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가 새기 시작해서 나는 방을 나와 바다로 갔다 파도를 구겨진 이불처럼 걷어차며 걸었다
점점 낮아지던 허밍이 바닥에 닿으면 하늘 끝에서부터 새들이 떨어져 내렸다 모래밭은
온갖 동사가 자라기 좋지, 흰 사체는 어쩐지 몽돌을 닮았다
하나를 주워 힘껏 던졌다 아무런 울음도 들리지 않았다 돌을 주워 힘껏 던졌다 아무런
울음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셋을 줍는 대신 누수와 낙수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날아간 것들이 돌아오지 않아도 해안은 반쯤 잠긴 방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하염없이 돌아가는 등대를 바라보았다 색이 되기 이전의
빛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 벌레들의 독법이라면 썰물에 제 몸을 터주는 것은 물고기들의 보법
아무도 없단 걸 깨닫고 입을 벌리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창법이지 새벽의 횡단은 부단하지 않으면 무단해진다 이 벽에서 저 벽까지
휘파람을 그어 그날의 일기를 정리했다
노래를 다 부르면 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방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다 허밍이 없어도 새들이 떨어져 내렸다 새들이 없어도 새들이 떨어져 내렸다
다 뭔소린지 모르겠다.
누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좀 알려줘라
잘쓴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누수의 이미지, 화자에게 어떤 이상이 생겼다 그럼 어떤 이상일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자는 바다로 갔다 아직은 바다의 의미도 잘 모른다 단지 파도를 구겨진 이불처럼 걸었다는건 이 바다가 사실 아직도 방일지 모른다는 가정을 하게 해준다 이어서 보자면 허밍이 낮아진다는 것 화자가 소리를 멈추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이어져 새들이 떨어져 내린다는 것 그건 자살충동으로 볼 수 있다 뒤의 사체라는 단어가 이러한 해석을 더 타당하게 해준다
아마 사체는 화자처럼 자살충동을 느끼고 자살한 거겠지 근데 그게 별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해변을 구성하는 몽돌이 되어버렸다 자실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부분이지 화자는 몽돌을 던짐으로써 먼저 자살한 시체들에게 묻고 있다 그게 의미가 있는 거냐고 당연히 몽돌들은 답이 없다 이상의 힌트로 생각해보면 바다는 화자의 내면 속 우울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먼저 죽은 사체들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허밍은 일종의 생명력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무런 울음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도 역시 몽돌이 된 사체들에게 생명력이 없다는 것
화자는 둘을 줍는데서 그치고 누수와 낙수의 차이를 생가한다 하강의 이미지가 앞에서 자살충동이었다는 것을 볼 때 낙수는 죽음이고 누수는 현재 화자에게 닥친 상황 일종의 이상증세다 화자는 누수와 낙수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이상증세가 과연 자살할 만 한 것인가 만약 자살까지 가야 하는 우울이라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묻고 있다 날아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고(자살에는 해답이 없고) 해안은 반쯤 잠긴 방이 된다 여기서 첫 연의 의문이 풀린다 화자의 방과 바다는 사실 처음부터 같은 공간이었다 즉 화자의 내면과 자살 충돌을 들게 하는 우울은 같은 것이다 화자는 방의 이상증세(누수)를 느끼고 바다(우을이라는 감정)으로 도피했는데 사실 처음부터 별 차이가 없었다
그걸 깨달은 화자는 등대를 바라본다 등대가 하염없이 돌아간다는 진술로 볼 때 등대는 시간의 무의미한 흐름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벌레는 색이 되기 이전에 빛, 그러니까 감각에 의해 왜곡되기 이전의 빛을 읽는다 물고기들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들은 어떤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음 진술에 답이 나와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고독하다는 실존주의 철학적인 진술이며 김소월 시에도 종종 나타나는 사유다 역으로 화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분 시 다 좋았음 '돋아난 예감을 말려 화병에 꽂아두었다' 라든가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았는데
새벽을 부단하게 횡단하여 무단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즉 화자의 이상증세는 고독이었고 그 고독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었으며 그 고독에 빠져 죽음으로 향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화자는 또 하나의 소리 휘파람을 내서 일기를 정리한다 즉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정리한 것이다 그러자 물 바다 즉 우울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시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마지막인데 화자는 결국 우울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고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들은 계속 떨어져내린다 하지만 화자는 우울을 벗어나 진정한 내면(방)을 찾고자 계속 걷는다 일종의 고독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이 시의 장점이자 단점은 물의 이미지이다 이 시인은 물의 이미지와 내면의 우울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해 환상성을 부여하면서도 실물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물을 우울의 알레고리로 삼는 건 자칫 진부하게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문학과 사회에 투고했다면 이와 같은 이유로 예술성을 충족하지 못해 당선되지 못했을 것 그리고 중간에 벌레와 물고기가 등장하는 부분은 자칫 작위로 읽힐 소재가 있다 고인물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것 창비에 투고했다면 아마 같은 이유로 당선되지 못했을 거다 즉 현대시라는 문예지 수준에 딱 맞는 당선작이다
니가 해석을 못한다고 무지성으로 현대시 다 개소리임 이렇게 말하지 말아라 10년대 최초의 현대시들부터 차근차근 읽어봐 제발 그럼 시인들이 사용하는 비의와 알레고리 미적인 형식들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일 테니까 너 지금 국어 공부 하나도 안하고 괜히 시험 어렵게 낸다는 국평오 급식들처럼 보여
1910년대
본문 어디에도 "현대시 다 개소리임"은 없는데 혼자 확대해서 해석하고 급발진 ㄷㄷ - dc App
얘가 밑에서부터 계속 현대시 븅신이라고 글 썼는데 너야말로 잠깐 보고 확대석이라고 단언해버리지
진짜 이런 새끼들하고 상대해주고 있다는 게 한심하다 저번에 맷돌이나 다우은 이런 애들 시도 봐줬는데 이런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애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고 시발 걍 안온다 잘먹고 잘 살아라
알려달라는데 그냥 알려주면 되는 걸 걷다 대고 무지성이라고 하니까 그렇지 ㅋㅋㅋㅋ 진짜 국평오는 알려고 하지도 않음 - dc App
급발진은 아닌듯.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현대시 비난하는 어조로 글을 작성한 게 분명해서 거기에 대해 합당한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정말 갤러리 수준 떨어지는 녀석들만 모인 것 같다. 내 바로 윗 댓글이 작성자가 아니면 심각한 난독증이거나 정서 불안, 사회성의 결여로 의심된다. 그와 같은 이유로 시 해석을 해준 사람의 탈갤은 꽤 효율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글 올리신 분이 누차 현대시 난해하다고 불평하셨기 때문에 강하게 한번 말씀하신 듯하네요. 떠나지 마세요...
애초에 엉터린데 해석이 될리가 없지
뽑힐만하네. 잘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