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작년에 잠깐 문갤하면서 짧은 글 몇 개를 올렸었어. 듣기로 여기 애들 다 똘아이 같다기에 욕이라도 진탕 먹으려고 그랬지. 근데 예상외로 다들 좋은 말들을 해줘서 기운을 얻고 갔어.
그때 내가 올린 글은 에밀리 외 기타 등등이었는데... 아마 기억하는 애들은 없겠지.
당시에도 절필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올해 결심이 섰어. 오늘 중고서점 사장님 불러다가 용달차에 책 실어 보냈어. 글을 오래 쓰면서 삶의 방향이 글쓰기에 맞춰져 있던 탓에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쓰고 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
20대 초반에 시로 한 번 최종심 가고 중반에 소설로 최종심 한 번 간 게 내 이력의 전부야. 그 사실 또한 다 지워버리고 싶은데 인터넷에 실린 내 글 제목은 어떻게 지울 수가 없네. 가기 전에 이번에 투고한 것들 중 단편 하나 올리고 갈게. 어떤 이유로든 완벽한 타인으로 된 독자를 내 글한테 주고 싶어서.
참. 에밀리 읽고 예전에 누가 나보고 여자냐 물어봤었는데 뻥쳐서 미안. 논바이너리 안드로진이지만 나 여자 맞아.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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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인물화 다시 묻을까, 하고.선풍기 바람을 쐬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엿보았더니 루즈핏 티셔츠를 가슴께까지 들춘 자세. 선생님의 작고 앙상한 상체가 훤히 드러났습니다. 뭐를요, 하고 내가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듣지 못한 눈치였습니다. 밖에선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에선 3단으로 설정해둔 선풍기 바람 소리가 만발했습니다. 나는 턱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습니다. 점점이 젖은 손을 허벅다리에 문질렀습니다.프라이팬에 부챗살 스테이크를 올려두었습니다. 치이익, 기름 번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분이 지날 즈음 자른 마늘을 얹었습니다. 2분이 지날 즈음 스테이크를 뒤집었습니다. 3분이 지날 즈음 다시 뒤집고 버터를 칠했습니다. 또다시 뒤집어 프라이팬에 버터를 골고루 녹였습니다. 1분에 한 번씩 스테이크를 뒤집다가 문득 하얬지,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속살도 정말 하얗구나.부챗살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겨 담고 손을 씻었습니다. 레스팅 하는 동안 감자 샐러드에 후추를 뿌렸습니다. 접이식 탁자를 펼쳐 스테이크 담긴 접시를 내 곁에, 샐러드 담긴 대접을 선생님 쪽에 두었습니다. 포크로 양상추를 뒤적이며 냄새가 좋다, 하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고기 냄새밖에 안 나는 걸요, 말하고 나는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썰었습니다. 조각난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고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감자에 사워크림을 묻혀 씹던 선생님으로부터 희미한 땀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맛있다고, 선생님이 말하기에 뭘요, 하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뭐를요.뭘 다시 묻어요, 선생님. 맞다. 그 얘길 하고 있었지. 깜빡했어, 오물거리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학생 개 말이야. 좋은 곳에 다시 묻는 게 어때?좋은 곳, 말인가요.응. 좋은 곳은 많으니까.묻은 지 10년도 더 됐는데요.그 정도론 뼈 안 없어져. 같이 해보자.선생님이랑 제가요?둘이서. 주말에 시간 돼?모르겠어요.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시간 될 거예요. 점심 즈음에 볼까요.좋아. 삽이랑, 삽 말고 또 뭐가 필요할까. 뼈를 담기 좋은 항아리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려나. 그런 건 내가 살 테니까 학생은 꽃이라도 사지 그래? 백합 같은 거. 용돈 다 떨어졌으면 내가 사주고.선생님이 왜요. 제가 사야죠.빡빡하게 굴 필요 없어. 나 엊그제 과외비 들어왔으니까.저 말고 몇 명한테 과외 해주는데요?팀 과외까지 합치면 아홉 명쯤 되나.많아요.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둬야 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아저씨 같은 충고예요.기분 나쁜걸. 나 학생이랑 몇 살 차이 안 나는데.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저는 학생이니까요. 선생님은 사회인이고 저는 고등학생. 사회인은 성인이고 고등학생은 미성년자. 서로 형 동생 할 처지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주말에 보는 거로 알게요. 토요일이랑 일요일. 어느 쪽이 좋으세요?토요일로 하자. 일요일엔 여자친구 보기로 했어.애인이요?말 안 했나. 학생은?네?연애 말이야. 하고 있냐고.그런 게 왜 궁금한지 잘 모르겠지만, 우적거리며 내가 말했습니다. 저는요, 선생님.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거든요. 좋아한다는 거,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선생님을 배웅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교복을 벗고 몸을 씻었습니다. 물기를 대충 닦고 거실 바닥에 누웠습니다. 선풍기를 1단으로 설정해두고 노을 물든 바깥을 보았습니다. 매미 우는 소리가 어느새 멎었고, 마당 한쪽에 무리 이룬 바늘꽃이 더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개는 죽었고, 저곳에 묻었다.나는 부러 상기했습니다. 몸을 일으켜 종아리를 껴안았습니다. 털 나고 거뭇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옷을 사야겠어. 엄마가 사다 준 것들 빼면 그럴듯한 외출복이 없구나. 나는 핸드폰으로 가까운 SPA 브랜드 매장을 검색해봤습니다. 올여름 유행하는 코디를 찾아보다가 손가락 접으며 용돈을 셈했습니다. 하나, 둘, 접다가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중얼거리며 빨래 건조대에 널어둔 속옷을 집었습니다. 축축한 직모를 머리 흔들어 털었습니다.책상 중앙에 크로키 북을 두었습니다. 핸드폰에 종합격투기 선수의 사진을 띄웠습니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4B 연필로 크로키 했습니다. 파이팅 포즈를 취한 남자를, 높이 발 뻗는 남자를, 주먹 내지르는 남자와 팔짱 낀 남자를, 마운트 하는 남자와 상대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워 방어하는 남자를, 그리던 도중 시간이 초과하여 멈췄습니다. 크로키 한 것들을 사진 찍어 선생님에게 전송했습니다. 많이 늘었구나. 많이 늘었다는, 선생님의 답장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잘 돌아가셨나요. 그저 잘 돌아가셨냐는, 문장을 나는 쓰고 지우기 반복했습니다.빨간펜을 쥐고 크로키 한 것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도식적으로 나열된 몸의 윤곽 속에 선분을 몇 가닥 그어봤습니다. 틀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뭉뚱그려 크로키 한 뒤 속마다 근육을 채워보라고, 본인 또한 그렇게 사람 몸을 배웠다고 선생님이 말한 적 있었습니다. 나는 발치에 놓인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집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사람 속에 그려 마땅한 근육을 복기했습니다. 뻔히 나열된 사람 그림을 보며 사람 속을 다 알면 사람 몸도 다 아는 셈일까, 의문했습니다.개를 묻기 좋은 장소를 검색해봤습니다.죽은 반려동물은 보통 매장되지만, 실은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하는 처사랍니다. 반려동물의 사체는 유기 폐기물로 분류되어 지정된 장소에만 매립 가능하고, 따라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실용적이지만 실효성 없는 법률 같았습니다.상기된 법안은 정서적 거부감을 유발하므로 반려동물 화장시설이 애용됩니다. 집 근처 화장시설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를 찾아봤더니, 사람을 화장할 때와 흡사한 방식으로 장사지낸 뒤, 봉안당에 두거나 수목원에 골분을 뿌려 애도한답니다. 사진 속 봉안당은 너무 말끔했고, 수목원은 과하게 싱그러웠습니다. 뼈만 남은 개를 가지고 들르기엔 무리였습니다.프랑스에서 3년 동안 유학한 선생님 말로는, 유럽권 국가에선 화장이 꺼려지기에 반려동물 묘지가 이용된답니다.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 묘지를 마련한 국가가 곧 프랑스. 그곳 이름은 르 시메티에르 데 시앙Le cimetière des Chiens. 즉 개들의 공동묘지라 한답니다. 개들의 공동묘지엔 현재 수십만 마리의 반려동물 사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개 한 마리쯤 더 묻는다고 해서 무리 될 것 없겠습니다.좋다.좋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이국이란 막연한 호감을 품기 좋게끔 멀기에 이국입니다. 프랑스에서 훈련된 선생님의 만화를 처음 보고 내가, 이국을 몰랐던 나머지 막연히 좋다고만 감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그림은 좋아하지만, 그저 막연하게만 여길 수는 없게 된 것과 다르게 말입니다.그래도 좋다.좋다고, 나는 역동적이지 못한 크로키들 사이에 써두었습니다. 