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이 동아일보에서 등단했을 때, 당시 평론가들은 등단작을 두고
오토픽션과 그 과정을 기록하는 메타소설의 한 장르라고 김봉곤의 소설을 평한 걸로 기억한다.
이 실험적인 글쓰기와 개인에 대한 성찰은 김봉곤이 <여름, 스피드>를 출간할 때까지도 평론가와 기성 작가들 사이에서 김봉곤의 글에
들어있는 강점으로 꼽힌 게 사실이고. 그 이후론 사랑의 소설가가 되셨는데, 참... 그것도 난 잘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평가에는 항상 거리감을 느꼈다. 그간 한국 문단에 자전적 소설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개인의 내부를 탐구하려는 시도 또한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엔 "소설은 수필이 아니다." 따위의 단평으로
칼 같이 비평을 주던 사람들이 왜 '일기를 쓰는 퀴어'에는 오토 픽션, 메타 소설 같은, 그 이전에는 잘 쓰이지도 않던 말까지
들고 와서 수식해주는지.
그럼에도 나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비판하기가 조심스럽다.
정말 평론가들이 애써서 어떻게든 퀴어 작품 건지려고 이런 수식을 붙여줬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박상영도 그렇고, 김봉곤도 그렇고 그들이 그리는 퀴어가 왜 판으로 찍은 듯 비슷비슷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자전적 삶 바깥의 화자를 그리지 못하는, 관찰력 게으르고 핍진성이 모자란 작가가 오토픽션이라는 허상으로 그 부분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의문은 결국 김봉곤 작가가 퀴어 이외의, 자전적 체험 너머의 인물을 그리고 그걸 성공시켜야 비로소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라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박상영과 김봉곤은 퀴어 이외의 이야기로 뚜렷한 수상을 받은 바가 없는 걸로 안다.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데이 포 나이트>, <그런 생활>
의 네 화자가 가지는 동일성에는 소름이 돋기도 한다.
물론 작가의 특징이란 것을 분명 인정해줘야 하는 부분은 있다.
환상과 신화, 모계 사회를 분리한 최은미를 생각할 수 없듯이. 노동자와 계급 투쟁을 제외한 장강명을 생각할 수 없듯이.
그러나 김봉곤의 작품이 위 두 작가에 비할 만큼 문장에 안정성이 있는지는, 치밀한 플룻이나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하는데.
오토픽션의 글쓰기를 강점으로 김봉곤의 글을 등단시키고 꾸준히 밀어주었다면, 적어도 평론가들은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지 않나 싶다.
오토픽션의 장르가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은 문단계 종사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3753.html (관련 칼럼)
본인들이 사소설을 쓰는 작가를 문단의 총아로 추대해놓고 왜 이제 와서 논란에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는지 정말 의문이다.
다른 작가라면 몰라도 본인들이 '오토 픽션'이라서 뽑았다고 말해놓고, 이제 와서 이걸 예견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
특히 강지희 평론가는 <시절과 기분>에 본인이 해설까지 써주고 정말 몰랐다는 식으로 나오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고 본다.
아니 본인이 소설집에 해설을 썼으면서, '오토픽션'의 작가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소설이 어디까지 허구이고 사실인지 관심 없었다는 게 말이 되나?
그간 평론가들은 김봉곤 소설이 '오토 픽션의 글쓰기 실험'이라 칭찬해주고 정작 그 소설의 인물과 배경이 얼마나 자전적인지는 하나도 몰랐다고?
이게 무슨 코미디지? 자기들도 모르는 걸 칭찬해줬다는 소린가? 그도 아니면 이 사태를 뻔히 알면서도 그걸 칭찬해줬다는 건데
어느쪽이든 앞뒤가 안 맞잖아.
2020 젊작상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나만 해도 이렇게 퀴어 페미니즘 가득한 PC판을,
잘 쓴 것도 아니고 기존 작품상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걸 엮여놨냐고 성토를 그렇게 했는데.
거기에는 귀 막고 자기들이 무슨 미래이고 진리인 것마냥 부득부득 고집 부리면서 자기 작가들 옹호하고 책 펴주고 거기에
해설 달고 앞뒤로 칭찬일색 별 낯이 뜨거울 만큼의 미사여구는 다 붙여다놓고는,
지금 문단이 작가에 대해 하나도 몰랐다고 고백하는 꼴 아니야. 자기들이 칭찬한 점에 영 무지했다고, 책임 면피하려고.
