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한자 아재의 한계야.

2010년 이후로 등단작이든 소장작이든
2022년 신춘문예까지
한국시가 천편일률인 상황에서
황인찬은 오히려 조금 다르고

쉬운 말들로 쉽게 쓰는 듯하지만
진지하게 써본 사람은 그렇게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지
시가 아니게 하는 온갖 함정과 암초를 피하면서
시가 감하 사용해보지 못한 말들로 시를 이룬다는 게.

그리고 그 시들이 정작 이 시간의 천편일률을 돌파하고서
시가 오랜 시간 동안 해온 시의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다른 시인들에게 흔한 이래야 시지 싶은 천편일률이 필요하다면
그 시들을 읽으면 됨.
황인찬이 굳이 그 사이에서 아둥바둥 이래야 시인 자리에 봉사할 이유는 없어.
그것이 황인찬을 나같은 사람으로하여금 가치있게 보게 하는 이유고.

박수근은 박수근으로 천편일률이고 김환기는 김환기로 천편일률이지. 황인찬은 황인찬이면 되는 거고 다른 시가 필요하면 다른 시인에게 찾으면 되는 거고, 다른 시인은? 황인찬의 그런 거를 못 쓰고. 오늘 황인찬만 그렇게 쓰고 있지. 그래서 황인찬은 천편일률이 아니야. 시문학사 따위는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한자 아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