좋다는 건 좋아하는 거라고 써두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좋다, 그리고 하다로 구성된 동사이며 일단 좋다면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고 덧붙여 써두었습니다. 좋아하지 않고 좋기만 할 수는 없을까. 좋기 시작하면 모르는 사이 좋아하게 되고야 마는 걸까. 그저 좋다, 라는 말은 어쩐지 막연하게 느껴지는 데 좋아한다, 라는 말은 도무지 막연하게 치부할 수가 없다고, 나는 써두었습니다.써둔 문장에 선분을 직직 그었습니다.빨간펜을 바로잡았습니다. 크로키 한 몸의 윤곽 속을 붉게 채워나갔습니다. 근육은 숱한 섬유 다발,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근육은…. 고기는 근육의 집합. 닭발이나 돼지 껍데기를 제외하면 고기는 모두 근육. 근육은 고기. 고기는 식자재고 근육은 숱한 섬유 다발. 고기는 좋아. 근육은 싫어.좋은 곳보다는 좀 더 명확한 지점이 필요해.싫어도 하는 수 없어.어떻게, 또는 왜.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내가 죽인 개를 묻기 좋은 곳을 떠올려봤습니다. * 선생님과는 작년 초겨울에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만화가 SNS에서 유명했던지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어에 선생님이 참가할 거란 소식을 듣고, 점심시간을 틈타 학교에서 빠져나온 덕분이었습니다.도착해서 보니 선생님이 부스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앙상하다고 말해도 좋을 법했습니다. 상자 속에 엎어져 있는 목각인형 같은 꼬락서니. 오버 사이즈 코트가 선생님의 작은 몸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였고, 도넛 모양 안경 속 눈가엔 기미가 역력했습니다.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선생님은 몸을 일으켜 인사했는데, 인사받기 부끄러웠던 나는 구석진 곳에서 책을 집어 훑을 따름이었습니다.크다, 하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누굴 말하나 싶었는데 나를 향한 감탄이었습니다.교복을 입은 걸 보니 학생 같은데, 말하며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죄송해요, 답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땡땡이쳤어요. 여기 오고 싶어서요.나한테 죄송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나로선 오히려 고맙지. 내 만화 본 적 있어?나는 책으로 하관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팬이거든요, 하고 말했습니다.선생님은 한 권씩 저작을 소개해줬습니다. 모두 인류의 미래를 상정한 만화들이었습니다. 해저에서 살게 된 인류는 팔을 잃은 대신 지느러미를 얻었고, 대기 오염에 노출된 인류는 눈, 코, 입, 귀 표면에 점막으로 된 거름망을 두었습니다. 팔다리를 기계로 시늉하게 된 인류는 비대한 뇌 달린 머리만 남았고, 외계인에게 먹히기 좋도록 개량 당한 인류는 온갖 살집으로 두툼해졌습니다.그리고 그게 가장 최근에 작업한 만화야, 말하며 선생님은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내 하관을 가린 책을 보던 거였습니다. 책을 펼쳐봤더니 온통 기하학적인 문자로 가득했습니다. 문자라 생각했지만 도통 읽어낼 수가 없어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글자처럼 보이니, 그림처럼 보이니.나를 올려다보며 선생님이 속삭였습니다.나는 생각하다가, 글자가 된 건, 하고 질문했습니다. 과거의 인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요.과거의 글귀는 현 인류가 분석 가능할 테니 글자지,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글귀는 짐작하는 게 고작이니 그림이야.선생님은 웃었습니다.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미래 인류의 모습이야.그날 나는 선생님의 만화 세 권과 에코백을 사서 귀가했습니다. 몇 달 뒤 선생님의 SNS에 과외 학생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명기해두었습니다. 기억할까 싶어서,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났던 몸집 큰 학생이라고도 써뒀습니다. 그때부터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마다 선생님이 입시 미술을 가르치러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처음 수업했던 날, 선생님은 내 그림 몇 장을 본 뒤 유럽 계통 만화가들 영향이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나는 유럽 만화를 본 적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주로 일본이나 국내 만화를 볼 뿐이라고, 말하며 나는 무릎을 모았습니다.그럼 나한테 영향받은 거겠다. 내가 유럽 작가들한테 배웠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니야. 여길 봐.선생님은 내 그림을 책장에 나열했습니다.인물들 동작이 죄다 심심해. 정면을 보고 서 있거나, 옆 모습, 앉아 있는 자세를 그린 것이 전부야. 몇 장은 투시가 틀렸어. 얘는 손이 너무 커. 이 그림 같은 경우엔, 발이 이렇게 강조되려면 종아리가 보통 사람보다 두 배 이상 길어야 해. 전부 기본기가 충족 안 된 상태로 데포르메 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야.저기, 하고 내가 말했습니다. 데포르메가 뭔가요?본 것을 다른 곳에 옮겨 모방하는 것이 곧 그림이라 하잖아. 말하자면 이미 있는 걸 없는 상태에 대입시키는 게 곧 예술이지. 그러다 보면 주관이 동반될 수밖에 없어. 꽤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 조각상들도 멋을 위한 왜곡이 이뤄져 완성된 거야. 보란 듯이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그림도 이미 있는 것들을 왜곡한 결과지. 입을 세로로 벌어지게 만들거나, 눈을 여러 개 달아놓는 식으로. 그게 곧 데포르메야.어려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던 내게 선생님은, 방금 말한 것들에 관해 고민해본 적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그래서 학생이 그린 사람이 죄다 유인원처럼 보이는 거야.유인원, 하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걱정하지 마. 한동안 고민할 일 없을 테니까. 우리 수업은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할 거야. 다음 주까지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라는 책을 사둬.어떤 책인데요? 그림 배울 때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지, 말하고 선생님은 나를 바로 보았습니다. 학생은 말이야. 사람 몸이 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잘 모르겠어요.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피랑 내장요. 그리고 뼈요. 물이 많다고 들었어요.귀여운 대답이네, 말하고 선생님은 웃었습니다. 피가 흐르고 내장이 기능하고, 뼈도 있고 뼈를 감싼 근육도 있을 거야. 그림 그릴 땐 자꾸 그것들을 까먹게 돼서 문제야. 모르는 사이 예쁜 색깔이랑 정갈한 곡선으로 사람이 이루어졌다고 믿게 돼. 학생은 만화를 그리려는 거잖아. 모든 컷을 아름답게 그려선 안 돼. 사람은 항상 아름답게 움직일 수만은 없으니까. 사진 속에서 온갖 자세를 취하는 패션모델들도, 사진 바깥에선 정해진 워킹 방식대로 T자 모양 무대를 걸어 다닐 뿐이야. 그게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이니까. <알기 쉬운 인물화>는 그런 사람 몸을 알기 쉽도록 설명한 책이고.첫 수업은 선생님이 추천하는 다양한 작품과 교재를 받아적다가 끝났습니다.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는 곧장 주문했고 필요한 도구는 따로 메모해두었습니다. 어느새 밤이 됐습니다. 선생님이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돼지 앞다릿살을 꺼냈습니다. 백 팩을 메고 거실에 서 있던 선생님에게 식사를 제안했습니다. 마침 돼지 앞다릿살이 있다고, 제육볶음을 할 수도 있고 불고기를 할 수도 있다고, 김치찌개를 끓여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습니다.사양할게, 하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나 움직이는 거 안 먹거든.움직이는 거요?지금 네 손에 들린 그런 거. 안 먹는다고.움직이는 건 전부 안 먹어요?응. 절대로. 소랑 돼지. 닭이랑 오리. 그리고 생선 전부.왜 안 먹는데요?내가 묻자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몰라서 묻니.움직이는 것들이니까.말하고 선생님은 생각하다가 덧붙였습니다.움직이는 것들한텐 어쩐지 마음이 있어 보여. 마음, 하고 선생님은 강조했고 마음, 하고 나는 따라 발음했습니다. 저는요, 선생님.아주, 정말 아주 어릴 때요.말하고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습니다.죽였는데요. 제가 키우던 개를요. 선생님은 미동하지 않고 나를 응시했습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며 시종일관 몸을 비틀었습니다. 침묵이 오가는 동안 두 손을 깍지껴 흔들었고 짝다리를 짚었습니다. 견딜 수 없어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아니아니,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 마음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움직인다면, 마음마저 움직인다면 잡기 어렵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생님이 풋, 웃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마음은 마음 있는 사람한테만 보이거든, 하고 선생님이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잡는 사람들은 꼭 마음 없는 척들 하더라. 