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설(Novel)은 근대 소설이다.
서사(Fiction)와는 정의가 다르다.
허구적 서사의 기원은 그리스 시대의 서사시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다.
근대 소설은 그러한 그리스 서사시와는 달리,
‘신화나 영웅이 아닌 개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소설, 지금에야 흥부전 홍길동전에 ‘고전소설’이라는 용어를 붙이지만, 사실 그것은 (근대) 소설이 아니라 말하자면 ‘전 (이야기)’이다.
그 전들을 보자. 어떠한가?
흥부전 홍길동전 심청전 춘향전과 같은 글은 모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개인의 내면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밀도가 낮다.
내면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다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역사상 최초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1인칭 시점은 근대 이후 개인의 발달로 인해 등장했다.
‘개인의 내적 고백’과 비로소 ‘개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근대 등장 이후, 상업소설이 없었는가?
당연히 존재했다.
신문에 실리는 연재 형식이 그 상업적 성향을 띤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오늘날의 웹소설이나 드라마와 비슷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특별히 잔인하거나 연재에서 갑자기 개연성에서 벗어난 사고가 등장하거나 한다.
이러한 이유는 다음 연재분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문이나 잡지는 이러한 소설을 실어서 매체의 판매분을 높였고
그 고료를 상업 작가에게 지급했다.
*감히 니가 작가를 돈 주고 사려는 것인가?!! 라고 꾸짖기에는 부르주아가 너무 돈을 많이 주었다.
고작 소설 하나 때문에 신문을 산다고?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으나, 그 당시에 티브이도 영화도 드라마도 없었던 18세기라는 점을 인지하자.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고 매일신보가 불티나게 팔려 가고, 무정이 실린 신문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하고 나눠 읽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상업소설은 말하자면, ‘(근대) 소설’이 아닌 ‘이야기’이다.
서구 사회에서 근대 문학이 넘어왔을 때, 동아시아에서는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문‘예’(文藝)가 아니라 문‘학’이라고 명명했고 이는, 학문으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에서 흔히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그 소설은 ‘근대’라는 단어가 생략된 개인의 고백과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에 초점을 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개인의 목소리는 세계 속에 묻히고자 하지 않는 일종의 저항이며, 소설 읽기란 이들을 이해하는 작업이고, 그들의 언어는 세계를 다시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요약
1. 근대 이후, 개인이 발견되고 근대 소설이 발달
2. 이는 그리스 서사시 같은 서사와는 달리 ‘개인의 경험 욕망 정서’ 등에 관해 이야기함
3. 그러므로 소설은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이 낸 목소리의 기록이자, 널리 퍼진 그들의 언어는 세계와 문화의 정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근대 사회와 부르주아와 예술에 관해서 씨부리겠음
재밌넴
개추
어떤 시인 소설가가 연재하느냐에 따라 신문이나 잡지 판매량이 달랐다죠 이상이 오감도 연재하다가 욕먹고 관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