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남자들은 선택적으로 문학판에서 배제당했지.

이들이 전역하고 딱 자리 노려볼 즈음
문단이라는 거대한 집단 자아가 자기들 밥그릇을 어떻게 챙겨야만 장래를 도모할 수 있을지 깨달은 거야.


어차피 예술이라는 거, 호흡 길게 소비해야 맞는 거지. 근데 유튜브 쇼츠니 틱톡이니 웹소설이니 웹툰 같은 짧은 호흡에 채산성 좋은 엔터테인먼트 소비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조금 있어보이는 예술 택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라는 거.

그래서 소수의 긴 호흡방식을 택한 사람들 중 그나마 다수인 집단을 공략하기로 한 건데, 그게 여성이다.

남성을 배제해봤자 원래 남성은 독자의 다수가 아니었어. 그래서 어차피 쪼그라들 분야의 매니아층을 챙겨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이른 바 구독경제의 작동 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려는 건데.. 그런 게, 그런 것도 꼴에 예술이라고. 예술이란 단어도 이제는 상품 앞에 붙는 ‘염가세일’이나, ‘한정판’ 정도나 되는 수식어구에 지나지 않게 됐네. 물론 적당히 고급져보이게 수식하는 말이겠지만.. 유행이 바뀌듯 예술이란 말도 곧 촌스럽게 변할 지 몰라. 내 말은..예술의 본질이 촌스럽다는 게 아니라, 요즘 이 단어를 써먹는 용법이 말야.

예술 부르짖어대던 것들이 한 순간에 돌변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지극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본논리를 따라서 일제히 한 집단을 배제하고, 마케팅하고, 시장조사 하듯이 선택적으로 표본을 뽑아대고, 한 산업 분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와 정성을 들여 후대의 영페미를 양성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저작물을 구독하고 배우고 종교에 가깝게 믿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너희들은?

그래도 문학을 하고 싶니?

네가 90년대 태생 남성이라면 말리고 싶구나
이 판은 너희 생각대로 정상적으로 바뀔 판이 아니야
나도 정말 한숨만 나온다

지금 막 시장에 자리잡는 사람들.. 10년, 20년 후에, 그러니까
너희와 동시에 그만큼 나이먹었을 때 어떤 작가를 선호할 것 같니?

자기들 글을 돌아보겠지.. 아주 판에 박힌 듯, 이유도 모르고 비슷하게 써온 자기와 자기 동료들 글을 보겠지. 자기들과 다른 신선한 걸 원할 거야. 처음엔 여성 내부에서의 발전을 부르짖겠지. 그러다 결국엔 너희보다 1, 20년 덜 산 남자들을 선호할 거야. 문학판에서 남성성은 화석처럼 잠들어있다가, 그제야 복원되는 거야. 지금 신인인 사람들이 다 나이 들어서 말야... ㅋㅋ

그땐 또 지금 교사들이 남교사 좀 보내달라고 교단에서 아우성 치는 것처럼, 남자작가는 평균에 미달해도 쿼터제마냥 알게 모르게 조금씩 뽑아주고 할 거야. 실력이 동등하다면 그 세대의 여성은 오히려 윗 세대 여성에게 치별 받는 거랄까?

86 세대가 90년대생 남자들을 아주 흠씬 두들겨 패는 것처럼 말이야. 문학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판이 (적어도 지난 4년간은) 지나칠 정도로 여초화 되었으니, 너희만 깔끔히 배제당한 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또 너희 다음 세대의 남성들은 너희를 손가락질 하고 비웃고, 너희 동세대 여성들은 너희를 지금 그러는 것처럼 온갖 멸칭을 붙여 부를 것이고.

86이 자신들의 퇴진 이후를 위해서 지금의 여성운동 세력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듯이, 지금 예술계를 먹은 무리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겉보기에 적당할 정도로만 젊은, 컨트롤하기 좋은 남자들을 예술계에 조금씩 배치할 거고, 그게 아니면 아예 배제당할 거야.

소름 돋는 전언들..

문학은 이제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던
젊은 여성 평론가의 당돌한 캐치프레이즈

그게 그들의 지배적인 논리야
어떻게 그게 작동하고 유지되는지는 모르겠어
다들 그걸 종교처럼 맹목적으로 믿는달까?
독자 작가 평론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말하지

맞아 문예창작과는 모두 통폐합되고 사라질 거야.
문학의 조건이 ‘좋은 글일 것’이라는 명제였던 때는 이미 지났어
다들
문학을 해서 대학원 가서 강사자리 얻고 열심히 공무원처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며 살 것, 그러면서 자기 성향의 후임을 양성하고 판화처럼 비슷하게 찍어내서 자기를 옹호해줄 무리를 만들 것, 그걸 꿈으로 삼고 문학의 종착으로 여기게 됐어.

난 그래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왔어
그래서 이제 나는... 전공한 것도 쓸모 없는 백수 놈팽이가 됐는데,
꿈을 잃었다는 게 되게 억울해

너무 사람이 많은 시대에 태어나서 박터지게 경쟁했는데, 그래서 몇 배 노력하고 공부해서 얻고 싶은 거 조금씩 얻어가며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모든 삶들이 그저, 너무 많아서 흔하고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란 이유로 지나치게 가혹했을 뿐이란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다.

90년대에 태어났다는 건 그런 거야.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나진 거지. 청춘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레토릭, 진심으로 믿어본 적 있니?

별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들어, 요즘은.
그냥 모두 다 밉다. 나 빼고 다.
그들이 하는 말은 설핏 듣기에 옳고 나도 동감하는데,
그 공포와 두려움과 설움을 왜 잘못된 방식으로 해소하려 하며,
그 화살을 왜 다른 곳에 겨누고 쏘아대며,
이전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면서만 그런 것을 이룩할 수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그런 흐름 앞에서 나는 정말 비루하고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개밥버러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왜
도대체 왜 적응이 안 되는 것이냐.. 내 인생이 쓸모 없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왜.. 앞으로도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