있잖아, 학생.개를 죽였다고 했니? 어린 시절 나는 개를 죽였습니다. 나는 어렸고 개 또한 어렸습니다. 나는 어린 사람이었고 개는 어린 개였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지만 개는 죽여봤습니다. 사람을 키워 본 적 또한 없었지만 개는 키워 본 적 있었습니다. 키우던 개를 죽여서 키워놓은 그대로 마당에 묻었습니다. 개를 묻어 생긴 자리에 씨앗 뿌려 바늘꽃을 키웠습니다. 나는 자랐고 다 자란 바늘꽃 위에 자주 드러누웠습니다. 내가 누울 때마다 바늘꽃이 쓰러졌지만, 억세게 자란 나머지 금세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죽은 개는 살아나지 못했고 사람의 기억 또한 되살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개를 계속 생각했더니 개를 죽였다는 사실 말고는 다 잊게 됐습니다. 많이 생각한 것만 기억되고 덜 생각한 것은 잊어 자기 기억을 감당하는 법이겠습니다. 감당 가능한 기억만 가지고 자란 나는 어쨌든 분명히, 어릴 적에 개를 죽였습니다.날마다 사람을 그렸습니다. 선생님과 만나는 날에도 만나지 않는 날에도 사람을 그렸습니다. 사람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마다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들춰봤습니다. <알기 쉬운 인물화>는 사람 그리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사람답기만 해서, 어떤 자세를 취하든 사람다웠고, 살 아래 근육조차 사람다웠고, 뼈대만 남은 해부도마저 사람다웠습니다. 유인원 같았던 내 사람들은 그리면 그릴수록 곧아졌습니다. 단단할 곳이 단단해졌고 유려해질 곳은 유려해졌습니다. 털 돋은 것처럼 비죽거리던 선분 또한 말끔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전부 오롯해진다면 그때부턴 무엇을 위해 사람을 그려야 하지.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나의 사람이 온통 사람다워진다면 그때부턴 무엇답게 사람을 그려나가야 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을 무렵 나는 머지않아하게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데포르메déformer를.창조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former와 부정의 뜻을 가진 접두사 dé가 결합한 déformer는 말하자면 창조해낸 것의 일면을 부정하는 과정이겠습니다. 그럴듯한 사람의 곳곳을 부정해가는 수순이야말로 데포르메. 나는 데프로메하기 위해 사람을 그려낼 때가 올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람다워진 사람의 어느 곳을 부정할지는 차근히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데포르메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어느 일면쯤 사람답지 않아도 결국 사람처럼 보이고야 말 것입니다.선생님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 개를 다시 묻기로 한 토요일.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슬림한 사이즈의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따가운 햇볕에 개의치 않고 쓰리 버튼 블레이저 단추를 두 개 채운 차림새. 덥지 않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예를 갖춰야 하니까, 하고 답했습니다. 그러는 학생은 왜 그런 차림인데? 원래 그런 식으로 옷 입나.올여름 유행하는 코디래요.나는 커트 코베인의 사진이 프린팅된 연두색 루즈핏 티셔츠와 배기 조거 팬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해골이 장식된 스테인레스 스틸 반지를 만지작대며 이상한가요, 하고 물었습니다.유행하는 코디라기엔, 말하고 선생님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학생처럼 옷 입은 사람 한 명도 없는데?선생님처럼 입은 사람도 없잖아요.알아. 난 특별한 날이니까 이렇게 입은 거야. 저 사람들한테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닌 거고. 학생은 어때. 학생도 특별한 날이라서 그렇게 입은 건가.틀려요, 하고 내가 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절대 오늘 같은 날에 그런 옷 입지 마.선생님은 등 돌려 앞장섰고 내가 뒤따랐습니다. 철물점에서 선생님이 접이식 삽을 구매하는 동안, 나는 편의점에 들러 탄산음료 두 캔을 샀습니다. 항아리를 구하기 위해 선생님이 수소문하는 사이, 나는 꽃집에서 흰 국화를 다발로 구매했습니다. 성묘 가냐는 꽃집 아주머니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국화를 좋아하냐기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자그마한 장식용 항아리를 구해왔습니다. 이 정도면 들어가려나, 내게 질문하며 선생님은 웃었습니다.선생님과 내가 바늘꽃 사이를 비집고 섰습니다. 보랏빛 바늘꽃이 이따금 나풀댔고, 잎에 난 톱니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삽자루로 바늘꽃 더미를 헤친 뒤 흙을 퍼냈습니다. 선생님은 내 맞은편에 쭈그려 앉아 탄산음료를 홀짝였습니다. 삽질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그래도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능숙하게 흙을 퍼낼수록 땀을 훔치던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선생님의 하얀 얼굴이 다 젖었고 나는 주체못할 정도로 거칠게 숨 쉬었습니다. 우리 사이 구덩이가 깊어지는 동시에 넓어졌습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또 한 번 더 흙을 퍼내려던 내가 뒤로 나동그라졌습니다. 물씬 솟구치는 먼지 너머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없네, 하고.언제 죽였니. 개 말이야.무릎 펴고 일어나며 선생님이 물었습니다.어릴 때요.그러니까 언제.모르겠어요. 그냥 어릴 때요.다른 건 기억 안 나?나는 삽날을 흙 속에 깊숙이 박아넣었습니다. 기억나지 않아요, 하고 손을 털며 답했습니다. 그냥 어릴 때요. 분명히 개를 죽여서 여기다가 묻었어요.어린애 힘으로 지금보다 더 깊게 파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애초에 학생은 왜 그 정도밖에 기억 못 해? 죽인 거라고. 그리고 학생이 직접 묻었어.죽이고 묻었으니까 그것만은 기억하는 거예요.웃겨라, 중얼거리며 선생님은 장식용 항아리를 품에 안았습니다. 가자, 학생. 너무 덥다.어디로요?시원한 거라도 마시러 갈까 해. 내가 살게.나는 멀어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다가 접이식 삽을 내팽개쳤습니다. 깊고 넓은 구덩이를 내려다봤습니다. 속에다가 뿌리째 파내진 바늘꽃 더미를 밀어 넣었습니다. 이대로면 엄마한테 혼날 텐데. 하긴, 어차피 봉합해봤자 티 나는 건 어쩔 수 없겠어, 중얼거린 뒤 나는 한 손에 접이식 삽을, 다른 손에 국화꽃 다발을 쥐고 선생님을 뒤따랐습니다.언제 죽였을까요.선생님의 등 뒤에 서서 내가 질문했습니다.개 말이에요.어릴 때겠지,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그러니까 저는 언제….몰라.말하고 선생님이 나를 돌아봤습니다.뭐라도 발견됐어야 알지. 학생도 그래야 기억해냈을 거고. 아마 그렇겠지, 중얼거리며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그래도 난 말이지, 학생.학생이 개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을 거야.말하고 선생님은 생각하다가 덧붙였습니다.진짜로 죽였다면 난 분명 학생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 못 할 거야. 마음, 하고 선생님은 강조했고 마음, 하고 나는 따라 발음하려다가,아하하,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무슨 소릴 해요, 선생님.죽였다니까요. 어릴 적에 개를요.말하고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습니다.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요.
저는 여기 있단 말이에요, 하고 내가 속삭였습니다. 선생님 곁에요. 여기요. 보이잖아요, 내 모습. 안 보이면 더 가까이 갈래요. 나요. 움직인다고요. 움직일 수 있어요. 어찌 움직이든 마음 없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요? 난 그럴 거 같다고요? 무슨 소리야, 그게. 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선생님은 관찰하듯 나를 빤히 보았고 나는 아니,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됐어, 학생.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어서 가자. 너무 덥다.나는 선생님을 뒤따라서 오래 걸었습니다. 방향을 모르니까. 또는 그저 뒤따르고 싶어서 선생님과 나란할 수 없었습니다. 이따금 선생님은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돌아 확인했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춘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쭉 그렇게, 우린 수풀 우거진 공원을 걸었고 도로변을 걸었고, 사람 가득한 거리를 가로질러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선생님이 멈추기 전까지 나는 멈출 수 없었고 선생님이 멈춘 뒤에도 나는 옆에 서지 못했습니다. 다 왔어, 선생님은 말했고 나는 입 다문 채 선생님의 고개를 따라 높이 보았습니다.애견카페였습니다.
