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몸을 싣고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순간들을 엮어 모자를 만들어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1
옆자리에는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유독 키가 크고 힘이 약한 아이였다. 지금보다 모든 것들이 좀더 터프하던 시절이다. 키가 크다는 것이 폭력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꺾이질 않는 녀석이었다.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과자를 건넨다. 속이 메스꺼웠기에 거절했다. 키미테를 꾹꾹 눌러대며 먼 산을 바라본다. 나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나 역시 그 친구 옆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2
적응이 느린 편이었다. 멀미이든, 학교 생활이든. 그러나 결국에는 보통보다 나은 수준이 되었다. 학교에서 살아남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자, 좀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버스가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대화를 나눈다. 멀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되는대로 지껄인다. 가능한 크게 웃는다.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싸구려 캐리커쳐 같다. 내 것이라기엔 낯설고, 내 것이 아니라기엔 미안한.
#3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른 저녁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맨 뒤칸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창문 밖으로, 나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풍경이란 인간의 망막에 드리운 그림자 같은 것이다. 한없이 외로워진다. 누구도 나와 같은 노을을 바라볼 수 없다. 눈을 도려내어 그대로 바치고 싶다. 식상한 표현을 보니, 분명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혐오의 가장 흔한 변명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했던 딱 그만큼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멀쩡히 살아있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니었거나,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거나.
#4
충동적인 여행이 언제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다섯 시간 동안 낯선 거리와 낯선 표지판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된 연애소설을 읽었다. 떠나는 만큼만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라던가. 어쩌면 너무 멀리 떠났고 너무 많이 두고 온 것일는지 모른다. 그저 어디로든 가버리고 싶었다. 여자를 이유로 떠난다고 일러두었다. 만나러 간 것인지, 버리러 간 것인지, 잊으러 간 것인지. 어차피 울어야 한다면 바다가 없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남자의 울음은 겨울바다 같아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다. 되도록이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최대한 쓸쓸한 느낌을 살리라고. 바다가 없는 도시에는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왔다.
#5
먼 곳에 다녀올 때마다 한 조각씩, 나는 나를 토막낸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있다.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나는 사시사철 같은 이불을 덮고 잤더랬다. 더는 이불이라기보단 누더기에 가까운 그것을, 결국 아버지가 내다버린 어느날, 나는 몇 시간을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내가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없었다. 이불을 발로 차는 습관은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1
옆자리에는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유독 키가 크고 힘이 약한 아이였다. 지금보다 모든 것들이 좀더 터프하던 시절이다. 키가 크다는 것이 폭력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꺾이질 않는 녀석이었다.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과자를 건넨다. 속이 메스꺼웠기에 거절했다. 키미테를 꾹꾹 눌러대며 먼 산을 바라본다. 나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나 역시 그 친구 옆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2
적응이 느린 편이었다. 멀미이든, 학교 생활이든. 그러나 결국에는 보통보다 나은 수준이 되었다. 학교에서 살아남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자, 좀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버스가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대화를 나눈다. 멀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되는대로 지껄인다. 가능한 크게 웃는다.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싸구려 캐리커쳐 같다. 내 것이라기엔 낯설고, 내 것이 아니라기엔 미안한.
#3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른 저녁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맨 뒤칸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창문 밖으로, 나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풍경이란 인간의 망막에 드리운 그림자 같은 것이다. 한없이 외로워진다. 누구도 나와 같은 노을을 바라볼 수 없다. 눈을 도려내어 그대로 바치고 싶다. 식상한 표현을 보니, 분명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혐오의 가장 흔한 변명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했던 딱 그만큼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멀쩡히 살아있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니었거나,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거나.
#4
충동적인 여행이 언제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다섯 시간 동안 낯선 거리와 낯선 표지판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된 연애소설을 읽었다. 떠나는 만큼만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라던가. 어쩌면 너무 멀리 떠났고 너무 많이 두고 온 것일는지 모른다. 그저 어디로든 가버리고 싶었다. 여자를 이유로 떠난다고 일러두었다. 만나러 간 것인지, 버리러 간 것인지, 잊으러 간 것인지. 어차피 울어야 한다면 바다가 없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남자의 울음은 겨울바다 같아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다. 되도록이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최대한 쓸쓸한 느낌을 살리라고. 바다가 없는 도시에는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왔다.
#5
먼 곳에 다녀올 때마다 한 조각씩, 나는 나를 토막낸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있다.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나는 사시사철 같은 이불을 덮고 잤더랬다. 더는 이불이라기보단 누더기에 가까운 그것을, 결국 아버지가 내다버린 어느날, 나는 몇 시간을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내가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없었다. 이불을 발로 차는 습관은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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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먹고 컸을까, 이불 사랑 보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