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문학작가를 꿈꿨지만 글을 쓸 때 오는 너무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습작을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예전같은 필력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 소설의 완결을 내년까지 내볼 계획입니다.
하지만 다시 우울해지면 연재를 중단할 계획입니다. 과거에 썻던 분량을 갤러리에 공개합니다. 유튜브 링크는 글 말미에 놓겠습니다.
시멘트 집에 사는 엔트에게 정을 통할 마녀가 찾아온다
엔트와 마녀
어렸을 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꺼내려 거울을 부셔버린 적이 있다. 거울 속의 나를 꺼내고 무한히 뻦은 저 안 속의 평형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안은 무소음의 세계였고 공해나 감관의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저 매끈한 판넬 위에 그림자처럼 미끄러저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사람의 형상이 그 세계의 저편에 준비되어 있다가 미친듯이 달려와 그 사람이 선 장소를 비추는 영역에 태연히 들어온다. 그러고선 바보같은 연극을 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거울 속 나를 탈출 시키기만 한다면, 더 이상 멸시 당하는 잡종의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좋다. 우선 너 스스로가 나를 멸시하고 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는 도저히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다가 저 안의 아무 생각도 없는 그리고 하루 약 1시간의 '모사'의무만 다하면 되는 저 형상에 눈이 가게 된 것이다.
나는 먼저 거울을 깨고 그 안의 형상을 흠씬 두드려 패주려 했다. 그리고 그에게 진공 세계의 규율이 아닌 이 진짜 세계의 규율을 설파한 후 내가 거울 파편이 남겨놓은 진공세계의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것은 이론상 관짝의 문을 열면 사체가 나오는 정도의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내가 거울을 깨부순 즉시 거울의 세계는 파괴되었고 수많은 세계들로 와해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들어가려 한 저 세상이 이 세계의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자하는 열망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연구 중이며 언젠가는 꼭 거울 속에 들어가고 말리라!
한 머저리 시인은 거울 속의 자신과 악수를 하지 못한다고 한탄해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우선 자신이 아닐 뿐더러 악수를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우선 자신이 아닌 자와 악수를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해야할 것이 있다. 그 인간을 거울로부터 꺼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이룩할 수 있다.
태만
태만과 권태
태만과 권태
태만과 권태
그런데 그런 상념마저 없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그래 꼭 그 거울일 필요는 없었다. 다른 거울을 찾아보자!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강한 감정을 이 작은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원망스럽도다. 내게 작은 그대의 몸을 안기란 너무도 쉬운 일일텐데. 그대의 무거운 마음을 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내 내 마음 이 작은 몸으로 이 강한 외로움을 견디기가 가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만다. 파란처럼 부서지는 머릿속 난파선을 보라 아니 볼 수 없다. 머릿속에는 눈이 없다. 이내 부서진 파편이 머릿 속을 찌르고 욱신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난파선 속에는 보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물을 엊기 위해 머릿속에 들어가 줄 작은 난쟁이는 구하지 못했다.'
난파선이란 허무를 말하는 것인 모양이다.
나무 위에 담쟁이 덩굴이 타고 오르고 그 위에 잔뜩 이끼가 끼어있다. 위에서 보면 바퀴의 회전축처럼 정원의 중앙에는 나무가 서있고
길은 하늘로 솟구치는 나무와 같다
길은 땅을 흐르는 강과 같다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을 저질렀다."
처형인이 상아 같은 은빛 검을 든채 벌거벚은 육신 앞에 서있다. 이 자는 영혼 뿐만 아닌 육신이 함께 지옥에 끄달려온 것이다.
"그대의 영혼은 줄달음 칠 것이며, 육신은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지옥의 밤이 오기 전에 지옥의 하늘에는 일식 중의 태양과 같은 검은 눈동자가 떠있다. 그 검은 눈동자의 홍채 속에는 모든 지옥에서의 일들이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지옥에도 이젠 마천루가 있다. 그러나 악마들의 취향에 맞게 반파되어 땅에 아무렇게나 사선으로 꽂혀있다.