선생님과 내가 검은 합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습니다. 주위에는 온통 연인들뿐이었고, 사방에서 개털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모양 다르고 색 또한 다른 개들이 사람 다리 사이를 오갔습니다. 몇은 테이블 위로 올려달라는 듯 사람 다리를 향해 짖었습니다. 모두 목에 이름표를 걸고 있었고 이름은 각각 다르겠으나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는 동일했습니다. 선생님은 블레이저를 벗어 등받이에 걸어두었고 장식용 항아리를 곁에 놓았습니다. 나는 스테인레스 스틸 반지를 만지작거릴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던 사이 종업원이 다가와 선생님 곁에 키위주스와 치즈 케이크를 두었습니다. 내 곁에는 아메리카노. 젖은 흙 묻은 접이식 삽과 헤진 국화꽃 다발뿐.그뿐이었는데, 어느새 내 허벅다리 위에 개 한 마리가 올라와 몸을 포갰습니다. 털이 할머니들 머리카락처럼 희고 복슬복슬했습니다. 눈은 플라스틱으로 된 공산품처럼 동그랬고 빈틈없이 검었습니다. 나는 개에게 닿지 않도록 양쪽 팔을 든 채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씩 웃더니 치즈 케이크를 한 입 씹었습니다. 궁금해요, 하고 내가 작게 말했습니다.선생님은 저를 싫어하나요.왜 그런 질문을 하는데?선생님이 저를 싫어하는 게 싫으니까요.그럼 다행이네. 난 학생 안 싫어하거든, 말하고 선생님은 키위주스를 한 모금 삼켰습니다. 며칠 전에 학생이 그랬잖아. 학생은 학생이라고. 나는 선생님이라고. 학생은 고등학생. 나는 사회인. 학생은 미성년자고 나는 성인. 서로 형 동생 할 처지는 아니라고. 그럼 우린 뭘 해야 하지? 학생은 나보다 키도 크고 몸도 검어. 털도 많더라. 하지만 나보다 어른이 될 수는 없어. 나는 학생보다 작고 창백해. 어쩐지 털도 잘 안나. 그래도 학생보다 어려질 수는 없어. 나는 많은 걸 학생보다 먼저 알아갈 테고 학생은 뒤늦게나마 깨닫겠지. 있잖아, 학생. 어른은 말이야. 아이를 너무 쉽게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야.선생님이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머리를 내 눈높이까지 낮췄습니다. 나는 닿을 리 없음에도 고개를 뒤로 젖혔습니다. 애써 주위를 돌아봤더니 테이블을 사이에 둔 남녀들이 사진 찍거나 담소하거나 개를 구경할 뿐, 우리가 주목될 여지는 없었습니다. 어른이 아는 행동만 애가 해준다면야 좋아할 수 있지. 걷거나, 뛰거나, 울거나, 놀기만 하면은, 하고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행동을 하면 금방 싫어져. 어른은 어른으로서 아는 것들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야. 모르는 건 절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야. 난 학생이 궁금해.
궁금해, 학생.고대 그리스에서는 말이야.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이 있었다고 해. 동성이어도 상관없이. 오히려 플라톤은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정하게 순수하다 했지. 지금은 어떻지? 동성이라도 상관없이, 아마 잡혀가겠지.미래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어떻게 되긴. 모두 만화 같을 거야.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나는 또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건가 싶어 눈을 감았습니다. 조금은 선생님을 향해 머리를 기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떠 보니 내 허벅다리에 누운 개를 쓰다듬던 선생님의 손이 보였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선생님의 손이 정성스럽게 개의 털 사이를 헤집었습니다. 헤집어두곤, 손바닥으로 문질러 고르게 다녔습니다. 규칙적으로 개의 겉을 헤집고 다듬는 손을 내려다보던 내 위로부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학생이 싫지 않아, 하고.어렴풋이.
컹, 컹.쑥떡, 쑥떡.멍, 멍.웅성, 웅성.
희미하게.어떻게 싫어하겠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하고.
나는 금방이라도 개처럼 짖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건 내가 가져갈까 해.작별하기 전에 장식용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뭐라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나머지는요?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나누어 쥔 채 내가 물었습니다.마음대로 해,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선생님을 배웅하고 귀가했더니 날이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구덩이를 메워야 했지만, 나는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곁에 두고 사람을 그렸습니다. 사람을 몇 그리다가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들춰봤습니다. 선생님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사람을 그려내야 했습니다. <알기 쉬운 인물화>에 그려진 사람처럼 사람을 그린다면 선생님은 칭찬할 것이고, <알기 쉬운 인물화>에 그려진 사람과 도통 다른 사람을 그린다면 선생님은 꾸중할 것입니다. 사람 아니라 다른 것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람 아닌 것을 그려 선생님에게 제출한다면 그저 사람 아닌 것인지, 사람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 불과할지 궁금해졌던 것입니다.동그랗고, 동그랗게.동그란 것을 그리다가 나는 구덩이 앞에 섰습니다.개는 어떻게 됐나.죽거나 살아있거나 살아있다가 죽었을 테지만 죽었는데 살아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은 어떻게 됐나. 기억은 잊거나 상기되거나 상기되다가도 잊히는데, 때론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도 할 것입니다. 개를 죽인 적 없다, 는 기억은 글귀입니다. 내가 죽인 개는 그림 같습니다. 나는 천천히 구덩이 아래로 향했습니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습니다.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있다가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파낸 깊이는 딱 허리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몸에 달라붙은 바늘꽃을 털어냈습니다.구덩이를 놔두면 안 되는 까닭은 누군가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빠질지 알 수 없기에 반드시 메꿔야 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앞을 보고 걸으며 구덩이는 그저 아래에 있으므로 못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어쩌면 어딘가에 누구도 빠진 적 없는 상태로 방치된 구덩이가 있을지 모르고 구덩이를 더 파보면 개 한 마리의 뼈가 드러날 수도 있겠습니다.혹여나 사람 뼈가 보이더라도 처음엔 개 뼈인가 싶을 것입니다. 데포르메 되어서는.나는 어릴 적에 개를 죽였습니다.죽여서, 구덩이에 묻어 감췄습니다.죽이지 않은 것 같다면 그저 왜곡된 탓입니다.나는 조심스럽게 구덩이 바깥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쭈그려 앉아 구덩이 속을 노려봤습니다. 찰기 어린 흙, 끊긴 채 뒤섞인 바늘꽃, 어슴푸레한 밤빛을 응시하다가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가져왔습니다.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 전부를 구덩이 속에 넣어도 좋을 것입니다. 접이식 삽만 구덩이 속에 담고 국화꽃 다발을 간직해도 되겠습니다. 국화꽃 다발을 구덩이 속에 던지고 접이식 삽으로 메꿔도 되겠습니다만, 나는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뭐 하세요, 선생님?방금 집에 왔어. 그러는 학생은?저요?응. 학생 말고 누굴 말하겠어.집에 왔어요. 그런 당연한 거 말구요. 선생님은 뭐 하고 있어요?글쎄…, 말하고 선생님은 한동안 침묵했습니다.항아리를 보고 있어. 학생은 뭘 하고 있는데?모르겠어요.
눈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어야죠.
그때 내가 올린 글은 에밀리 외 기타 등등이었는데... 아마 기억하는 애들은 없겠지.
당시에도 절필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올해 결심이 섰어. 오늘 중고서점 사장님 불러다가 용달차에 책 실어 보냈어. 글을 오래 쓰면서 삶의 방향이 글쓰기에 맞춰져 있던 탓에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쓰고 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
20대 초반에 시로 한 번 최종심 가고 중반에 소설로 최종심 한 번 간 게 내 이력의 전부야. 그 사실 또한 다 지워버리고 싶은데 인터넷에 실린 내 글 제목은 어떻게 지울 수가 없네. 가기 전에 이번에 투고한 것들 중 단편 하나 올리고 갈게. 어떤 이유로든 완벽한 타인으로 된 독자를 내 글한테 주고 싶어서.
