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 안녕안녕. 오랜만에 글을 적으러 왔읍니다. 요즘 제 자신의 삶이 어떠한가 스스로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지? 응? 나는 요즘 하는 일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가, 또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요즘 저는 서울 소재의 한 인문학 공동체에서 강좌 하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강하는 인문학 공동체의 주소지가 서울로 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그 뭐랄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 때문에 줌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를 주로 듣고 있습니다.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다 보니 꼭 서울까지 이동할 필요를 알지 못하겠어서, 대부분의 나날들을 집 근처에서 배회하며 지내곤 합니다. 지금 저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카페에 나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중인데요, 제가 가게를 열어 자영업을 해 본 적도 없고 또 그럴 깜냥도 안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예전에 비해 매출이 많이 줄어든 가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이동량도 줄어들어서 수도권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인 서울지하철이 작년 1조원 정도 적자를 보았다고 합니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특히 그 돈의 액수를 적은 숫자만 보이면 여러분들의 정신이 그쪽으로 쏠려 혼미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끼리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돈 이야기가 나오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지 못해 안달인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힙합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놓고 돈 많이 벌고 싶다 여자랑 스섹하고 싶다는 걸 상스런 욕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음악 장르가 제 취향과는 약간의 거리를 가지기는 하지만 요즘의 저는 그런 음악도 들어보며 현대의 유행을 따라잡아보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익숙히 접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생각과 시도를 해보는 것이지요.


실제로 최근에 언더에서 활동하는 몇몇 래퍼들의 음악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글쓰기에서 또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듣는 것과 별개로 조용한 상태에서 적힌 가사를 바라보며 음미해보기도 하는데요, 힙합에 적힌 작사가의 배경에 어떤 개성을 가진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가 제 인식상에 쉽게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인데요, 제가 생각하기를, 그, 특히 학교생활에서 시문학을 배울 때, 상투적으로 '감정이입' 이라는 말로써 많은 문학 작품의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감정이입'을 하는 데에 제 자신의 장점이 있다고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하는 것이 바로 저 자신의 장점이자 또 단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이입'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시간을 갖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그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해 둔 상태가 아니니까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내리지 못한 채로, 그 개념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짧게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교과서 문학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한국문학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글이라는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 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날갯짓 하는 꾀꼬리 쌍

암수 서로 기대어 있네

지금 홀로 된 내 마음이여

이를 두고 어찌 돌아갈까


(제가 한번 번역해 보았읍니다)


학교 문학시간에 이 시에 나오는 황조, 즉 암수 다정한 꾀꼬리 쌍에 대하여 뭐라고 가르칩니까? 국어선생님께서 '객관적 상관물'이라 가르쳐주시지 않았나요?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표현이 잘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이 글에서의 물음은 여러분들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지만 글쓴이 나 자신을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오지선다형 문학시험을 더 이상 준비하지 않게 된 이후 시를 읽으며 저 용어를 사용하며 이렇게 저렇게 따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의 시 감상의 방법은 기회가 될 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용어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학교에서 조금 용기있는 학생의 경우에는 국어선생님께 '객관적 상관물'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것이 그 대상에 '감정이입'하는 것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객관客觀 이라는 말부터가 철학 등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객관이라는 것은 주관이라는 것과 대립되는 말이라고 여겨지고, 또 여기저기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이 필수인 이 시대에는 말다툼에서 이겨먹기 위해서 반드시 내뱉어야 할 줄 아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잠시 노래를 들으며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까요? 장 기하의 노래 한 곡 듣고 갑시다.



노래 제목이 '그건 니생각이고'입니다. 장 기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사회학과란 어떤 곳입니까? 특히 서울대 사회학과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끼리 술집에 모여서 자신이 보는 세계관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관점을 설익은 논변으로 떠들어제끼는 백가쟁명의 지식을 표방한 감정적 전쟁터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사회학과에 몸을 담아 본 적 없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제 주관적主觀的인 선입견으로 사회학과의 이미지는 그런 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노래의 제목인, '그건 니생각이고'라는 말을 좀 점잖게 말하면 '그 생각은 객관적으로 통용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가 되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당신은 주관이 참 확고한 사람이군요' 정도가 있겠다. 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강력한 주관을 가진 사람들을 칭하는 역사 속의 존재를 찾아 그 대상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곁들여 그에게 듣기 좋은 별명을 붙여주며 살며시 미소지어보이는 방법이 있다.


말하다 보면 잡담이 길어지고 마는데, 다시 우리 대화의 흐름을 찾아서 유리왕의 황조가, 그 중에서도 '감정이입'과 '객관적 상관물'의 내용으로 돌아와 봅시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께서 꾀꼬리에 밑줄을 쫙 그으라고 하고 무슨 말을 적어넣으라고 하던가요?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말을 쓰라고 하죠?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꾀꼬리는 시의 화자의 '감정이입'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대상과 유리왕이 현재 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꾀꼬리는 쌍쌍이 노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시적 화자는 지금 연인과 이별한 상태이다. 상반된 입장에 처해있기 때문에 꾀꼬리라는 객관적 대상과 유리왕의 주관적 감정은 따로 놀고(?), 그러므로 꾀꼬리는 '객관적 상관물'이고 '감정이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5번은 땡이고 2번이 정답이다. 뭐.. 이런 식... 하하...


여러분, 제가 이 주제에 대하여 여러분들께 글로써 무얼 논증하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강력한 주장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제가 좋아하는 아름다우우우우우우우운-- 노래를 한 곡 더 링크를 걸어보도록 하겠읍니다.





I was dancing with my darling to the Tennessee Waltz
When an old friend I happened to see
introduced her to my loved one and while they were dancing
My friend stole my sweetheart from me

I remember the night
and a tennessee waltz
Now I know just how much I have lost
Yes I lost my little darling the night they were playing

The Beautiful Tennessee Waltz

여러분, 이 노래를 가사의 시제時制tense 에 주목하여 감상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화자, 그것을 삼박자의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현재, 그리고 그 당시의 아름다움이 박제된 유튜브 영상...

stole 이라는 해프닝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