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화가 좋아? 조화가 좋아? 뭐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 엄마는 생화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 "

" 가치의 기준은 뭐에요? 생화가 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 인간은, 생화 하나를 못 만들어서 조화를 만들었잖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꽃이 필요하고, 나비, 벌도 꽃이 필요하잖아. "

" 그건 인간, 나비, 벌의 기준이고요. 저는 벌레가 안 꼬이는 조화가 좋아요. "


" 성경에 쓰인 말들이, 이러이러한 동물은 먹지 말고, 시체를 만진 다음에는 이만큼 씻고, 시간이 지나야 하고.. "

" 왜 그런 얘기를 써뒀을까요? "

" 사람이 죽지 말라고 써둔 거지. "

" 이유는 안 알려주고요? "

" 그때는 병이고 뭐고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잖아. "

" 지금의 기술은 못 알려주고 그것만 알려줘요? "

" ... "

" 그럼 현대 의학기술을 몰라서 죽은 사람들은 뭐에요? 그건 알려줄 수 있고 이건 못 알려주는 거에요? "


" 세상엔 원칙과 규칙이 있어, 그중에 변하지 않는 원칙이 더 중요해. "

" 원칙은 왜 중요한데요? 불변성이 가치판단의 기준인 거에요? 그럼 왜 현대 국가들은 법을 고쳐가면서 써요? "

" 성경을 못 읽어봐서 그래, 이걸 읽어보고.. "

" ... "

" 아들은 엄마가 다 틀렸다고 생각하니? 다 개소리같고? "

" 엄마는 엄마 생각 얘기하신 거잖아요. 저는 제 생각이고. "


" 아들이 원하는 게 뭐야? 여자가 되는 거? "

" 못 해주셔요? "

" 응. 못 해주겠어. "

" 지금까지 해주신 건 뭔지 말하실 수 있어요? "

" 없어. 미안해. "

" 앞으로 그거 해주시면 되잖아요. "

" 못 해줘. 미안해. "

" 남는 건 혈육 뿐이라면서요. 혈육으로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줬고 무엇을 해주실 수 있는데요. "

" 미안해. "

" 저 집에 갈 테니까 이만원만 주세요. 이자 원하시면 붙여서 갚을게요. "

" ... 안 돼. "

" 왜요? "

" 너 미성년자야. 마음대로 하면 안 돼. "

" 지금까지 네가 선택하고 네가 책임지라고 말하셨잖아요. 아까는 강조하신다고 한번 더 말하셔놓고. "

" ... "

" 혈육이고 미성년자인 아들한테 지금까지 뭘 하셨어요? 뭘 해주실 거에요? 혈육밖에 없다면서요. "


보였다. 없는 사정에 돈 들 일이 생기니 그 같잖은 신앙 들먹이면서 둘러대려고 하는 꼴이.

결국 사람의 본질이란 그랬다. 혈육은 그냥 관계의 한 종류일 뿐이다. 다른 관계랑 별다를 것 없는.

내가 우려하던 최악의 최악이란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돈이 없다면서 아무것도 못 해준 사람이.

앞으로도 아무것도 못 해주겠다고 하는 꼴.

부모란 그런 것인가?

혈육이란 그런 것인가?

혈육과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하다고 지껄이는 것 뿐인가?

내가 과분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내 가족을 먹여살리겠다고 뼈빠지게 일하던 아빠는, 코로나 때문에 순항중이던 사업이 망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배달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엄마는 뭘 했지?

앞으로 2년동안 나에게 뭘 해줄 거지?

지금까지 뭘 해주었지?

가족이란, 혈육이란, 부모란, 결국 남인가?

그렇게 엄마가 강조하던 가족과 혈육이란 가치는 신앙보다 뒤쳐지는가?

신앙. 과연 신앙에 의한 거부일까?

그냥 자기 돈 쓰기 싫은 멍청한 욕구일 터다.

이제와서 나와 같이 살자고 제안했던 것도, 2년, 3년. 성인이 되기 전까지 별로 돈 안 들이고 생색내고, 자신에게 위안을, 병신같은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서.

[ SHOW THE LADY ]

나가서 드라이브라도 하자며, 입고 나오라고 던져놓은 옷에 쓰인 글귀였다.

그냥 유쾌한 극일 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난 병신이다. 부모란 작자가. 아무것도 못 해줄 작자가 부모 운운하고 혈육 운운하며 나를 조롱할 뿐인 부모에게, 한참 놀아난 병신이다.

이게 조롱이지 아니면 무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