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버스>




할머니는 인천의 어느 동네에서 혼자 살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한 해에 돌아가셨다. 삼십 년을 넘게 혼자 지내서였을까.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참 많았다. 옆집 아들이 이번에 취직했다느니,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허리를 삐끗해서 며칠째 앓아누워 있다느니, 길 건너 구둣방 할아버지는 점심에 늘 자장면을 먹는다느니. 동네에서 벌어지는 별의별 이야기를 전부 꿰차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동네에서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 나가면 세 걸음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인사를 건네왔다.

낙지 할머니 아녜요? 손자가 할머니 보러 놀러 왔는가 봐요.”

어릴 적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할머니 댁에 방문했기에 나 역시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고작 낙지 몇 마리 사는 데 세 시간씩이나 걸리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던 당시에 나는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가 내심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귀찮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내 속마음을 할머니에게 들려준 적도 있었다. 낙지를 손질하고 있던 할머니는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사람이 귀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혼자가 되는 거란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그 동네에서 낙지 할머니로 통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산낙지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나는 늘 낙지를 사달라고 보챘다. 수산물 가게 아주머니는 또 산낙지 먹으러 왔니? 라고 내게 물으며 방긋 웃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당차게 끄덕이면 다른 손님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린데 벌써 산낙지도 먹고, 대단하네.”

그러니까요. 나중에 홍어도 한번 도전해보렴.”

사람들은 산낙지를 즐겨 먹는 나를 무척 신기해했다. 산낙지를 좋아하는 어린이와 늘 낙지가 담긴 봉지를 들고 다니는 할머니. 우리는 그 동네의 명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우리가 동네에서 더욱 유명해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였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나는 일주일 정도 할머니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직장 때문에 나를 데려다주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낙지 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싱싱할 때 먹어야 더 맛있으니까 미리 사놓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곧장 버스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수산물 가게 아주머니는 오늘따라 낙지를 많이 사시네요, 라고 말하며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손자가 일주일 정도 여기에 있어서 잔뜩 먹여주려고 그러지.”

그럼 다섯 마리로는 부족하겠네.”

아주머니는 검은 봉지에 낙지를 두 마리 더 넣어주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장사하면 남는 게 없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막무가내로 내 손에 검은 봉지를 쥐어주었다. 할머니는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나한테도 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라 했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배꼽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흔들었다.

만족스러운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이미 승객들로 꽉 차 있었다. 버스가 우회전하면 사람들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좌회전하면 왼쪽으로, 멈추면 앞으로, 출발하면 뒤로 기우뚱거렸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덧 집 근처 정류장에 다다랐다. 문이 열리자 할머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내 반대쪽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봉지가 어딘가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 틈으로 낙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어머, 이게 뭐야!”

낙지야 낙지!”

버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초여름의 후끈한 열기에 더해 낙지 비린내가 주변에 확 퍼졌다. 할머니는 당황해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낙지 두 마리만 줍고는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어떡해, 어떡해, 발만 동동 굴렀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 하지만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대신 창문이 열렸다.

낙지 할머니! 여기 낙지 받으세요!”

꿈틀거리는 낙지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하나

마침내 일곱 마리의 낙지 모두 나와 할머니의 손으로 돌아왔다. 모든 일을 마친 버스는 부르릉,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였다. 나와 할머니는 멀어져가는 버스를 향해 배꼽인사를 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차창 밖으로 흔들리는 손, 허공을 가르는 낙지, 저녁노을에 물든 채 멀어져가던 버스와 웃음소리. 그 기억은 참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하다.

오늘날 버스에 올라타면 승객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마치 저마다의 담벼락을 주위에 두른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나 역시 그들처럼 혼자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람이 귀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혼자가 되는 거란다.”

버스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에서 어쩐지 낙지 비린내가 뭉클 피어오르듯, 이제는 하늘나라에 있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