몇몇은 불타 총석정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미이라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심미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들이 괴상한 건물들을 쌓아올리고 부수니까 지옥에 괴기망측한 흉가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죄인은 얼굴을 들고 처형인에게 질문한다.
"나의 죄는 무엇인가?"
"죄라..."
처형인은 지상의 황혼녘과 같은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하늘을 바라본다. 그 중앙엔 검은 자위가 떠있다. 불의 구름이 날아다니며 구름을 사냥하고 있다. 구름은 비명을 지르며 연무를 흩뿌리며 증발해버린다.
"너의 전생에 대해서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뭐라 말할 방법이 없다."
처형인은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너의 죄가 '가장 악독한'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명심해라. 이제껏 단 한명의 사람만이 그 죄를 입고 이 땅에 발을 디뎠다."
하늘의 검은 자위는 동공을 키우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볼 수 있다니."
"저런 악독한 쓰레기는 죽어 마땅해요."
좌중은 이곳 저곳에서 죄인을 비난하고 있었다.
거인 둘이 죄인의 헐벗고 망가진 육신에 불타는 십자가를 던진다. 죄인은 미친듯이 발버둥치며 십자가로부터 벗어나온다. 이미 몸에는 화마의 흔적이 선명이 새겨져있다.
"자, 이 불의 채찍을 주마. 이 불의 채찍으로 십자가를 동여매고 끌면 훨씬 나을거야."
처형인은 자기 허리 춤에 차여진 마대자루에 들어있던 불의 고리로 만든 채찍을 죄인에게 쥐어준다.
"내가 이것을 동여매고 끌면 되는 것인가?"
"그래."
죄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십자가와 채찍을 연결했다. 그러고는 오른쪽 어깨에 들춰맸다.
"아 그리고 몸 조심하길 바란다."
처형인과 죄인의 얼굴이 마주한다. 죄인의 동공은 숨 쉴틈도 없이 커져있었다.
"그대의 죽음 뒤에 놓인 것은 '무'다"
"지옥에서도 죽는단 말인가?"
"영혼이 죽으면 다신 살아나지 못해. 이 곳에 화한 너는 지금 육신과 영혼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조만간 영혼만 남게 될 것이고 결국엔..."
죄인은 불의 채찍이 가하는 어깨 위의 고통도 잊고 처형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형벌의 집행을 맡았다는 건 너의 존재는 말소 된다는 의미이다. 저 심연의 아귀와 같은 눈망울 속에 빨려들어갈 수도 있지. 아니면 지옥 테두리에 있는 파도가 일지 않는 망각의 바다 속에 들어갈지도 몰라. 영혼이 죽는다는 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죄인에 대해 흥미가 떨어진 나는 나의 작은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곳에는 마녀 레테가 있었다.
은발 머리에 가녀린 몸을 가진 갓 성인이된 젊은 흰 핏덩이를 지닌 그녀. 피부는 옥처럼 맑아 안으로 푸른 혈관이 비춰진다. 눈썹이 짙고 눈이 큰 말괄량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의 올라간 입꼬리, 옴팡진 가슴...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야에 놓인 종이 거룻배를 보고 있었어요."
종잇장은 물에 젖어 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재밌군."
"물 속을 바라보는 건 정말 재밌어요. 여러 공상을 하게 만들죠."
"어떤 공상이지?"
"물 속을 거닐다보면 나는 숨을 쉬고 싶다네 아가미를 달고 해저의 저변을 멤도는 모습. 망각의 강 속을 헤엄치다가 나는 이 곳에 왔네.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기억 없는 그 세계로."
"아름다운 시군. 자네는 매일 같은 성희와 마법의 향연이 만족스럽지는 않은가?"
아! 이승의 숙녀였더라면... 그녀가 이승의 숙녀였더라면ㅡ
"저는 이 거룻배를 보는 것이 좋아요."
"그건 이미 거룻배가 아니야. 젖은 종잇장일 뿐이지. 오늘은 누구를 상대하기로 되어있나?"
