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친구들은 언어가 주는 의미 외에도 어감에 예민하다.
그리고 풍부한 감수성으로 글의 분위기를 읽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줄도 안다.
문학. 시. 소설. 수필. 에세이. 작가. 시인. 등등,
글을 쓰며 또 인정받기 위하여 위에 나열한 단어들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곧 세뇌가 된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사회에서 퍼지는 각종 더러운 사건에도
눈과 귀를 닫고 자기만의 거창한 목표를 향해 습관적인 자위를 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이냐 글로 돈을 벌고 싶은 것이냐-
글을 쓰고 싶은 것이냐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냐-
이러한 숱한 질문에도 이미 자기 세뇌에 빠진 친구들은
자기가 만든 의미로, 목표와 스스로를 꾸미고 문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질문 (왜 문학을 하는 것이냐?)과 문학 비판은
세뇌에 빠진 이들의 자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문단으로 하여금
숱한 지망생은 강렬한 소속감을 필요로 하게 되고
지망생은 그 대안을 찾아서 동호회, 카페, 밴드, 사이트를 전전한다.
이 역시 자위에 다름 아니다.
그 명목으로, 변명을 찾기 위하여 꾸준히 '필력'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라 속이고
또 실제로 그러한 노력을 하긴 하지만. '필력'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정의되어 있지만
도대체 '수준 높은 필력' 이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적재적소에 멋진 한자어를 사용하여 문단을 맺어주고
아름답거나 독창적으로 참신하거나 색다른 개성 있는 비유로 감탄을 자아내거나
대중(대부분)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찾아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거나
등등의 단어 맞춤과 문장 흐름을 잘 이어 기어코 '감탄'이 터지는 글!
그러나 모든- 유재석도 그러하고 김태희도 그러하고 방탄도 그러하듯이
매 방송마다, 매 무대마다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쥐어 짠 한 순간의 그림이다.
필력을 쌓는다고 그냥 아무렇게 글을 쓴다고 좋은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매번 고심하고 두뇌를 쥐어 짜서 대단한 정신력을 쏟아 부어서 글이 나오는 것이다.
'필력'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있는 '문학'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돈이 안 되니까 문학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재능이 문제도 아니고 전망이 문제도 아니다.
'문학은 죽었다' 하는, 직설적이고 군더더기 없어 간지 넘치는 비판 명제는
앞서 말한 듯이 지망생의 자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뿐.
실질적인 문제 또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문학이 죽었든 살았든 돈이 되든 안 되든 재능이 있든 없든
자기만의 '문학'이란 단어가 주는 쾌감, 분위기.
본인이 문학을 한다고 생각하는 그때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그 흥취,
그러한 자위에 습관화 되어버린 세뇌가 바로 '문학'을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숱한 지망생은 빠져나올 수 없다.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뇌가 그렇게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허름한 행색을 하고 전자책을 마다하고 먼 거리의 서점으로 향해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비판하며
자기 두개골 속에 갇힌 '문학'의 흥에 취해 공장에서 찍어 나온 책 냄새를 들이마시며
성인 잡지나 일본 동인지, 라노벨에서 똑같이 나는 그 인쇄소 냄새에 우아하게 파묻혀
빈손으로 터벅터벅 나오는 모습이 예견되지 않나.
제 값 주고 물건을 쥐어본 적 없는 자연주의 손으로
떨어진 나뭇가지나 잎을 부여잡고 쓸쓸하게 말이다.
세뇌에 빠진 이들은 그 모습마저도 고풍스럽게 느끼겠지.
궁상맞은 것과 구분 못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이제 그만 망상 집어치우고 SNS에서 관종 짓이라도 하자.
부끄러워서, 비참해질까 봐 나서지 못하고 숨죽여 글 쓰는 친구들아.
꾸준히 자기 피알하며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면 자연히 도태되며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유명해지면 전봇대에 오줌을 싸 갈겨도 누군가 알아준다.
지금 지망생이 해야 할 건 고여서 썩은 문단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애가 어른 흉내 내듯이 현재 문단을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문학이 죽었든 살았든 돈이 되든 안 되든 재능이 있든 없든 자기만의 '문학'이란 단어가 주는 쾌감, 분위기. 본인이 문학을 한다고 생각하는 그때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그 흥취, 그러한 자위에 습관화 되어버린 세뇌가 바로 '문학'을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자기 두개골 속에 갖힌 '문학'의 흥에 취해 공장에서 찍어 나온 책 냄새를 들이마시며 성인 잡지나 일본 동인지, 라노벨에서 똑같이 나는 그 인쇄소 냄새에 우아하게 파묻혀 빈손으로 터벅터벅 나오는 모습이 예견되지 않나.
주옥같은 명언이다..
자위를 자기는 안 한다는 시늉. 그게 거짓이지. 언어 자체가 자위를 하라고 맹글어진 건데.
이런 곳에서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만나 즐겁기는 하지만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어르신 같은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만. 본문에서 말하는 자위는 훨씬 깊이도 얕고 좁은 의미입니다. 습관적으로 문학이라는 자위를 하게 만드는 '단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의 세뇌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지금 지망생이 해야 할 건 고여서 썩은 문단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좋은 말이네. 지망생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통용되는 말인데, 지금 문단에서 이런 패기를 가진 작가가 과연 있을까?
ㄴㄷㅆ
자위는 지가 쓴 글 보고, 와 좆나 잘 썼다, 하는게 자위지 단어 선택이 좀 틀렸다는 생각이 안드시는지. 자위질의 정도가 심해져서, 와 나 천잰가봐 근데 왜 내 글을 안알아 주지? 왜 등단이 안되지? , 이게 세뇌 단계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적당한 자위는 스스로에게 글을 쓰게끔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이게 지나치게 되면 세뇌가 되는 것, 뭐든 적당한
그건 당신의 일개 관점에 불과하고요. 수고하셨습니다.
것이 좋다 예술을 제외하곤, 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예능분야는 역시 취미일때가 좋은듯. 직업이 되는 순간 지옥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는거 같어.. 그래서 난 예술은 악마의 영역이라고 생각함.
그럼 봉 감독은 상위 악마와 계약을 했구나
문학이 뭘까? 라는 질문을 하게되면 우리는 자기도모르게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떠올린다. 나같은 경우엔 톨스토이, 랭보, 박경리 같은 작가들 작품을 떠올리지. 역으로 생각하면 '문학'이라는 것의 실체는 없어. 자기가 자기나름대로 만들어놓고 우기다가 사람들이 같이 고개끄덕여주면 그게 길이 되어서 새로운 방향성이 되는거야. 그러니깐 여떻게 생각하면 중요한건 자신감
이지. 지금 유행하는 페미나 퀴어도 비슷한 맥락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