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소리에 대한 폭력과 반성



오늘밤에도 신음 소리가 방 밑층에서 울려 퍼진다. 정사하는 두 몸짓이 배합된 기막힌, 그러나 여전히 견디기 힘든 성가신 소리들. 앙앙거리는 그 소리들이 터널 속 울리는 공명처럼 여과없이 전해지고, 나는 분노를 삼키는 양의 마릿수를 계산하며 잠을 뒤척인다.

머지않아 만 마리까지 세어본 끔찍한 소음. 삐걱거리는 침대와 속삭여 맞닿는 교태 소리. 주말 동안은 한가하게 여행을 가거나 모텔에 묵는 듯 간만의 고요가 별빛을 이루었지만 평일에는 아무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토로하는 퇴근길만이 남는다. 일주일 중 고작 주말 정도로밖에 커플간 사랑을 이룰 수 없다면, 어느 남녀가 결혼하고 애까지 낳을까 싶었지만, 동거하는 관계일 뿐인 이상, 저들은 그저 차오르는 욕정을 마구잡이로 잡아다 쓰는 사랑의 무뢰한에 불과해 보였다.

가끔은 팬티를 입가에 문 채 오르가즘을 참아내려는 그녀의 모습이 기특하긴 했으나 결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고, 직전에 터져 나오는 교성이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배반하고 마는, 밤잠 지새는 불면의 비참한 행진곡에 지나지 않았다. 파트너가 그순간 매혹적인 결합으로 쾌락에 젖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끄러운 나로선 당장 찾아가서 부수고 싶은 증오심만 일어날 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수면은 기껏해야 다섯 시간 정도, 하루의 결말처럼 정해진 폭음의 회식을 마치고서야 시침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택시를 포기하고, 돌아온 원룸에서 거뜬한 샤워와 티비를 포기하고, 연락을 포기하고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에 드는 형편이었다.

내일 예정된 미팅이나 업무량을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곤 했는데, 그때 또다시 불면의 행진곡이 들리는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이 거실에 숨죽여 있는 야구 방망이가 생각나곤 했다. 한창 취미삼아 야구할 때 쓰던 것으로 손잡이 부분에는 거칠고 하얀 천이 휘감겨 있다. 왜 그런 게 생각났을까? 고백하자니 부끄럽지만, 그렇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들을 때리고 쉼없이 때려서 금방 치명적인 고통으로 변모해가는 그 반전의 광경 말이다. 그것이 이웃에게도 마땅한 선으로서의 심판을 의미한다면, 정의라고 불러야만 속 편할 성싶은 그런 폭력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악마'가 되고 싶진 않다. 한편으로는 사랑의 정수로 나아가려는 한 커플의 가상한 소망을 모독하는 듯한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격언도 있다. ‘마음이 좁은 자는 생각이 극단에 흐른다.’ 그동안 사랑이란 감정을 업신여겨 거기서부터 동떨어진 소음의 세계에만 집착해왔던 것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오로지 데시벨 크기에 따라 나누는 차가운 냉혈한의 세계 말이다. 그러니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사랑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다운 그곳에서 사랑이란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면, 그것은 지금껏 생의 충동으로 벌어진 위대한 몸짓들로서, 천사들이 자아낸 아름답고 웅장한 하프 소리로 변해갈 게 틀림이 없었다.

내일 저녁 전할 메모지엔 이렇게 적혀있지 않을까 싶다.

윗집 이웃입니다,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커플을 아랫집으로 두어 감사할 일입니다. 저도 가끔은 그 열기에 매료되어 감응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지쳐서 힘이 부족하다 싶으시면 저희집으로 언제든 놀러와주세요. 맛있는 장어 요리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다시 봐도 언제나 따스한 구절들 같다. 나는 다시 내일 할 일에 대해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