이게 무슨 추한 짓이냐 진짜.
그래놓고 강지희, 김건형은 지금 문학 동네가 잘못했다고, 출판사 문제라고 교묘하게 입장문 냈는데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왜 어른이 되어서 책임을 안 지냐. 자신들이 논란 있는 작가를 고집불통으로 뽑아놓고서 왜 출판사에 기름을 붓냐고.
지금 안 그래도 한국 문학 시장 비좁은데, 트위터에서 문동 불매 운동 해시테그 번져가는 와중에 거기에 화살 돌리는 게 잘하는 일임?
지금 문동에 인세로 생활 꾸리는 작가는 얼마나 많고, 또 거기에서 책 내려고 도전하는 지망생, 신인들은 얼마나 많은데
지금 출판사에 책임 던져놓고 자기들은 쏙 빠지려고 하는 거 아냐. 본인들이 만들어놓은 결과에는 책임도 안 지고.
적어도 19년도에 심사위원 하고 <여름, 스피드>에 해설 썼던 권희철 평론가.
마찬가지로 20년도에 심사위원 하고 <시절과 기분>에 해설 쓴 강지희 평론가는 여기서 발 빼려고 하면 안 된다.
그 외에 오토 픽션을 가지고 김봉곤의 문제작품을 밀어줬던 다수 평론가와 작가들도 책임은 나눠야 한다고 본다.
오토 픽션인 걸 알고, 오토 픽션인 걸 칭찬했고 문단에 수상자로까지 꼽아놨으면
이 사태에 대해 당사자들은 몰랐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그럼 직무유기 한 건데.
문갤에 이런 글이 많아졌음 좋겠다. 비단 이번 사태 관련이 아니더라도.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퀴어소설가로 대표되는 두 작가의 글들에서 느껴지는 묘한 부분도요.
결국 퀴어니 하는 문학 것들도 시간이지나면 주제에서 자연스레 도태될 거라 봄 . 그리고 님이 말했듯이 작가 고유의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퀴어도 시작점이자 개성으로 볼 수는 있지만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혁신이 없다면 곧 스스로 도태될 거 같음. 입장문 나랑 같은 생각이네 나도 얘네들이 은근 발뺀다고 느꼈는데. 글고 사족이지만 김봉곤 작가 경우는 자전적 소설에
너무 과몰입한 것 같다. 그도 그렇고 저 퀴어 둘레에서 과연 얼마나 스스로 끌어올릴수 있을까? 실은, 본인의 실수가 아니 여기까지가 작가 역량의 끝은 아니었을까
동의하는 의견 많거든? 근데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평론가와 문동을 떨어트려놓고 볼 수 없다는 거야 강ㅈㅎ김ㄱㅎ의 입장문은 쇼에 가까웠다고 보고 권ㅎㅊ부터 해서 문동의 오늘날 권위적인 스탠스를 만드는데 일조 아니 그냥 그 자체인 게 문동 평론가들인데 둘 사이를 어떻게 떼어놓고 봐 문동은 평론으로 구축된 하나의 시스템이야 현재 한국 문단에서
2222 왜 문동 머리채 잡냐고 하지마. 문동 책임있고 문동 자체도 뻔뻔해
하긴 네 말이 맞다. 나도 입장문 읽으면서 이게 무슨 유체이탈 화법인가 싶었다. ㅋㅋㅋㅋ 교묘하게 서로 책임 돌리면서 감춰주는 게 진짜...
제일 막강한. 그게 이번에 터진 거지. 문동이 여기서 책임이 자유로운 건 말도 안됨
개인적으로 특정인들을 지목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지양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봄. 여론이 너무 뜨거운데 개인을 불구덩이 집어넣는 건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거같고 피해자분들도 원하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함. 차분하게 그들의 다음글을 기다리는 게 맞지 않을까.
평론가들이 뭘 알고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저 사람들한테 사과문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들 불가피하게 작업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걸 정리하고 성찰해야 하는 시간을 주는 게 맞다고 봄.
