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불모한 그림과 사랑의 반절을 뜯어가고선 영영 돌려주지 않겠지요. 그 뒤로 저는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내 손목에서 흐른 피가 우리 방을 적시기에, 저는 급한 대로 당신의 초상화를 발라뒀습니다. 어디에도 당신이 없다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저는 그랬습니다.

 당신이 살아있기를 바랬습니다. 진부하며 구역질이 나더라도 쭉 달콤했으면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둘이 함께 살던 집에서, 저는 제 몸이 파스텔 분말이 되어 색색이 흩어지길 꿈꿨습니다. 그리하여 좀 더 쉽사리 나의 마음을 그려내며, 우리의 집을 칠하며, 그대가 가는 곳을 따르며 닳아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장례식 날 내린 비에 젖은 집에서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빗물이 도화지를 삼켜, 당신을 삼켜, 마침내 이곳에 풀이 돋아난더래도 나는아무것도 못할 것입니다.

 그날의 흙 냄새가 나는 초상화 위에 몸을 가로누입니다. 쓸모를 잃은 파스텔 가루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 비에 씻겨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봅니다. 아직도 단내가 나는 그 가루를 개미가 들고 옮겨 땅속으로 사라집니다. 언젠가 어여쁜 색깔로 자라날 초목이 제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흙이 되지 않은 당신 위에서, 그 위에 누운 제 손목을 타고, 개미떼가 지나갈 때마다 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곤 합니다. 그들이 옮기는 나의 살조각을, 비루한 핏덩이를, 그렇게 연일 비를 맞으며 말라가는 나의 윤곽선을 더듬고서야 잠에 듭니다.

 당신이 그렇듯 저도 이곳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따금 흙냄새에 볼을 비비며, 하 빨리 녹아 없어지길 바라며, 가슴 속에 쌓아왔던 색색의 가루들을 모두 내려놓은 후에 이곳이 어떻게 될지는 압니다. 불모한 도화지를 한 겹씩 쌓아 올린, 당신과 나의 집이 풍경화가 될 때까지. 저는 일어서지 않겠습니다. 붓을 쥘 일도 없겠습니다. 저는 호흡과도 같은 기우제로만 살겠습니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