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가 입원하기 전에 쓴 글이다.
신기하게도 몇몇 문장은 소위 "파열적 언어"를 사용하는 몇몇 시인들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시적인 언어와 정신병적인 언어는 같은 걸까? 혹시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최근에 파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유명한 유계영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에그
깃발보다 가볍게 펄럭이는 깃발의 그림자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창밖의 무례한 아침처럼
그러니까 다가올 키스처럼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혀의 위치처럼
새는 뜻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다
새가 머무는 날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자는 잠
그런 잠은 싫었던 거야
삼백육십오 일 유려한 발목의 처녀처럼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
새는 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나는 알을 처음 본 게 아니지만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두 글의 공통점은 일반적인 언어로는 해석되지 않는 본인만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조현병자들의 글이 위의 사례처럼 시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위의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마친 후 쓴 글을 보면 그가 애초에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언어적 능력 + 본인만의 언어체계가 겹쳐져 시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시인들이 이러한 언어의 파열을 본인의 문체로 사용하여 낯설게 보기를 극대화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모호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 문법을 파괴한다.
2. 독자에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낯설고 신비하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위에서 소개한 유계영 시인의 시 <에그>의 경우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두 가지 효과를 탁월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사실 조현병자의 말하기 방식과 다르지 않다. 조현병자의 세계는 애초에 모호하고 낯설며 망상적이다. 또한 언어의 와해라는 증상은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본인만의 언어체계를 수반한다. 그들의 세계는 당연히 일반인에겐 낯설다. 즉 유계영 시인이 사유하는 방식과 조현병 환자의 사고방식은 과정만 놓고 보면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것은 시가 되고 어떤 것은 단지 망상이 되는 것일까?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사유의 특별함"에 있다. 조현병 환자의 글은 단지 병원에 입원해서 겪는 현실적인 상황을 본인만의 언어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유계영 시인의 시는 조금 어렵지만 풀어보자면 "탄생과 생명의 숙명적인 우연성과 이로인해 촉발되는 감정"에 관한 것이다. 탁월한 형이상학적 사유이다.
최근에 많은 습작생들이 파열적인 언어를 시에 동원한다. 파열적인 언어가 시에 효과적으로 환상성, 모호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열적인 언어는 도구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파열적인 언어가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만의 언어체계에 숨겨진 사유가 깊고 특별해야 한다. 또한 그 사유가 파열적인 언어가 주는 미적 효과와 잘 어울리는 형이상학적인 것이어야 한다.
언어의 파열을 사용하는 많은 시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조현병자의 글이 병신같은 이유와 다르지 않다. 위에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나는 우울하다. 나는 화났다. 나는 짜증난다." 이러한 단편적인 감정들을 본인만의 자위적인 언어로 드러내기 때문에 시가 실패하고 단지 알아먹기 힘든 글이 되는 것이다. 파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상"이 있다. 이상의 시는 왜 탁월한가? 그가 단지 기존 언어체계를 부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단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불확실과 흔들림에 관한 깊은 사유였기 때문이다.
파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습작생들이라면 이러한 핵심을 늘 기억하면 좋겠다. 파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시가 알아먹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은 징징대지만 말고 이런 점에 집중해서 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시인의 사유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
쉽게 말하자면 주제와 발견이지.. 현대미술이 점 하나 찍어도 어린아이가 낚서해 놓은 것과 엄연히 다른것처럼. 하나의 표현하고자 하는 통일된 관념과 정서가 있어야 시. 보는 눈 없는 사람들 눈엔 다 같아 보일테니 시를 쓰고 본인이 자기 시에 대한 해석을 달아보는것도 좋은 연습일거야. - dc App
헐 왜 낚서라고 써있지 ㅋㅋ 오타란다 얘들아 ㄱ이 하나 더찍혔네 - dc App
한번쯤 누구나 생각해볼만한 부분인데 이렇게 고찰한 글 너무좋다. 문갤에 글 많이 써주렴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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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현병 환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인데 ㅋㅋㅋ
아 넹;; ㅎㅎ
예전에 대마빨구 글쓰다 잡혀간 문창쟁이 생각나네 - dc App
너무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이건추 - dc App
겉보기엔 그럴듯하게 비슷하지만 환자의 글은 역시 지리멸렬하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