"그건 저의 맘이죠."
"그래, 내가 알 필요는 딱히 없을 거 같군."
"엔트님은 왜 이러시죠? 평소와 같지 않군요."
"뭐가 그렇다는 거지?"
"평소 같으면 지옥에 대한 온갖 멸시와 조롱의 언사로 저를 기쁘게 할텐데. 지금은 오히려 진중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저를 화나게 하고 있어요. 저의 시에도 온갖 더러운 비평을 쏟아넣고 시의 항로를 뒤바꾸어 놓을텐데."
"이를테면?"
"저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어서 빨리 가장 저속한 말들로 저의 시를 물들여주세요."
"귀찮군."
"그렇담 저도 오늘은 가야겠군요."
레테가 집을 나가려 하자. 나는 그녀의 머릿카락을 살짝 붙잡는다. 그녀의 머릿카락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불로 화하는 형벌이 있으라!"
소녀는 뒤를 돌아본다.
"오늘은 시가 떠오르지 않는군. 그래도... 잠시 나와 어울려주지 않겠나?"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아니 그녀는 마녀다.
"마녀를 흠모하다니 단단히 미쳤군."
술집의 당나귀는 나에게 검은 소마주를 내준다.
"소마 열매를 따다가 이 지하감옥 철창 속에 갖힌 멍청한 뚜쟁이들에게 주면, 이 멍청이들이 못이 산더미같이 박힌 나무통에서 발로 소마를 빻지. 그러면 땅바닥에 있는 홈으로 된 수로를 통해, 다음 방으로 그 과즙이 흐르는 거야. 그 방에서 멍청한 부자들이 빻아 만든 버찌와 포도즙과 만나고, 그 다음은 지하수로로 연결되어 거대한 항아리 속에 담기지. 항아리 아래에는 거대한 화로가 있는대 그 안의 불쏘시개들은 방화범이라네. 그리고 가끔 풀무질을 하는 일은 사탄이 직접 하고 있지."
"그렇담 자네는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르지. 이 세상에서 고통이야말로 최고의 주화이니. 고통을 모아 빵을 사고, 고통을 모아 집을 사고, 고통을 모아 술을 살 수 있으니! 그런데 풀무질을 하는 사탄이 그 고통을 죄다 받아간다네. 생각보다 누군가를 고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아 자네에게 줄 것이 있네."
"그 호리병에는 노란 고통이 들어있군."
당나귀는 노란색 호리병을 내게 건넨다.
"이건 내가 사탄씨에게 받은 거라네. 지상에서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아 자살을 택한 소녀의 것이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나?"
"명예살인을 하려는 여자친구의 오빠를 죽인 애인 때문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린 여인이지. 오필리아나 데스데모나와 같은 처지야."
"오필리아... 데스데모나..."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정신착란 아니겠는가? 그들의 삶 속에서 보면 고통이지만 이 술 속에 담그면..."
술 속에 고통의 연무가 흩뿌려진다. 연무는 가라앉아 술의 색을 흐린다.
"예술이 되지."
"예술이군 순일한 감정이 아닌 고통과 사랑이 섞인 감정."
"마셔보게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것을 애써 잊으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릴 때 그런 슬픔이 느껴진다. 격정적인 눈물을 흘릴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지고 몸이 나른해지며 정신이 피폐해져간다. 그렇게 고통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장을 태우는 듯 강하게 짓누르다가 숨 쉴틈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고통의 양감이 느껴진다. 고통의 커다랗고 보드라운 손이 느껴진다."
"자네는 모르긴 몰라도 전생에 시인이었을 거야. 자네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이 지옥에 떨어지고 사람의 형상이 아닌 엔트의 형상일리가 만무하지. 자네가 가끔 읊조리는 시의 수준이 호메로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야."
"시인은 지옥에서도 대접받는 모양이군."
"그래, 지옥에는 죄인들만 오지만 유독 대접받는 죄인들이 있지. 그리고... 그건 어떻게 된건가?"
