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주차장/안테나 세말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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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낡고 더러운 단칸방. 담뱃꽁초가 굴러다니고,소주병은 아무렇게나 구석에 똬리를 틀고있다. 풀어헤처진 옷들과 장갑으로 보아 막노동꾼의 집으로 보인다. 40대 아저씨인 정수는 방 한켠에 누워 티비를 보고있다. 무심하게 채널을 계속해서 돌리는 정수. 그때, 휴대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여러차례 연속으로 울린다. 네번째 울릴때가 되서야 정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확인한다.
<서울 xx구 xx1동 동사무소입니다. 수신인(이 정 수)님의 직계친부(이 훈 구)께서 자택(xx길 28-4)에서 사망하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관련행정절차 이행을 위한 회신 후 빠른 시일 내 동사무소에 방문해 주십시오>
온갖 기관 전화번호와 절차안내가 너저분하게 그 이후로도 몇 통이나 더 날라왔지만, 핵심은 한 줄이다. 아버지가 사망하셨습니다. 정수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멍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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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문 밖으로 나서는 정수. 언뜻 비치는 바깥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신발을 대충 신고 일어서다 그만 넘어질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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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사무소,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13이라는 번호가 찍힌 안내전광판 클로즈업. 아무도 오지않자, 공무원은 짜증스래 13번 민원인님을 두어번 부르지만 아무도 오지않는다. 곧장 14번으로 넘어가는 전광판. 한편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잇는 정수. 유산에 대해서 찾아보느라 바빠보인다. 먼 친척이 남긴 유산으로 대박이 난 외국 사례들이 담긴 기사의 스크롤를 문지르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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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간이 지나고, 23번을 부를 때가 될때야 눈치를 살피던 정수는 자신의 번호가 지나갔음을 깨닫는다. 말없이 다시 번호표를 뽑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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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창구로 다가가는 정수. 온갖 신원확인 절차와 관련 서류 작성에 애를 먹는다. 그의 부친 훈구는 사회적 약자로 등록되어 있었고, 동사무소에서 복지사분이 정기적으로 방문을 해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고 말한다. 겨울철 지금이 독거노인분들이 많이 죽어나는 대목이라, 처리 하시는 분이 아직 시체를 못치웠다고 말하는 동사무소 직원. 시체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전했다. 정수는 마음이 딴 데 가있는 듯이 눈동자를 따분히 돌리며 안내를 듣다가, 사망자 재산 조회신청을 했었는데요. 라는 말을 한다. 관련 서류를 찾아주는 직원. 창수는 하얀 서류봉투를 챙기고, 꺼내보려다가 그만둔다. 집 열쇠를 받아 동사무소를 나가는 정수. 동사무소 주차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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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훈구의 집을 찾아 골목길을 헤메는 정수. 간신히 집을 찾는다. 낙후된 서울 주택가의 3층이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다 잠깐 균형을 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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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차갑게 얼어붙은 집안, 입에서 김이 새어 나온다. 이리저리 눈을 흘기며 방문을 여는 정수. 바싹 죄여든 훈구의 시체는 딱지처럼 이불보에 달라붙어있다. 몇초 쳐다보더니. 발가락으로 이불을 집어 얼굴을 덮는 정수. 그리고선 바로 옆 의자에 다리를 벌린 채 털썩 앉는다. 시체와의 투샷. 아까의 하얀봉투를 꺼내서 한참을 유심히 읽는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정수. 아, 예 그 이훈구씨 아들 되는 사람인데요. 네, 네. 좀 궁금한게 있어서요. 그 담당하시던 복지사님 번호를 좀 받고 싶어서요. 네, 네. 전화를 하며 방을 거님에 슬쩍슬쩍 닫힌 서랍을 열어보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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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수염을 깎고, 머리빗질도 하는 정수. 어느정도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정수. 카카오톡으로 사회복지사의 프로필을 가만히 쳐다본다. 친구들과 눈 구경을 하며 찍은 사진. 프로필 사진을 넘겨보다, 그녀의 얼굴이 크게 담긴 사진에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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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근처 카페. 정수가 기다리고 곧 사회복지사가 자리에 앉는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회복지사. 밝고 생글하다. 프로필의 사진과 큰 차이가 없는 그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정수.
" 전화로도 말 드렸지만...... 제가 아버지랑 연을 끊은 지가 좀 오래라서요."