참. 에밀리 읽고 예전에 누가 나보고 여자냐 물어봤었는데 뻥쳐서 미안. 논바이너리 안드로진이지만 나 여자 맞아.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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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인물화 다시 묻을까, 하고.선풍기 바람을 쐬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엿보았더니 루즈핏 티셔츠를 가슴께까지 들춘 자세. 선생님의 작고 앙상한 상체가 훤히 드러났습니다. 뭐를요, 하고 내가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듣지 못한 눈치였습니다. 밖에선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에선 3단으로 설정해둔 선풍기 바람 소리가 만발했습니다. 나는 턱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습니다. 점점이 젖은 손을 허벅다리에 문질렀습니다.프라이팬에 부챗살 스테이크를 올려두었습니다. 치이익, 기름 번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분이 지날 즈음 자른 마늘을 얹었습니다. 2분이 지날 즈음 스테이크를 뒤집었습니다. 3분이 지날 즈음 다시 뒤집고 버터를 칠했습니다. 또다시 뒤집어 프라이팬에 버터를 골고루 녹였습니다. 1분에 한 번씩 스테이크를 뒤집다가 문득 하얬지,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속살도 정말 하얗구나.부챗살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겨 담고 손을 씻었습니다. 레스팅 하는 동안 감자 샐러드에 후추를 뿌렸습니다. 접이식 탁자를 펼쳐 스테이크 담긴 접시를 내 곁에, 샐러드 담긴 대접을 선생님 쪽에 두었습니다. 포크로 양상추를 뒤적이며 냄새가 좋다, 하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고기 냄새밖에 안 나는 걸요, 말하고 나는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썰었습니다. 조각난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고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감자에 사워크림을 묻혀 씹던 선생님으로부터 희미한 땀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맛있다고, 선생님이 말하기에 뭘요, 하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뭐를요.뭘 다시 묻어요, 선생님. 맞다. 그 얘길 하고 있었지. 깜빡했어, 오물거리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학생 개 말이야. 좋은 곳에 다시 묻는 게 어때?좋은 곳, 말인가요.응. 좋은 곳은 많으니까.묻은 지 10년도 더 됐는데요.그 정도론 뼈 안 없어져. 같이 해보자.선생님이랑 제가요?둘이서. 주말에 시간 돼?모르겠어요.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시간 될 거예요. 점심 즈음에 볼까요.좋아. 삽이랑, 삽 말고 또 뭐가 필요할까. 뼈를 담기 좋은 항아리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려나. 그런 건 내가 살 테니까 학생은 꽃이라도 사지 그래? 백합 같은 거. 용돈 다 떨어졌으면 내가 사주고.선생님이 왜요. 제가 사야죠.빡빡하게 굴 필요 없어. 나 엊그제 과외비 들어왔으니까.저 말고 몇 명한테 과외 해주는데요?팀 과외까지 합치면 아홉 명쯤 되나.많아요.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둬야 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아저씨 같은 충고예요.기분 나쁜걸. 나 학생이랑 몇 살 차이 안 나는데.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저는 학생이니까요. 선생님은 사회인이고 저는 고등학생. 사회인은 성인이고 고등학생은 미성년자. 서로 형 동생 할 처지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주말에 보는 거로 알게요. 토요일이랑 일요일. 어느 쪽이 좋으세요?토요일로 하자. 일요일엔 여자친구 보기로 했어.애인이요?말 안 했나. 학생은?네?연애 말이야. 하고 있냐고.그런 게 왜 궁금한지 잘 모르겠지만, 우적거리며 내가 말했습니다. 저는요, 선생님.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거든요. 좋아한다는 거,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선생님을 배웅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교복을 벗고 몸을 씻었습니다. 물기를 대충 닦고 거실 바닥에 누웠습니다. 선풍기를 1단으로 설정해두고 노을 물든 바깥을 보았습니다. 매미 우는 소리가 어느새 멎었고, 마당 한쪽에 무리 이룬 바늘꽃이 더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개는 죽었고, 저곳에 묻었다.나는 부러 상기했습니다. 몸을 일으켜 종아리를 껴안았습니다. 털 나고 거뭇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옷을 사야겠어. 엄마가 사다 준 것들 빼면 그럴듯한 외출복이 없구나. 나는 핸드폰으로 가까운 SPA 브랜드 매장을 검색해봤습니다. 올여름 유행하는 코디를 찾아보다가 손가락 접으며 용돈을 셈했습니다. 하나, 둘, 접다가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중얼거리며 빨래 건조대에 널어둔 속옷을 집었습니다. 축축한 직모를 머리 흔들어 털었습니다.책상 중앙에 크로키 북을 두었습니다. 핸드폰에 종합격투기 선수의 사진을 띄웠습니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4B 연필로 크로키 했습니다. 파이팅 포즈를 취한 남자를, 높이 발 뻗는 남자를, 주먹 내지르는 남자와 팔짱 낀 남자를, 마운트 하는 남자와 상대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워 방어하는 남자를, 그리던 도중 시간이 초과하여 멈췄습니다. 크로키 한 것들을 사진 찍어 선생님에게 전송했습니다. 많이 늘었구나. 많이 늘었다는, 선생님의 답장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잘 돌아가셨나요. 그저 잘 돌아가셨냐는, 문장을 나는 쓰고 지우기 반복했습니다.빨간펜을 쥐고 크로키 한 것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도식적으로 나열된 몸의 윤곽 속에 선분을 몇 가닥 그어봤습니다. 틀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뭉뚱그려 크로키 한 뒤 속마다 근육을 채워보라고, 본인 또한 그렇게 사람 몸을 배웠다고 선생님이 말한 적 있었습니다. 나는 발치에 놓인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집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사람 속에 그려 마땅한 근육을 복기했습니다. 뻔히 나열된 사람 그림을 보며 사람 속을 다 알면 사람 몸도 다 아는 셈일까, 의문했습니다.개를 묻기 좋은 장소를 검색해봤습니다.죽은 반려동물은 보통 매장되지만, 실은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하는 처사랍니다. 반려동물의 사체는 유기 폐기물로 분류되어 지정된 장소에만 매립 가능하고, 따라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실용적이지만 실효성 없는 법률 같았습니다.상기된 법안은 정서적 거부감을 유발하므로 반려동물 화장시설이 애용됩니다. 집 근처 화장시설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를 찾아봤더니, 사람을 화장할 때와 흡사한 방식으로 장사지낸 뒤, 봉안당에 두거나 수목원에 골분을 뿌려 애도한답니다. 사진 속 봉안당은 너무 말끔했고, 수목원은 과하게 싱그러웠습니다. 뼈만 남은 개를 가지고 들르기엔 무리였습니다.프랑스에서 3년 동안 유학한 선생님 말로는, 유럽권 국가에선 화장이 꺼려지기에 반려동물 묘지가 이용된답니다.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 묘지를 마련한 국가가 곧 프랑스. 그곳 이름은 르 시메티에르 데 시앙Le cimetière des Chiens. 즉 개들의 공동묘지라 한답니다. 개들의 공동묘지엔 현재 수십만 마리의 반려동물 사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개 한 마리쯤 더 묻는다고 해서 무리 될 것 없겠습니다.좋다.좋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이국이란 막연한 호감을 품기 좋게끔 멀기에 이국입니다. 프랑스에서 훈련된 선생님의 만화를 처음 보고 내가, 이국을 몰랐던 나머지 막연히 좋다고만 감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그림은 좋아하지만, 그저 막연하게만 여길 수는 없게 된 것과 다르게 말입니다.그래도 좋다.좋다고, 나는 역동적이지 못한 크로키들 사이에 써두었습니다. 좋다는 건 좋아하는 거라고 써두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좋다, 그리고 하다로 구성된 동사이며 일단 좋다면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고 덧붙여 써두었습니다. 좋아하지 않고 좋기만 할 수는 없을까. 좋기 시작하면 모르는 사이 좋아하게 되고야 마는 걸까. 그저 좋다, 라는 말은 어쩐지 막연하게 느껴지는 데 좋아한다, 라는 말은 도무지 막연하게 치부할 수가 없다고, 나는 써두었습니다.써둔 문장에 선분을 직직 그었습니다.빨간펜을 바로잡았습니다. 크로키 한 몸의 윤곽 속을 붉게 채워나갔습니다. 근육은 숱한 섬유 다발,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근육은…. 고기는 근육의 집합. 닭발이나 돼지 껍데기를 제외하면 고기는 모두 근육. 근육은 고기. 고기는 식자재고 근육은 숱한 섬유 다발. 고기는 좋아. 근육은 싫어.좋은 곳보다는 좀 더 명확한 지점이 필요해.싫어도 하는 수 없어.어떻게, 또는 왜.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내가 죽인 개를 묻기 좋은 곳을 떠올려봤습니다. * 선생님과는 작년 초겨울에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만화가 SNS에서 유명했던지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어에 선생님이 참가할 거란 소식을 듣고, 점심시간을 틈타 학교에서 빠져나온 덕분이었습니다.도착해서 보니 선생님이 부스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앙상하다고 말해도 좋을 법했습니다. 상자 속에 엎어져 있는 목각인형 같은 꼬락서니. 