"그거라니..."
"이번에 온 대역죄인 말일세."
"아 그 자 말인가? 십자가 형이 선고되었더군."
"십자가라... 하하. 아주 재밌는 친구로구만."
"결국 영혼은 소각시킬 예정이라 하네."
당나귀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영혼을 소각한다고? 전례가 있는 일인가?"
"자네가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알겠나?"
"하기사 나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알까..."
"그래, 자네가 가장 많이 아는 법이지."
"혹시 기분이 상한건가?"
당나귀는 약하게 웃으며 작게 말한다. 그의 표정이 얄궂게 느껴지나 미워할 수 없다. 약간의 동정을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미안하네."
"아니야. 자네, 이 고통의 호리병을 주겠네."
"그거 아나? 이 고통은 나의 고통과 형질이 같은 거 같아. 나의 고통을 추출해서 마시면 딱 이런 맛이겠구만."
"나는 마시지 않을 걸세. 자네같은 쭈글탱이 나무인간의 고통이라면 말이야."
나는 미친듯이 웃다가 당나귀의 손에서 고통이 담긴 호리병을 낚아챈다.
표정을 굳히며 그에게 말한다.
"어떤 고통이면 좋겠나?"
"일단 아무 고통이나 3닢 주게나."
나는 고통이 담긴 은화를 3닢 꺼내서 당나귀에게 준다.
"고통은 좋은 것이야."
"그렇고말고, 금권정치를 하시는 하늘나라의 주인님께 만세!"
"그래..."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내 귓바퀴 근처가 간지럽다. 그 곳에 기생하는 은방울 꽃이 깨어난 것이다.
"제길... 한 번만 더 얌전히 안있으면 니 녀석을 떼어내버릴테다."
"죄송해요.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부끄러운거죠? 마치 돌팔매를 당해 온몸에 멍이든 화냥녀가 된 기분이에요."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래 벌거벗은 녀석이 새삼스럽군."
"아니에요. 오늘의 느낌은 조금 달라요... 또 이상한 걸 마셨군요."
"제발, 왼쪽 발이 염소인 신사 분을 만나 내 왼쪽 귓바퀴를 발로 걷어차달라고 하고 싶군."
"과거에는 모든 꽃에 이름이 있어라. 사랑받는 소녀여 모든 꽃에 이름이 있어라. 연인과 헤어져도 같은 꽃을 바라보면 같은 심사에 휘말리곤했지. 같은 꽃밭에 영혼이 공서하며, 피안화의 강을 건너면 꿈결처럼 한줄기 꽃이 되어있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름 없는 꽃이 많아라. 아무도 이름 있는 꽃에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네. 이제 망가지는 마천루를 목도하며 빈곤한 분노에 젖어드네. 망각만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라. 아마 이승은 지옥보다 더욱 망가져있을지니..."
나는 짐짓 놀라 은방울 꽃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나는 육안으로 은방울꽃의 봉우리를 적확하게 본 일이 없다. 은방울꽃이 나의 안면을 향해 자신의 봉우리를 아무리 기울여도 귓바퀴에 난 꽃이 나의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리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은방울꽃이 점점 자라고 있음으로 언젠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너 그 시는 직접 지은건가?"
"글쎄요... 꿈결에 들은 것 같기도 하네요."
"무슨 뜻인지는 알고 읊조리는 거지?"
"글쎄요... 아마 몹시 화가 난다는 의미겠죠."
"내 생각도 같네. 아 이제 오는군."
첫번째 봉우리의 정상에서 수많은 좌중은 죄인을 기다린다. 죄인은 10000개의 나무 계단을 오른 후 모래로 된 지면에 발을 디딘다.
죄인이 발을 디디자 모래는 투명한 비늘이 되어 하나하나 날카로운 날을 곧추세운다.
"날카로운 분노의 씨앗이다."
"아니다. 날카로운 쾌락의 씨앗이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저 자의 고통을 보라. 우리는 환희를 느끼고 함성을 지르고 죄인을 향해 야유를 날리면 그만이다."