"아 네"
"그... 혹시 아버지가 따로 일을 하거나 한 건 없습니까?"
"아, 네 있죠. 주차장일을 엄청 오래 하신걸로 알아요."
"주차장 일이요?"
"아 네, 그러니까 주차장에 차 오면 딱지끊고 요금 받고 하는 관리일 있잖아요?"
"..."
"꽤 애착도 있으셨어요. 이것만큼 편하고 좋은게 없고,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이런 일을 해도 벌이가 쏠쏠하고 뭐 그런? 삼십년은 족히 해오셨던걸로 알아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계속 하셨죠"
"일을 하면서도 생활비 지원을 받은 거네요?
"네 그쵸. 그런 말도 하셨어요. 자기가 월급을 좀 덜 받는 대신에 무직으로 처리가 되있다고."
"그럼 돈은 보통 어디에 쓰셨던 겁니까?"
"돈이요? 수당만 쓰시고 싹 다 모았을걸요?"
"뭐 어디에 모았다거나, 그런 말은 없었나요?"
"?..."
"재산이 빵원이더라고요."
"그래요?... 이상하네? 집근처 양로원에 가서 친구도 사귀고 해보라고 해도 일만 계속 하던 분이었는데..."
"..."
"아, 그러고 보니... 금 시세를 찾아보시고 그랬던거 같아요. 금이 최고라는 둥?..."
흐르는 침묵. 둘다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한 눈치다.
"...혹시 일하던 주차장이 어딘지 아세요?"
"네... 아마 여러 군데를 같이 하신 걸로는 아는데...저도 그것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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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늦은 저녁. 만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주차장을 발견하고서 한번 들어가본다. 쥐콩만한 관리소 안, 훈구 또래의 쪼그라든 늙은 노인이 앉아있다. 그런 노인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정수. 들어가도 신경을 안쓰는 눈치다. 이리저리 주차장을 둘러보는 정수. 번잡한 도심에 걸쳐있는 데도 노인에게 어울리는 삭막하고, 정적인 공간. 정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핀다. 발코로 땅을 탁탁 처본다. 조금씩 패여가는 땅. 생각에 잠긴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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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피시방에서 훈구집 근처의 주차장을 찾아보는 정수. 수십개가 나온다. 금속탐지기 영상을 찾아보는 정수. 외국의 탐사가부터, 한국의 취미탐사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수많른 사람들이 금속탐지기로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다. 목적과 의도는 다르지만, 그 발견의 순간과 찾아오는 열광을 또렷히 바라보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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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며칠뒤. 택배로 도착한 금속탐지기. 포장을 뜯는 정수. 작동 영상을 찾아보며 시험작동을 해보는 정수. 그러더니, 빨간 색으로 거칠게 동그라미가 쳐저있는 지도를 들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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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울의 주차장을 돌아다니는 정수. 여러군데를 조사하지만 전부가 비슷한 모습이다. 한켠에 있는 쥐콩만한 관리인실, 그 안에 앉아있는 쪼그라 들어버린 노인. 그리고 삭막하고 건조한 주차장의 경관. 가끔 길을 틀어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 그 속에서 금속탐지기의 안테나를 세우고서 돌아다니는 정수. 각각의 주차장을 미끄러지긋 돌아다니는 정수의 모습이 조금씩 변주된다. 아무도 정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이국의 생태와 하나가 되어 묵묵히 그곳을 조사하는 탐험가에 오버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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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느 날 오후. 늘 그렇듯 안테나를 세우고 조사를 하는 정수. 위화감이 없다. 무표정하게 동그라미를 체크한 후 한 켠에 서서 담배를 피는 정수의 모습이 천천히 줌인으로 클로즈업. 그런데, 굳어있던 정수의 표정이 무언가 특이한 생명체를 발견한 학자마냥 갑자기 흔들린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처럼 금속탐지기를 써서 주차장을 조사하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 사회복지사였다. 정수는 무언가에 홀린듯 피던 담배를 땅에 던지고 탐지기를 황급히 등에 맨 후, 이리저리 탐지기를 들이밀고 있는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처음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씩 표정이 밝아지던 정수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이 만개해있다.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뛰다시피 신이 나 다가가는 정수. 인기척을 눈치 챈 그녀는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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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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