오버 사이즈 코트가 선생님의 작은 몸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였고, 도넛 모양 안경 속 눈가엔 기미가 역력했습니다.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선생님은 몸을 일으켜 인사했는데, 인사받기 부끄러웠던 나는 구석진 곳에서 책을 집어 훑을 따름이었습니다.크다, 하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누굴 말하나 싶었는데 나를 향한 감탄이었습니다.교복을 입은 걸 보니 학생 같은데, 말하며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죄송해요, 답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땡땡이쳤어요. 여기 오고 싶어서요.나한테 죄송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나로선 오히려 고맙지. 내 만화 본 적 있어?나는 책으로 하관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팬이거든요, 하고 말했습니다.선생님은 한 권씩 저작을 소개해줬습니다. 모두 인류의 미래를 상정한 만화들이었습니다. 해저에서 살게 된 인류는 팔을 잃은 대신 지느러미를 얻었고, 대기 오염에 노출된 인류는 눈, 코, 입, 귀 표면에 점막으로 된 거름망을 두었습니다. 팔다리를 기계로 시늉하게 된 인류는 비대한 뇌 달린 머리만 남았고, 외계인에게 먹히기 좋도록 개량 당한 인류는 온갖 살집으로 두툼해졌습니다.그리고 그게 가장 최근에 작업한 만화야, 말하며 선생님은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내 하관을 가린 책을 보던 거였습니다. 책을 펼쳐봤더니 온통 기하학적인 문자로 가득했습니다. 문자라 생각했지만 도통 읽어낼 수가 없어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글자처럼 보이니, 그림처럼 보이니.나를 올려다보며 선생님이 속삭였습니다.나는 생각하다가, 글자가 된 건, 하고 질문했습니다. 과거의 인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요.과거의 글귀는 현 인류가 분석 가능할 테니 글자지,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글귀는 짐작하는 게 고작이니 그림이야.선생님은 웃었습니다.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미래 인류의 모습이야.그날 나는 선생님의 만화 세 권과 에코백을 사서 귀가했습니다. 몇 달 뒤 선생님의 SNS에 과외 학생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명기해두었습니다. 기억할까 싶어서,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났던 몸집 큰 학생이라고도 써뒀습니다. 그때부터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마다 선생님이 입시 미술을 가르치러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처음 수업했던 날, 선생님은 내 그림 몇 장을 본 뒤 유럽 계통 만화가들 영향이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나는 유럽 만화를 본 적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주로 일본이나 국내 만화를 볼 뿐이라고, 말하며 나는 무릎을 모았습니다.그럼 나한테 영향받은 거겠다. 내가 유럽 작가들한테 배웠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니야. 여길 봐.선생님은 내 그림을 책장에 나열했습니다.인물들 동작이 죄다 심심해. 정면을 보고 서 있거나, 옆 모습, 앉아 있는 자세를 그린 것이 전부야. 몇 장은 투시가 틀렸어. 얘는 손이 너무 커. 이 그림 같은 경우엔, 발이 이렇게 강조되려면 종아리가 보통 사람보다 두 배 이상 길어야 해. 전부 기본기가 충족 안 된 상태로 데포르메 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야.저기, 하고 내가 말했습니다. 데포르메가 뭔가요?본 것을 다른 곳에 옮겨 모방하는 것이 곧 그림이라 하잖아. 말하자면 이미 있는 걸 없는 상태에 대입시키는 게 곧 예술이지. 그러다 보면 주관이 동반될 수밖에 없어. 꽤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 조각상들도 멋을 위한 왜곡이 이뤄져 완성된 거야. 보란 듯이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그림도 이미 있는 것들을 왜곡한 결과지. 입을 세로로 벌어지게 만들거나, 눈을 여러 개 달아놓는 식으로. 그게 곧 데포르메야.어려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던 내게 선생님은, 방금 말한 것들에 관해 고민해본 적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그래서 학생이 그린 사람이 죄다 유인원처럼 보이는 거야.유인원, 하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걱정하지 마. 한동안 고민할 일 없을 테니까. 우리 수업은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할 거야. 다음 주까지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라는 책을 사둬.어떤 책인데요? 그림 배울 때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지, 말하고 선생님은 나를 바로 보았습니다. 학생은 말이야. 사람 몸이 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잘 모르겠어요.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피랑 내장요. 그리고 뼈요. 물이 많다고 들었어요.귀여운 대답이네, 말하고 선생님은 웃었습니다. 피가 흐르고 내장이 기능하고, 뼈도 있고 뼈를 감싼 근육도 있을 거야. 그림 그릴 땐 자꾸 그것들을 까먹게 돼서 문제야. 모르는 사이 예쁜 색깔이랑 정갈한 곡선으로 사람이 이루어졌다고 믿게 돼. 학생은 만화를 그리려는 거잖아. 모든 컷을 아름답게 그려선 안 돼. 사람은 항상 아름답게 움직일 수만은 없으니까. 사진 속에서 온갖 자세를 취하는 패션모델들도, 사진 바깥에선 정해진 워킹 방식대로 T자 모양 무대를 걸어 다닐 뿐이야. 그게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이니까. <알기 쉬운 인물화>는 그런 사람 몸을 알기 쉽도록 설명한 책이고.첫 수업은 선생님이 추천하는 다양한 작품과 교재를 받아적다가 끝났습니다.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는 곧장 주문했고 필요한 도구는 따로 메모해두었습니다. 어느새 밤이 됐습니다. 선생님이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돼지 앞다릿살을 꺼냈습니다. 백 팩을 메고 거실에 서 있던 선생님에게 식사를 제안했습니다. 마침 돼지 앞다릿살이 있다고, 제육볶음을 할 수도 있고 불고기를 할 수도 있다고, 김치찌개를 끓여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습니다.사양할게, 하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나 움직이는 거 안 먹거든.움직이는 거요?지금 네 손에 들린 그런 거. 안 먹는다고.움직이는 건 전부 안 먹어요?응. 절대로. 소랑 돼지. 닭이랑 오리. 그리고 생선 전부.왜 안 먹는데요?내가 묻자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몰라서 묻니.움직이는 것들이니까.말하고 선생님은 생각하다가 덧붙였습니다.움직이는 것들한텐 어쩐지 마음이 있어 보여. 마음, 하고 선생님은 강조했고 마음, 하고 나는 따라 발음했습니다. 저는요, 선생님.아주, 정말 아주 어릴 때요.말하고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습니다.죽였는데요. 제가 키우던 개를요. 선생님은 미동하지 않고 나를 응시했습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며 시종일관 몸을 비틀었습니다. 침묵이 오가는 동안 두 손을 깍지껴 흔들었고 짝다리를 짚었습니다. 견딜 수 없어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아니아니,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 마음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움직인다면, 마음마저 움직인다면 잡기 어렵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생님이 풋, 웃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마음은 마음 있는 사람한테만 보이거든, 하고 선생님이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잡는 사람들은 꼭 마음 없는 척들 하더라. 있잖아, 학생.개를 죽였다고 했니? 어린 시절 나는 개를 죽였습니다. 나는 어렸고 개 또한 어렸습니다. 나는 어린 사람이었고 개는 어린 개였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지만 개는 죽여봤습니다. 사람을 키워 본 적 또한 없었지만 개는 키워 본 적 있었습니다. 키우던 개를 죽여서 키워놓은 그대로 마당에 묻었습니다. 개를 묻어 생긴 자리에 씨앗 뿌려 바늘꽃을 키웠습니다. 나는 자랐고 다 자란 바늘꽃 위에 자주 드러누웠습니다. 내가 누울 때마다 바늘꽃이 쓰러졌지만, 억세게 자란 나머지 금세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죽은 개는 살아나지 못했고 사람의 기억 또한 되살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개를 계속 생각했더니 개를 죽였다는 사실 말고는 다 잊게 됐습니다. 많이 생각한 것만 기억되고 덜 생각한 것은 잊어 자기 기억을 감당하는 법이겠습니다. 감당 가능한 기억만 가지고 자란 나는 어쨌든 분명히, 어릴 적에 개를 죽였습니다.날마다 사람을 그렸습니다. 선생님과 만나는 날에도 만나지 않는 날에도 사람을 그렸습니다. 사람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마다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들춰봤습니다. <알기 쉬운 인물화>는 사람 그리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사람답기만 해서, 어떤 자세를 취하든 사람다웠고, 살 아래 근육조차 사람다웠고, 뼈대만 남은 해부도마저 사람다웠습니다. 유인원 같았던 내 사람들은 그리면 그릴수록 곧아졌습니다. 단단할 곳이 단단해졌고 유려해질 곳은 유려해졌습니다. 털 돋은 것처럼 비죽거리던 선분 또한 말끔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전부 오롯해진다면 그때부턴 무엇을 위해 사람을 그려야 하지.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나의 사람이 온통 사람다워진다면 그때부턴 무엇답게 사람을 그려나가야 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을 무렵 나는 머지않아하게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데포르메déformer를.