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김민식 / 이게 제 기준엔 올해 신춘 베스트였습니다. 물론 아직 문화일보 당선작이 발표되지 않긴 했지만 말이죠. 요즘 시류를 본다면 나아가는 것만이 아닌, 다시 출발했던 현실로 회귀하여 돌아오는 시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현실의 한 영역에서 시작을 해서 최대한 나아갈 데까지 나아가서 성공적으로 다시 귀환하는 데 성공한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사평대로 작가만이 보는 미시적, 거시적 세계가 모두 한 편의 시에서 다 드러나고 있는 것 같군요.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신인이 썼다고 생각하니 몇몇 문장들에서 어떤 과감한 용기를 엿보게 됩니다. 전부 뒷받침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죠.




 한국일보 신이인 / 이곳에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최고였다라는 반응이 많이 올라와서 이렇게 이 시에 대한 의견도 함께 덧붙여보게 되었네요. 제 취향을 배제하고 나서 생각해봤는데 뽑힌 걸 납득할 수 없다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네요. 딱 그 정도의 재치있는 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착상이 된 상태에서 변환이 좀 되었을 뿐, 거기서 더 나아간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오리너구리의 속성을 통해서 형성이 된 시고, 그렇다면 저는 6연까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적당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미 그 자체로 자기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 문제인 것이겠고, 그 문제는 아마 마지막 3연부터 시작해서 형성된 걸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시는 오리너구리에 속박된 상태로 전개가 되는데 (속박이란 말이 뉘앙스가 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후반부에 오리와 너구리, 안팎과 실오라기 등은 이미 이전의 과정에서 이야기가 됐으니 다시 끄집어와 반복하는 양상에 대해서 저는 제가 의미론적인 측면을 꼬집어 싫증을 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연에서 사실 저는 어떤 부조화를 느꼈습니다. 분명히 그전까지 나는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 말들은 남들과는 다른 특이점을 가진 나에 대해서 언표하는 것으로 판단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화자가 어떤 독자 모델을 상정을 해서 말하고 있는 건지 저는 일단 모호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일 유형에 속해 있는 자에게라면 애초에 화자가 취하고 있는 이런 언표 방식은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마지막 연이 어떤 공간 안으로의 초대의 장치가 될 수도 있겠죠, 물론 시 안에선 확실히 그렇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층위를 그렇게 보편적으로 가져오기엔 아직 이 시가 가진 역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시를 읽는 데에 있어서 어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많이 서투르고 미숙합니다. 몇몇 분들이 말씀해주신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표방했으니, 이에 대한 반박들을 제 쪽에선 최대한 수용해 볼 생각입니다. 더 합리적인 읽기 방식을 함양하기 위해서 의견을 공유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시까지 다루기엔 제가 대부분 당선작들에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에 부정적인 의견이 주가 될 거 같아 이쯤에서 그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