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생각을 들키는 형을 선고받았다
나무가 강간당하고 있다, 라고 썼다가
소란을 말없이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풍경을 묵인해야 하는지
얼굴없는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도 지금이 몇 초인지 묻지 않아
구름의 모양을 정의하려는 사람은 없지
바로 내가 그러는 줄은 모르고
문제를 풀기 전마다 빗금부터 쳐놓는 것
언제부터 웅크리고 걷게 됐는지
둔감해야 할 때 민감하고
민감해야 할 때 미쳐버려요
나에게
근사한 병명을 진단해주세요
당신은 차분하다
그럼에도 상념을 흘리며 걷는 사람이 되렴
널브러진 옷가지는 차곡차곡 정리하면 돼
그래야지
가지는 가지의 방향으로
뻗어야 하는데
꼭 조준경은 나사 하나가 빠져 있다
잘못 끼운 첫단추 때문에 찢어버린 셔츠
눈에서 생기를 빼내는 방법
시선이 빗겨나가길 희망하면서
가로수는 파르르 떨고 있다
당장이라도 불에 붙을 자신이 있다
ㅡ
맨날 백석 서정주만 읽다가 눈 돌려서
요즘 시 읽고 써봤는데 좀 어떨지 궁금합니다
가감없이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집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아주 좋은데요.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이 좋습니다. 우려될만큼 지나치게 간격이 넓지도 않구요. 개인적으로 3연의 4행은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빼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습니다. 시집은 워낙 시인들의 개성이 저마다 달라서 읽을 때마다 중점적으로 보는 게 다르지만 그래도 하나 꼽자면 시인의 시선이 아닐까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가장 유심히 봅니다.
단어 선택은 강렬하지만 문단 자체는 부드러움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렬하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혹 단어가 다소 과하다는 말씀이실까요?
단어 하나가 각 연을 엮어주기에 강렬하다 표현했습니다
5-6연이 어색함. 갑작스런 당신이라는 존재의 등장과 함께 이미지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 같음. 나머진 재밌고 잘 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