창조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former와 부정의 뜻을 가진 접두사 dé가 결합한 déformer는 말하자면 창조해낸 것의 일면을 부정하는 과정이겠습니다. 그럴듯한 사람의 곳곳을 부정해가는 수순이야말로 데포르메. 나는 데프로메하기 위해 사람을 그려낼 때가 올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람다워진 사람의 어느 곳을 부정할지는 차근히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데포르메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어느 일면쯤 사람답지 않아도 결국 사람처럼 보이고야 말 것입니다.선생님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 개를 다시 묻기로 한 토요일.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슬림한 사이즈의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따가운 햇볕에 개의치 않고 쓰리 버튼 블레이저 단추를 두 개 채운 차림새. 덥지 않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예를 갖춰야 하니까, 하고 답했습니다. 그러는 학생은 왜 그런 차림인데? 원래 그런 식으로 옷 입나.올여름 유행하는 코디래요.나는 커트 코베인의 사진이 프린팅된 연두색 루즈핏 티셔츠와 배기 조거 팬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해골이 장식된 스테인레스 스틸 반지를 만지작대며 이상한가요, 하고 물었습니다.유행하는 코디라기엔, 말하고 선생님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학생처럼 옷 입은 사람 한 명도 없는데?선생님처럼 입은 사람도 없잖아요.알아. 난 특별한 날이니까 이렇게 입은 거야. 저 사람들한테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닌 거고. 학생은 어때. 학생도 특별한 날이라서 그렇게 입은 건가.틀려요, 하고 내가 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절대 오늘 같은 날에 그런 옷 입지 마.선생님은 등 돌려 앞장섰고 내가 뒤따랐습니다. 철물점에서 선생님이 접이식 삽을 구매하는 동안, 나는 편의점에 들러 탄산음료 두 캔을 샀습니다. 항아리를 구하기 위해 선생님이 수소문하는 사이, 나는 꽃집에서 흰 국화를 다발로 구매했습니다. 성묘 가냐는 꽃집 아주머니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국화를 좋아하냐기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자그마한 장식용 항아리를 구해왔습니다. 이 정도면 들어가려나, 내게 질문하며 선생님은 웃었습니다.선생님과 내가 바늘꽃 사이를 비집고 섰습니다. 보랏빛 바늘꽃이 이따금 나풀댔고, 잎에 난 톱니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삽자루로 바늘꽃 더미를 헤친 뒤 흙을 퍼냈습니다. 선생님은 내 맞은편에 쭈그려 앉아 탄산음료를 홀짝였습니다. 삽질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그래도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능숙하게 흙을 퍼낼수록 땀을 훔치던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선생님의 하얀 얼굴이 다 젖었고 나는 주체못할 정도로 거칠게 숨 쉬었습니다. 우리 사이 구덩이가 깊어지는 동시에 넓어졌습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또 한 번 더 흙을 퍼내려던 내가 뒤로 나동그라졌습니다. 물씬 솟구치는 먼지 너머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없네, 하고.언제 죽였니. 개 말이야.무릎 펴고 일어나며 선생님이 물었습니다.어릴 때요.그러니까 언제.모르겠어요. 그냥 어릴 때요.다른 건 기억 안 나?나는 삽날을 흙 속에 깊숙이 박아넣었습니다. 기억나지 않아요, 하고 손을 털며 답했습니다. 그냥 어릴 때요. 분명히 개를 죽여서 여기다가 묻었어요.어린애 힘으로 지금보다 더 깊게 파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애초에 학생은 왜 그 정도밖에 기억 못 해? 죽인 거라고. 그리고 학생이 직접 묻었어.죽이고 묻었으니까 그것만은 기억하는 거예요.웃겨라, 중얼거리며 선생님은 장식용 항아리를 품에 안았습니다. 가자, 학생. 너무 덥다.어디로요?시원한 거라도 마시러 갈까 해. 내가 살게.나는 멀어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다가 접이식 삽을 내팽개쳤습니다. 깊고 넓은 구덩이를 내려다봤습니다. 속에다가 뿌리째 파내진 바늘꽃 더미를 밀어 넣었습니다. 이대로면 엄마한테 혼날 텐데. 하긴, 어차피 봉합해봤자 티 나는 건 어쩔 수 없겠어, 중얼거린 뒤 나는 한 손에 접이식 삽을, 다른 손에 국화꽃 다발을 쥐고 선생님을 뒤따랐습니다.언제 죽였을까요.선생님의 등 뒤에 서서 내가 질문했습니다.개 말이에요.어릴 때겠지,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그러니까 저는 언제….몰라.말하고 선생님이 나를 돌아봤습니다.뭐라도 발견됐어야 알지. 학생도 그래야 기억해냈을 거고. 아마 그렇겠지, 중얼거리며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그래도 난 말이지, 학생.학생이 개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을 거야.말하고 선생님은 생각하다가 덧붙였습니다.진짜로 죽였다면 난 분명 학생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 못 할 거야. 마음, 하고 선생님은 강조했고 마음, 하고 나는 따라 발음하려다가,아하하,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무슨 소릴 해요, 선생님.죽였다니까요. 어릴 적에 개를요.말하고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습니다.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요.
저는 여기 있단 말이에요, 하고 내가 속삭였습니다. 선생님 곁에요. 여기요. 보이잖아요, 내 모습. 안 보이면 더 가까이 갈래요. 나요. 움직인다고요. 움직일 수 있어요. 어찌 움직이든 마음 없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요? 난 그럴 거 같다고요? 무슨 소리야, 그게. 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선생님은 관찰하듯 나를 빤히 보았고 나는 아니,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아니아니,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됐어, 학생.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어서 가자. 너무 덥다.나는 선생님을 뒤따라서 오래 걸었습니다. 방향을 모르니까. 또는 그저 뒤따르고 싶어서 선생님과 나란할 수 없었습니다. 이따금 선생님은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돌아 확인했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춘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쭉 그렇게, 우린 수풀 우거진 공원을 걸었고 도로변을 걸었고, 사람 가득한 거리를 가로질러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선생님이 멈추기 전까지 나는 멈출 수 없었고 선생님이 멈춘 뒤에도 나는 옆에 서지 못했습니다. 다 왔어, 선생님은 말했고 나는 입 다문 채 선생님의 고개를 따라 높이 보았습니다.애견카페였습니다.
선생님과 내가 검은 합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습니다. 주위에는 온통 연인들뿐이었고, 사방에서 개털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모양 다르고 색 또한 다른 개들이 사람 다리 사이를 오갔습니다. 몇은 테이블 위로 올려달라는 듯 사람 다리를 향해 짖었습니다. 모두 목에 이름표를 걸고 있었고 이름은 각각 다르겠으나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는 동일했습니다. 선생님은 블레이저를 벗어 등받이에 걸어두었고 장식용 항아리를 곁에 놓았습니다. 나는 스테인레스 스틸 반지를 만지작거릴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던 사이 종업원이 다가와 선생님 곁에 키위주스와 치즈 케이크를 두었습니다. 내 곁에는 아메리카노. 젖은 흙 묻은 접이식 삽과 헤진 국화꽃 다발뿐.그뿐이었는데, 어느새 내 허벅다리 위에 개 한 마리가 올라와 몸을 포갰습니다. 털이 할머니들 머리카락처럼 희고 복슬복슬했습니다. 눈은 플라스틱으로 된 공산품처럼 동그랬고 빈틈없이 검었습니다. 나는 개에게 닿지 않도록 양쪽 팔을 든 채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씩 웃더니 치즈 케이크를 한 입 씹었습니다. 궁금해요, 하고 내가 작게 말했습니다.선생님은 저를 싫어하나요.왜 그런 질문을 하는데?선생님이 저를 싫어하는 게 싫으니까요.그럼 다행이네. 난 학생 안 싫어하거든, 말하고 선생님은 키위주스를 한 모금 삼켰습니다. 며칠 전에 학생이 그랬잖아. 학생은 학생이라고. 나는 선생님이라고. 학생은 고등학생. 나는 사회인. 학생은 미성년자고 나는 성인. 서로 형 동생 할 처지는 아니라고. 그럼 우린 뭘 해야 하지? 학생은 나보다 키도 크고 몸도 검어. 털도 많더라. 하지만 나보다 어른이 될 수는 없어. 나는 학생보다 작고 창백해. 어쩐지 털도 잘 안나. 그래도 학생보다 어려질 수는 없어. 나는 많은 걸 학생보다 먼저 알아갈 테고 학생은 뒤늦게나마 깨닫겠지. 있잖아, 학생. 어른은 말이야. 아이를 너무 쉽게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야.선생님이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머리를 내 눈높이까지 낮췄습니다. 나는 닿을 리 없음에도 고개를 뒤로 젖혔습니다. 애써 주위를 돌아봤더니 테이블을 사이에 둔 남녀들이 사진 찍거나 담소하거나 개를 구경할 뿐, 우리가 주목될 여지는 없었습니다. 어른이 아는 행동만 애가 해준다면야 좋아할 수 있지. 걷거나, 뛰거나, 울거나, 놀기만 하면은, 하고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행동을 하면 금방 싫어져. 어른은 어른으로서 아는 것들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야. 모르는 건 절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야. 난 학생이 궁금해.
