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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새벽 2시나 3시 정도 되었을 거야. 차를 타고 뻥 뚫린 왕복 8차선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지. 갑자기 라디오 주파수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FM97.5에 맞춰둔 주파수가 갑자기 휙휙 바뀌기 시작하더니, 80대를 거쳐 70, 60대까지 내려가더라고. 그러고는 64와 68 사이에서 빠르게 왔다갔다거렸지. 난 처음에 일시적인 전파 오류나 라디오 고장인가 싶어, 신경질적으로 다시 97.5에 맞췄지. 이 시간대엔 내가 좋아하는 프로를 하는데, J라는 이름의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여DJ가 나와, 사람들이 보내온 사연을 읽거나 새벽 감성의 잔잔한 음악을 틀어줬지. 간간이 무명 가수들을 불러 홍보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데 듣기엔 최적의 프로라고 할 수 있지. J는 정말 새벽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야.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튼, 그건 그렇고.


주파수는 몇번이고 97.5에 맞춰놓아도 한 10초 정도만 있으면, 다시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누군가 내 옆에 앉아서, 성가신 장난을 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결국 난 그래, 어떻게 되나 하고 가만히 내버려둬 봤지. 그러자 미친듯이 왔다갔다거리던 주파수가 순간, 정말 어느 순간에 딱 66.6 에 멈추더라고.


세상에! 그런 주파수가 존재한다는 게 말이 돼? FM66.6. 난 생전 그런 주파수가 있다는 걸 단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어.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FM방송은 88-108MHz 대역 밖에 없다더라고. 고장이 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주파수지. 무튼, 그건 그렇고.


두려웠지. 왜 안 두려웠겠어? 그런데 내가 두려웠던 건 말이야, 주파수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어. 세상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런 오류나 고장이야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지. 실제로 나를 두렵게 만든 건 뭐냐면...... 그건 바로 66.6이라는 숫자였어. 666. 어떤 의미심장한 상징처럼 보이지 않아?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내게 보내는 어떤 메시지처럼 말이야.
만약에 주파수가 67.3이나 72.9, 뭐 이런 숫자에 멈췄더라면 난 라디오 수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OFF버튼을 툭, 눌렀을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66.6 이라고, 666! 그건 바로 내가 온몸에 공포의 닭살이 돋음에도 라디오를 끄지 않고 내버려둔 이유이기도 하지.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난 계속 FM66.6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어. 다행히도 새벽 시간대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더라고. 도로 주위를 가득 메운 진득한 어둠과 그 주위를 미약하게나마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가로등 빛은 마치 끝이 없는, 무한히 반복되는 런닝머신을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지.
한참을 들어도 라디오에선 연결이 불안정할때 나는, 지직-거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어. 66.6이라는 숫자를 고려한다면, 날카로운 비명소리나 기괴한 웃음 소리가 터져나오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데 말이야.


순간, 난 혹시 몇 백 광년이나 떨어진, 이름도 모를 행성에 사는 어떤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 있잖아? 한번씩 뉴스나 기사에 외계인의 모습을 보거나 음성을 들었다며 인터뷰 하는, 어딘가 맛이 좀 가 보이는 사람들 말이야. 공상에 빠져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 말을 너무 함부로 했나? 뭐, 난 그저 거짓 없이 생각을 말한 것 뿐이야. 아무튼, 난 나도 이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된 건가,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걸까, 지상파 뉴스에 나가서 심각한 표정으로 인터뷰라도 해야 되나, 하는 뭐 그런 잡다한 생각이 들었지.


그러던 와중에 지직거리는 소리는 점차 줄어들었어. 결국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라고. 오싹했지. 그 기분을 표현해 보자면, 무표정을 한 창백한 여자가 날 가만히 쳐다보며 뭔가 중대한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그 직전의 모습 같았지. 표현이 제대로 되었나? 아무튼,
아, 미안. 아무튼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무튼......
그렇게 정적 속에서 엑셀을 밟은 게 한 1분 정도 될 거야. 차는 어둠의 장막을 힘차게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가로등 빛은 창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며 기다란 끈을 만들어냈지. 그리고 그 끈이 끊어지는가 싶을 때쯤, 정적이 깨지며 어떤 소리가 들렸어. 그건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뭔가가 불쑥 하고 튀어나왔다 다시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갑작스러웠지.


너무 더워.
잠깐의 정적 후에 다시 들리는 목소리.
너무 덥다고.


어느 순간, 난 핸들을 왼쪽으로 확 꺾었어. 난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왼쪽으로 길게 나 있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을 뻔 했던 거야.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는지도 몰라. 깜빡 졸았는지도 모르고. 아니, 아니야. 말했다시피, 난 심각한 불면증을 앓고 있으니까 아마 졸은 건 아닐 거야. 잠깐, 불면증에 관해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난 속도를 줄여 마침 왼쪽 편에 나 있는 좁은 갓길에 차를 댔지. 주파수는 다시 지직- 거리며 얼마간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FM97.5에 가서 멈췄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역덕스럽게 말이야. FM66.6은 너의 공상이나 꿈 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투로. 97.5에선 여전히 J가 새벽에 새벽을 더하는 나른한 목소리로 두 세명의 신인 가수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지. 난 라디오를 끄고 좌석에 머리를 기댔어. 이상하게도, 옆으론 차 한대 지나가지 않았고, 그래서 난 이 광막한 어둠 속에 갇혀 버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 아무리 새벽이라도 왕복 8차선 도로에 이렇게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임이 틀림없거든. 하지만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우연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자고. 아무튼,

너무 더워.
그 말이 계속 귓가에 울려댔어. 툭, 하고 냉장고 열리는 소리와 함께 너의 희미하게 웃는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렸지. 냉장고에서 나오는 냉기가 시원하다며 그 앞에 서서 옅은 웃음을 짓고 있던 너의 모습이.




브릿지에 연재하는 소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