'모든 형벌은 전생의 죄가 연원이 되리라.'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죄인은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모래였던 투명한 비늘들이 발바닥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발 속은 모조리 투명한 비늘들로 채워져있을 지경이었다. 비늘이 뼈를 대신하고 죄인은 파행을 계속한다.
"쓰러진다면 재밌을텐데."
어느 청중이 말하기 무섭게 죄인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죄인의 몸을 모래바닥은 삼키기 시작한다. 말그대로 삼켜버리는 것이다. 죄인의 몸 면면에 마구 파고들어 비늘이 된 모래가 죄인의 몸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리고 잠시 지표에 흥건했던 피도 모조리 삼켜져버렸다.
"뭐야 죽은거야?"
"지상 최악의 죄인이라며!"
"영혼을 끄집어내라! 화형시켜라!"
그 순간 모랫바닥 속에서 영혼이 튀어나왔다. 영혼은 도깨비불 같이 생기기도 사람 같이 생기기도 했다. 그것은 마구 줄달음을 쳤는데 결국 그 영혼이 향한 것은 악마의 호리병이었다.
"한심하군. 너는 도망치더라도 내게 붙잡히게 되어있지."
죄인의 뒤에 서있던 악마가 죄인이 죽은 자리에 염력으로 모래성을 쌓는다. 다 만들어진 모래성은 죄인의 형상과 같았다.
그리고 호리병을 열자 영혼은 모래성에 빨려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모래성은 투명한 비늘이 되었다가 사람의 살갖을 지니게 되었다.
"다시 걸어야한다."
악마의 말에 죄인은 다시 십자가를 끌고 앞으로 향한다.
그의 비명이 귀곡성처럼 하늘에 울려퍼진다.
"이것은 거짓 피와 살을 떼어 나누어준데에 대한 형벌."
옹졸한 거짓말 만큼의 모래가 살을 가득 메운다. 죄인은 거짓말 또한 하고 살았던 것이다.
나의 집은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아니, 사실은 담장만 그렇다. 그리고 사실 그 담장도 거의 완파되어 어느 정도의 흔적만 남아있다. 이 집은 내가 지옥에 오기 전부터 있었는지 지옥에 온 후에 지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집이 붉은 칠이 되어있는 옹졸한 집이며, 아무도 찾지 않는 숲의 변두리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이승에서 넘어온 마천루들과 함께 넘어온 집일지도 모른다. 전생의 내가 살았던 집인지 다른 사람이 살았던 집인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거주해오던 그런 관습이 있는 집이다.
나는 항상 지옥에도 '소유'라는 인습이 있어왔는지 그리고 현재에는 소유라는 인습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옥의 재화는 고통이다. 고통을 사기 위해 고통을 팔고, 고통을 엊기 위해 고통을 준다. 그런대 고통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도 느낄 수 없는데 줄곧 고통의 소유에 대해서는 어떤 작은 의구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인습이다. 그런데 지옥의 인습은 인습이 없는 것이다. 지옥은 철저한 순수의 세계로 모든 존재의 영혼만이 모인 곳이다. 그 지옥에서조차 소유라는 인습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레테를 생각할 때 그런 의구심을 더욱 느꼈다. 감정이 존재하고 그 감정이 기거하는 나의 영혼을 감정이 자꾸 충돌질 할 때, 나는 그녀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육신(사실 그녀의 육신 또한 이 곳에서는 영혼에 불과하다)을 손에 넣는 일이 과연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어느새 까마귀가 집 앞의 가지만 앙상한 식수 위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지겨운 일이군."
"저는 저 소리가 마음에 드는 걸요..."
"너를 뽑아버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너를 지금이라도 당장 뽑아서 내던지고 싶군."
"다시 잠들테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 와중에 시를 쓰고 계시는 군요. 또 그 마녀한테 써주는 사랑시인가요?"
