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선생은 이미 그 당대 가장 훌륭한 고전이요 음악이요 시다

이것을 24시간도 모자라 들으며 완전히 흡수하며 곱씹고 씹어 일백번 고쳐 씹어 내재화하면 거인이 된다.

하지만 거인이 되었다 나팔 불때 곧
먼저는 세상이 보이고 그다음 작디작은 자신이 보이고

그다음 자신 안에서 응어리진 자그만한 것들을 그래도 잉태하고 싶어 앓아,
구체적으로 이건뭘까 저건뭘까
퀘스쳔마크 붙이는 과정에서 이미 몇줄 끄적인  눈앞에 문장을 시발점하야 따라가며 최초의 자기작품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내밀하지만
나도 감동할 수준이 일단 되니,
다른 이도 어쩌면 감동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야심이며

그것이 바로 시대를 떠나 올바른 문학의 근원이어야 할진대

..문학은 사회 경제사 속의 인간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당대를 살아가는 형편에서는
당연히 거대한 체제 안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맞다.

허나 그럴지라도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만을 말한다면.
사실 그것은 문학의 역할이 아니다.  

문학은 그와는 다른 무엇이다.

문학은 사회를 뛰어넘는 영과 정신의 지점을 건드려 감화시켜야 한다.
  
먼저는 쓰는 내가 글에 감화받고 아기같이 온전히 즐길줄알아야 하며
모든 현실적인 굴레에서 일시로 해방되어 표출하고 모나고 각진 곳을
정성스레 일일이 다듬어 , 끝내 자신밖에 알아주지 못한다 하여도
일단은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레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사조에 따르느라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고 . 시시콜콜한 대중의 흐름에 미련하여 못따라가도 좋으니

나 자신이라도 정신차리고 아름답게 돌을 깎아가며 일생을 지내며
감사하며 스스로 돌이키는 연구자가 되어도 좋다는 바람이며

흐름에 무시받아도 병아리 안듯 자기글을 따스히 안는 자세로 ,
저자세로 살아도 좋다는 하나의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등단이 목적이랴!

생각해보라. 이 믿음으로 일생을 쓰는 자와 어쨌든 등단은 하자

씨름하는 두 자 중에 누가 진정 큰 자인가?

나는 오만하고 싶지 않다. 자만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시작은 첫단추부터 똑바로 매어야 그다음 수순이 올바르다는 사실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