미안하지만, 난 이런 반응이 이제 너무 신물난다.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는 게 개인을 불구덩이에 집어 넣는 일이라니. 정치판도 당장 선거 패배하면 지도부가 책임지고 사퇴하고 야구판도 성적 안 나오거나 논란 터지면 프런트부터 감독까지 나와 사과하고 줄사퇴하는데 왜 문학판인 유독 이렇게 이성과 연민을 위시하면서 자꾸 면죄부 주는 거냐. 신경숙 표절 논란 때도 그랬고. 오히려 이런 방식이 내부 자정 작용을 방해하고 잘못을 은폐하는 길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리고 이건 더 이상 문단과 피해자만의 문제도 아니잖아. 지금 독갤만 가도 이제 한국 문학 안 읽겠다는 사람 있는데, 문동에 불매 운동이 트위터로 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걸 단지 개인과 개인의 일로 여기는 그 안이함이야 말로 해결책과 거리가 더 멀지. 평론가들이 뭘 알고 한 게 아니라서 지금 더 화가 나는 거야. 공지영이 사소설 썼다가 전남편과 문제 붉어진 선례가 뻔히 있는데도 사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자기들끼리 <시절과 기분>에 축사 넣어서 앞뒤 화려하게 장식해주고는 왜 고개를 돌리냐고. 성찰은 그간 무수히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안 했었어야지. 문제 터진 다음이 아니라.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책임 좀 지라는 거야. 문학판 왜 이렇게 다른 사회에 비해 책임을 안 지냐.
ㅇㅈ 이상문학상은 거부해도 젊작상은 거부 못하지 출판사가 쎄니까
맞는말이네 심사할 때 매번 말 바꾸면서 결국 대세나 취향따라 뽑음.
당사자성이 갖는 폭력성을 평론가들이 인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책임이 김봉곤 작가와 출판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평론가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수는 없지 ㄱㅂㄱ 소설에 충분히 제기할 수 있었을 윤리적 문제에 대한 비판은 그간 쏟아진 상찬에 비해 전무한 수준인데. ㄱㅂㄱ식 퀴어 오토픽션을 윤리적 재현이라고 추켜세운 평론은 많아도 거기에 내포된 난점에 대한 비평적 논쟁은 없었음. 근데 사실 그걸 짚는게 평론가가 해야될 일 아니겠냐?
너 말대로 당사자성이 갖는 폭력성을 평론가들이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더 비판적으로 의문을 제기했어야 함. 내 생각엔 평론가들의 그런 비평의식이 관습적 상찬이나 마케팅식 리뷰에 마비된게 아닐까 한다. 관련 출판사가 하필 문학동네니까 혐의를 더 피할 수 없겠고
이 사건이 공론화된 원인이 뭐겠어. 모델로 삼은 지인이 원고의 수정을 요청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 거잖아. 그로 인해 지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고. 소설내용이 얼마나 자전적이든 그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지 않을까. 자전적인 내용을 다루더라도 작가와 출판사에게 책임의식만 있다면 이번 일도 문제되지 않았을 테니까. 또한 이번 화두가 마치 문단에 큰 영향을 준 퀴어 문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워. 왜냐하면 김봉곤, 박상영 이전의 퀴어와 지금의 퀴어는 솔직히 다르잖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당사자성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퀴어문학에 대한 탈마법화가 이루어진 것도 분명하니까.
사소설이라고 하면 될껄 그걸 오토픽션이라고 ㅉㅉ 일본 사소설 깔때는 언제고 병신들
다른건 동의하는데 카톡 대화 옮겨쓸걸 예측하는건 무리 아니냐?
이거 읽으면서 궁금해진 거 질문 해본다... 진지하게 비판하는 글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데. 이 글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음. 이 사태에서 평론가들이 져야 할 책임은 무엇일까? 1. 오토픽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위험성을 경고했어야 한다? 2. 소설을 읽으며 어떤 등장인물이 실존하는 인물의 실제 사생활일 것이라고 예상했어야 한다? 3. 작품성이 없는데도 출판사 때문에 지지했다? 어느 포인트를 짚는 것임?? 1번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2번은 예언자하라는 거 아니면 불가능한 거 같고. 3번은 그냥 개인 미적 취향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