은방울 꽃의 말소리를 막으려 오른손으로 그를 꽉 쥐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대가 사탄들의 무리 속에서 환희에 젖어 삶의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대가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마녀이건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 죽어 다시 태어난 마녀이건 내겐 상관이 없소. 사실 나는...'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정절이나 정조라는 단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한 여인이 결혼을 하기 전에 정절을 빼앗기면 영혼의 크기가 반토막 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빼앗기면 그 반이 된다. 이 셈법은 계속되어 영혼이 전소할 때까지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 여인에게서 나오는 아이는 영혼이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삶을 살면서 여러 혼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 중 어미의 것은 없다. 그렇게 아이의 혼은 자연이 어미가 된다. 사실은 말이 자연이지 아이의 몸에 엉겨붙는 귀신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이 세계에서는 정절을 지키지 않아도 영혼에 아무런 손상이 가해지지 않는다. 일단 이승의 여인이 정절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영혼의 분열을 다시 말해보자. 정절을 지키지 않아 파괴된 반쪽짜리 영혼은 어디로 갈까? 지옥이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영향을 받는다. 육체는 정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에 육체는 영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는 너무도 복잡하여 뭐라 말 할 수 없다. 정신 또한 영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영혼은 육체에 의탁되어 있을 때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 오면 영혼만이 남게된다. 영혼은 독자적인 정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의 정신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다.
영혼이야말로 자아이기 때문이다.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다. 그런데 진정한 자신은 죽은 이후의 세계에서만 이성과 육체에 의해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성과 육체에 의해 붕괴될 대로 붕괴된 것이 지옥으로 온다는 점이다. 과연 몸과 정신에 해로우면서 영혼에게 만큼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또 오는 군 그 멍청한 쓰레기 녀석"
"파우스트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 멍청한 연금술사.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군."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야 틀림없어. 그 인간은 고통 없이 고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하고 다니지. 사실 태만만이 그의 유일한 과업이야. 열렬히 태만할 수 있는 건 그 녀석 뿐이랄까..."
"하지만 엔트님도 그러신걸요."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게."
파우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파우스트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구유에 입을 쳐박다가 왔더니 몸이 찌뿌둥하군."
"거만한 돼지 같으니라고..."
파우스트는 육중한 몸을 흔들의자에 뉘이며 말했다.
"돼지라... 그래 내가 돼지인 것은 맞지. 엄연한 돼지의 영혼이니까."
"자네 같은 돼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군."
"내 사업만 성공하면 자네에게 하루에 2전 이상의 고통을 주도록하지. 양질의 것으로 말이야."
"고통은 금과 같은 것이어서 실제로 불쾌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절대 엊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자네는 절대 내 말을 듣지 않는군."
"어떤 점에서 금과 같다는 것이지?"
돼지는 흥미를 느낀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바로 자연상태에서만 나온다는 것이지."
"그럼 그 자연이란게 무엇인가?"
또 지리한 선문답이 시작될 것이 두려워진 나는 파우스트를 한번 물끄러미 쳐다본 후 뒤돌아섰다.
"나를 시기하는 눈빛이구만."
그저 창문 밖을 바라본다.
"자네도 그깟 유리창이나 깨부수는 바보같은 짖은 그만두고 나처럼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게나. 자네 같은 경우도 특이한 영혼을 지녔기에 나무의 형태를 하고 지옥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자고로 특별한 영혼이라면 반드시 자신만의 생산적인 활동을 즐겨야하는 법. 그것은 비단 고통을 위한 것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하는 것이어도 좋지. 나 같은 경우에도 사실 즐거움을 엊기 위해 고통을 만들려고 하는 거라네. 오늘도 하늘의 눈을 계속 바라보다가 그 방정맞은 추임새에 취해 그만 눈알이 핑 돌뻔 했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양립할 수 없는 두 우주를 머릿 속에 그려넣고 두 우주가 부딪혀 산산히 조각나버리는 상상을 한다네. 그것은 두 구슬이 부딪혀 부서지는 것과 같지. 그런 재밌는 상상을 눈을 감고 하다보면 어느새 구유에는 음식이 들어와있네. 그러면 그것을 먹고 나서 잠을 자는 거야. 암실의 문이 열리는 날이면 또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네를 보러오기도 하는 것일세."
