의 경제 추이를 비교하는 레포트를 적어 입상하였던 적도 있으며 ・・・"
입을 움직이는 와중에 면접관 뒤로 살짝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로 눈이 갔다. 푸르른 잎사귀들이 서로 부대끼며 움직여 사르륵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바람이 잠시 잠잠해지며 나뭇가지도 고요히 소리를 죽였다.
"네, 잘 들었고요. 그럼 돌아와서 81번 지원자에게 질문할게요. 좀 전에 타 회사의 공시에 입상하신 경험이 있다고 하셨는데 ・・・"
나도 모르는 새에 대답이 끝나 있었다. 기계적으로 입만 움직인 것에 놀란 것보다도 질문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열변을 하는 다른 지원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열변을 듣고 있자니 나와는 달리 빠듯하고도 성취 적인 인생을 살아온 듯했다. 불현듯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85번 지원자분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지금 다른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지원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비한 적 없는 질문이다. 당황한 탓인지 괜스레 주먹을 꽉 쥐어 손에 땀이 차는 듯했다. 어떻게든 대답해 보려고 방금 들은 그 열변을 떠올렸지만 나와는 다른 점밖에 떠오르지 않아 더욱더 초조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면접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혼신의 힘으로 생각해낸단 한마디. 긴장하고 당황한 탓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할 것 같아 잠시만 시간을 받아 차분하게 답을 내놓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그 누가 평소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의식하며 나만의 특별함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인가. 그 누가 그 지옥 같던 고등학교 3년을 퍼즐처럼 쪼개어 부 활동 조각을 찾고 있을 것인가. 그 누가 봉사활동에 가서 들은 소장의 한마디를 기억하고 명심하며 자신의 인생관으로 삼고 있을 것인가. 미사여구의 범위를 넘어 창작 수준에까지 이른 내 이력서에서 다시 글자들을 긁어모아 새롭게 대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만, 면접관의 생각은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아 대답하기 힘드시면 넘어가겠습니다. 그럼 81번 지원자에게 다시・・・"
면접관의 테이블에서 펜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면접관이 펜을 주우려 허리를 구부릴 때 뒤에 있던 창문으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기분 탓인지 바람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 후, 면접의 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면접실에서 나와 창문으로 보았던 나무로 걸어가 흔들리던 나뭇가지를 찾았던 일 만이 머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 나무의 나뭇가지들은 대체로 굵게 튼튼해 보였으며 올곧게 일직선으로 뻗어있었으나 세차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만이 얄쌍한 잔가지로 뻗어있어 흉하게 보였다. 잔잔한 바람에 혼자만 흔들리는 흉한 잔가지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 무능(無能)하다"
"면접"이라는 인생에서 몇 번 경험하지 못할 소재를 가지고, 섬세하게 주변풍경을 묘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 읽는 내내 내 머리 안에서, 면접장 내의 그 긴장감이 감돌고 그려지는 느낌. 면접을 시작하고, 나오는 그 시간동안의 주변환경을 무척 섬세하게 관찰한 것 같다. 읽으면서 뭔가의 예리함에 놀램. 혹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담아낸 것인지? 이정도로 글을 쓸 정도면, 며칠 전에 있던 그 면접이, 네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경험"이 된 것 같아보임. 그리고 나뭇가지가 상징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의미가 내 나름대로 이래저래 이해가 돼버려서 좀 쓸쓸한. 자신의 인생관이 되었다던 봉사활동의 소장의 말도 궁금. 나도 누군가에게 인생관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일단 문학갤은 내가 활동하던 그 갤러리가 아니니까, 위로나 응원의 글 따위는 생략하고, 오로지 글에서 느낀 것만 적어보고 갈게, 잘
감상평까지 달아줘서 너무 고마워. 최근에 본 면접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거 맞아. 더 자세히 말하면 면접시에 나오는 질문들은 항상 난해하면서도 지원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것에 착목해서 짤막하게 써보고 싶었던게 계기야. 제목의 '무능'이라는 말은 면접시의 난해한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지원자를 과연 무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란 하나의 의문에서 붙인거고, 소설에서 상징물로 나오는 주변환경과 나뭇가지는 관점에 따라 보는 바가 다르다는 걸 시사하고 싶었어서 넣은거야. 면접실에서 작은 창문을 통해 나부끼는 나뭇가지를 볼때는 이 엄숙한 면접실에서는 여유롭께 또 고요하게 움직이며 면접의 상황속에서도 주인공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사물로 등장하지만,
면접이 끝난 후에 나무 전체를 바라보았을때는 그저 처량한 얇디얇은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전과 그걸 통해 나뭇가지와 동류라고 생각하며 무능하다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쓸쓸함을 보여주고 싶었어. 너가 읽으면서 이해하고 상상한 내용을 변질시키고 싶진 않아, 그냥 이건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참고만 해줘 고마워
그냥 내가 생각한 대로 글을 이해하고 넘어가버릴 수가 있었는데, 네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적어줘서 다시 네 시점에 이입해서 글을 읽어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역시 재밌네! 글은 정말 역시 읽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게 달라서 재밌는 것 같아. 갑작스레 삘타서, 1000자라는 글자수의 집합 안에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며 써내려간 걸 보니, 역시 너는 글쓰는 것에 재능이 있었구나, 멋있다. 확실히 면접이란, 사람을 완전히 평가하기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인 데다가, 몇 가지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것이기에, 지원자의 자질을 완전히 평가할 순 없지. 정말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면접"이라는 시험을 놓고 말할 수 있는 사실. 이 경험을 통해, "면접으로 평가되어져버린 지원자는, 과연 무능하가"란 의문을 가지고 쓴 게 무척 매력적이야. 와중에 나뭇가지가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왜 면접장 내부에서 본 풍경과, 면접을 마치고 다시
한번 바라본 그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 분위기가 틀려보이는가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알려줘서 고마워. 주인공이 폐사에 지원하는 이유를 말하다가, 갑자기 나뭇가지로 시선이 옮겨지길래, 나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추억"이자 "경험"이 돼 버릴 수가 있는 그 순간을, 오래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려고 주변을 돌아본 건 아닐까 생각했었거든. 인생에 한 번 뿐일 이 면접의 시간들을 기억에 담아두려고, 관찰을 계속하는 것인가 했어. 나는 요즘 지나간 과거를 착안해 글을 쓰고 있거든. 그래서 그런지, "순간"에 시점을 두고 네 글을 바라보게 되었달까. 아 그리고 확실히 주인공과 나뭇가지의 관계성은 무언가 동류로 느껴져서, 무척 쓸쓸한 느낌을 받았어. 어쨌든 네가 "무능"이라는 생각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느꼈는지, 또 네가 생각하는 무능이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읽게 해줘서 고마워. 많이 사랑해.
읽었어!
얄쌍하다?
얇디앏은 느낌으로 쓴 건데 국어사전에는 등록되있지 않나보네..
국어사전에 없어도 이해가 되네ㄸ
한 가지만 충고하고 갈게.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초라한 게 또 없어. 다시는 이러지 마.
충고해 줘서 고마워. 나도 항상 작품 설명을 덧붙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디씨에서는 내 작품이 어떻게 읽혀지는지 또 내가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글을 썻는지를 비교해보고 대화해 보고 싶어서 설명을 한 것 같아. 다음에 혹시 또 짤막하게 쓸 기회가 있으면 설명을 덧붙히기 보다도 더 확실하게 내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수정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어. 읽어줘서 고마워
처음으로 댓글 써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