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없어... 사연이....”
그는 손가락으로 펜을 굴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야기에 사연이 없어... 팔릴만한 사연이...”
그는 휴대폰을 자신의 책상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고는 음성 파일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어떤 여성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고독사를 하시는 분들은 정말 말 그대로 외롭게 돌아가시는 분들이에요. 저희 기관에서도 어르신들이 고독사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팔방으로 뛰어다니긴 하지만 항상 역부족이고요. 그분들이 어떻게 발견되는지 아세요? 냄새 때문이에요, 냄새. 아무도 없는 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시체가 가만히 누워 있다가, 더 이상 그 썩는 냄새를 참을 수 없게 된 이웃 주민들의 신고 때문에 발견되는 거죠. 결국 그분들에게는 숭고한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아요. 죽음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주민들의 기억에 냄새나는 죽음, 더러운 죽음 따위로 남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사후처리가 잘 되는 것도 아니에요. 어렵게 어렵게 가족들을 찾아내도 ‘그런 사람 모릅니다.’,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같은 무뚝뚝한 대답 말고는 돌아오는 게 없거든요. 기자님,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이건 정말 커다란 사회적 문제에요. 제발 좋은 기사로 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알....’
그는 듣고 있던 녹음 파일을 중간에 꺼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김 선배, 방금 그거 이번 특집 기사 취재 내용이에요? 괜찮은 것 같은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괜찮긴 인마 사연이 없잖아, 사연이. 후... 독거노인 보호기관 직원 인터뷰만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하단 말이지. 기왕이면 실제로 고독사한 노인의 자식을 만나고 싶은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부모랑 연을 끊은 경우가 많아서, 취재 자체가 힘들고...”
“엥? 그런 사람들 인터뷰는 이번 기사 방향이라는 조금 다르지 않아요? 걔네들이 몇 년 동안 안 보고 산 부모님들 때문에 울리도 없고. 오히려 이렇게 감성적인 보호기관 직원이 방향에 맞지 않나?”
“니가 그러니까 아직 하수인 거야 새끼야. 내용이야 어떻게든 맞추면 되는 거고. 자기 부모가 죽었는데 눈물 흘리기는커녕 잘 죽었다는 듯이 말하는데, 얼마나 자극적이겠냐? 거기에 약간이라도 패륜적인 말 몇 마디만 해주면 그게 바로 잘 팔리는 사연인 거라고.”
“아이고, 김선배님. 그러다 큰일 납니다. 진짜 고소당하시면 어쩌려고요.”
“그러니까 요리조리 잘 피해서 써야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 인터뷰는 힘들 것 같긴 하다. 취재원 구하기가 너무 어렵네. 다른 괜찮은 소재는 뭐 없냐?”
“음, 저는 치매를 소재로 쓰려고요.”
“치매? 뭐 괜찮은 사연은 있냐?”
“뭐, 일단 방향은 치매라는 질병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는 쪽으로 잡았어요. 선배도 그거 아시죠? 치매 환자들이 직원으로 일하는 음식점. 아마도 서빙을 경증 치매 환자들이 한다고 했었나? 다음 주에 거기로 취재 가려고요. ‘치매환자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뭐 이런 방향으로 쓰기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더라고요.”
“아, 그 가게? 들어봤지. 근데 그 사연은 좋긴 한데, 이제 너무 닳지 않았냐? 워낙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안보일 텐데...”
“취재해 보면 좋은 사연이 생기겠죠. 트래픽 수 올리겠다고 자극적인 소재를 막 갖다 붙일 순 없잖아요?”
후배는 말을 끝내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진한 새끼...”
그는 손에 펜을 다시 쥐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허리를 의자에 깊숙이 파묻고 상상을 시작했다. 고독사한 독거노인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마구 욕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사망한 노인이 소주를 마시며 아들을 그리워하는 걸 봤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고독사한 노인에 대한 동정이 빗발치는 자기 기사의 댓글 창을. 그는 거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접고 눈을 희미하게 떴다. 펜은 어느 순간 책상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연이 없어... 사연이...”
2019. 12.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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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굉장히 좋은 글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앞부분 쪼끔 읽어봤는뎀 ... 신화(신들 이야기) -> 서사시(영웅들 이야기) -> 비극(고귀한 인물들 이야기) -> 로망스(기사 이야기) -> 소설 -> 요즘소설(정신병자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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