궁금해, 학생.고대 그리스에서는 말이야.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이 있었다고 해. 동성이어도 상관없이. 오히려 플라톤은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정하게 순수하다 했지. 지금은 어떻지? 동성이라도 상관없이, 아마 잡혀가겠지.미래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어떻게 되긴. 모두 만화 같을 거야.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나는 또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건가 싶어 눈을 감았습니다. 조금은 선생님을 향해 머리를 기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떠 보니 내 허벅다리에 누운 개를 쓰다듬던 선생님의 손이 보였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선생님의 손이 정성스럽게 개의 털 사이를 헤집었습니다. 헤집어두곤, 손바닥으로 문질러 고르게 다녔습니다. 규칙적으로 개의 겉을 헤집고 다듬는 손을 내려다보던 내 위로부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학생이 싫지 않아, 하고.어렴풋이.
컹, 컹.쑥떡, 쑥떡.멍, 멍.웅성, 웅성.
희미하게.어떻게 싫어하겠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하고.
나는 금방이라도 개처럼 짖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건 내가 가져갈까 해.작별하기 전에 장식용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뭐라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나머지는요?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나누어 쥔 채 내가 물었습니다.마음대로 해, 하고 선생님은 답했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선생님을 배웅하고 귀가했더니 날이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구덩이를 메워야 했지만, 나는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곁에 두고 사람을 그렸습니다. 사람을 몇 그리다가 앤드류 루미스의 <알기 쉬운 인물화>를 들춰봤습니다. 선생님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사람을 그려내야 했습니다. <알기 쉬운 인물화>에 그려진 사람처럼 사람을 그린다면 선생님은 칭찬할 것이고, <알기 쉬운 인물화>에 그려진 사람과 도통 다른 사람을 그린다면 선생님은 꾸중할 것입니다. 사람 아니라 다른 것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람 아닌 것을 그려 선생님에게 제출한다면 그저 사람 아닌 것인지, 사람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 불과할지 궁금해졌던 것입니다.동그랗고, 동그랗게.동그란 것을 그리다가 나는 구덩이 앞에 섰습니다.개는 어떻게 됐나.죽거나 살아있거나 살아있다가 죽었을 테지만 죽었는데 살아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은 어떻게 됐나. 기억은 잊거나 상기되거나 상기되다가도 잊히는데, 때론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도 할 것입니다. 개를 죽인 적 없다, 는 기억은 글귀입니다. 내가 죽인 개는 그림 같습니다. 나는 천천히 구덩이 아래로 향했습니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습니다.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있다가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파낸 깊이는 딱 허리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몸에 달라붙은 바늘꽃을 털어냈습니다.구덩이를 놔두면 안 되는 까닭은 누군가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빠질지 알 수 없기에 반드시 메꿔야 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앞을 보고 걸으며 구덩이는 그저 아래에 있으므로 못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어쩌면 어딘가에 누구도 빠진 적 없는 상태로 방치된 구덩이가 있을지 모르고 구덩이를 더 파보면 개 한 마리의 뼈가 드러날 수도 있겠습니다.혹여나 사람 뼈가 보이더라도 처음엔 개 뼈인가 싶을 것입니다. 데포르메 되어서는.나는 어릴 적에 개를 죽였습니다.죽여서, 구덩이에 묻어 감췄습니다.죽이지 않은 것 같다면 그저 왜곡된 탓입니다.나는 조심스럽게 구덩이 바깥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쭈그려 앉아 구덩이 속을 노려봤습니다. 찰기 어린 흙, 끊긴 채 뒤섞인 바늘꽃, 어슴푸레한 밤빛을 응시하다가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을 가져왔습니다. 접이식 삽과 국화꽃 다발 전부를 구덩이 속에 넣어도 좋을 것입니다. 접이식 삽만 구덩이 속에 담고 국화꽃 다발을 간직해도 되겠습니다. 국화꽃 다발을 구덩이 속에 던지고 접이식 삽으로 메꿔도 되겠습니다만, 나는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뭐 하세요, 선생님?방금 집에 왔어. 그러는 학생은?저요?응. 학생 말고 누굴 말하겠어.집에 왔어요. 그런 당연한 거 말구요. 선생님은 뭐 하고 있어요?글쎄…, 말하고 선생님은 한동안 침묵했습니다.항아리를 보고 있어. 학생은 뭘 하고 있는데?모르겠어요.
눈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어야죠.
글 존내 기네 단락 구분도 안 돼있고 그리고 글은 취미로 쓰면 되는거 아니노 뭐 절필까지 하노
복붙했는데 다 깨졋어 ㅋㅋㅋ 어쩔 수 없지 난 취미로 쓰다보면 계속 상승욕이 생길 거 같아서 그냥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아
글이 정말 좋으면 결국은 다시 쓰게 되지 않겠냐
그게 고통스러운 거야
ㅠㅠㅠㅠㅠ
아 씨발 본문 좀 다시 올려 봐 병신아 5줄인가 읽었는데 문장 흐름 괜찮은데??? 독자 해줄게 ㅅㅂ
좋은데? 난 요즘 작가들 글 보면서 진짜 현대소설 못 읽어주겠다 싶었는데 이 글은 너무나 내 취향이야 ㅈ같은 글이나 뽑고 이런 글은 안 뽑으니ㅋㅋㅋ 현대소설 읽어줄 수가 없네
문장 힘이 좋아 최종심 오른 이유를 알겠다
이러지마 언능 지우고 좀만 더 해봐.. 아님 한 일 년 쉬고 하면 너는 될 것 같은데.. 암튼 문갤은 아냐 지워 ㅠ
플롯이 있는 소설을 써봐. 그러면 당선될듯
12월 31까지 절필할 거야
쉬었다 쓰면 새로운 스타일로 써질지도 모른다 재능 있네
여자인거 알려서 지금 존나게 파리들이 꼬이는거야. 파리는 똥에디 알을 까기 전에 손을 존나게 비비며 영업을 하는 법이야. 좋은 글 잘 봤다. 굿바이, 에밀리.
뭘 선택하든 잘 풀렸음 좋겠다. 화이팅!
선생이 하는 말들 중에 확 닿는 문장들이 여러 개 있어서 그순간에 그리 확 당겨서 맘에 들어와. 근데 약간 문장력 믿고 말놀이 하는 것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의아해. 아마 이 의아함들에 믿음이 서게 하려면 위의 누가 얘기했듯이 플롯이 명확해야 할 거 같아.
그리ㅡ글이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네 글빨을 믿어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그 믿음을 부수면서 말로 하는 글 말고 서사의 힘이 있는 글을 써보면 크게 될 거 같아
너는 니가 잘 쓴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쓰는 게 문제인 것 같거든. 절필은 한달만 하고. 오히려 옛날 글들을 읽어서 중화를 좀 시켜. 타인의 방,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이런 거나 이기호의 글을 봐. 말장난이나 말빨 위주가 아닌 구조적인 글.
그냥 당선에 목매이지말고 글을 써 그게 작가고 예술가야
절필은 시발 글밥 처먹다가 때려치는 거야, 절망에 지면 안대!! - dc App
던전에 투고해보셈
글 정말 좋은데요. 이 정도 재능이 있어도 등단은 힘든 거군요.ㅠㅠ
재능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은 소통의 의지가 있어야겠지.
네다음 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