나는 그 암실이라는 존재가 퍽 신경쓰였다. 그리고 파우스트에게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암실에 누가 음식을 넣어주는 거지?"
"글쎄 내가 알 수 없는 때에 알 수 없는 자가 넣어준다네."
"이해를 할 수 없군. 자네는 암실에 꼭 돌아가야만 하나?"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나는 파우스트의 정체가 언제나 궁금했다. 그의 이름은 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파우스트 박사와 같았지만 그 멍청함과 지리멸렬함으로 미루어보아. 실제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저 파우스트 박사를 좋아하는 파우스트로 변장한 악마에게 속은 학생보다도 못한 머저리였음이 틀림없다.
"전생에 자네는 무엇을 했나?"
"나 말인가?"
그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신의 아들일세."
"그깟 천칭으로 이 세계를 더럽히지 말게. 독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가? 신의 아들이란 말은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야."
"독신자라... 재밌군. 독신... 신을 모독하는 일... 흐흐흐."
돼지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실은 나는 전생에 파우스트 박사였네."
"그래서 자네의 이름이 파우스트였던 건가?"
"그런 셈이지."
"실제의 자네는 어떤가? 악마와 계약을 했는가?"
돼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했네."
사실 나는 파우스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전생의 나 또한 파우스트였다는 말이네."
"그런데, 자네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쪽의 사람아니었나."
"그래, 나는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네."
"어떻게 그 세계의 기억을 다시 찾은 거지?"
"글쎄... 기억이란 것이 보통 잊어버리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모르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건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직접 물어봤다할까?"
파우스트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해바라기처럼 그의 새카만 홍채는 신기한 문양을 하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인지 이해가 안되는군. 자네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아가서 물어볼 용기가 있다고? 제발 허풍떨지말고 진실을 말하게. 자네가 파우스트 박사가 아닌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어. 솔직하게 말할까? 자네는 돼지 썩은내가 진동하는 구유통 같은 존재일 뿐이야. 자네는 그저 움직이는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네. 파우스트박사? 자네가 파우스트라면 나는 명왕성에 사는 파란 혜성같은 영혼 일게 틀림이 없네. 내가 지옥 가운데에 있는 영혼의 불구덩이 속에 빠져도 나는 명왕성에 있는 거라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아주 재밌는 말이군."
피우스트의 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의 노여움을 삭히느라 마음 속으로 커다란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네는 내가 여기에도 있고 명왕성에도 있고 그렇게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건 재밌는 일이군."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미 나에게서 분열되어 나온 영혼이 설령 명왕성에 산다고 해도, 그리고 그 영혼이 혜성처럼 꼬리를 가진 불길이고 파란색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건 내가 아니야."
"그렇게 말한다면 자네야말로 속 편한 인간... 아니 영혼이라 할 수 있겠군. 나의 경우는 영혼이 반파되어 지옥으로 씻겨져 나온 고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이 말은 조금 흥미가 동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영혼은 영혼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나는 자네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글쎄...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갑자기 파우스트는 일어서서 집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실의 세계에서도 고통은 주화로 쓰이는가?"
"쓰이지 않지."
"그런데 유독 영혼의 고통은 어딘가에 담을 수도 있고 소유할 수도 있지."
"글쎄... 소유라는 말은 조금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럼 자네의 생각에 육체와 정신의 고통이 분리 되어있듯 영혼의 고통도 분리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가?"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네."
"거짓말!"
돼지의 두 눈은 갑자기 충혈되었다. 그는 두 팔을 땅으로 활짝펴며 소리쳤다.
"자네는 그 사실을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 분명해."
"그래도 나름 간음하는 여자가 육체와 정신이 황홀경에 있을 때에 영혼이 부둣가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처럼 망가져 지옥으로 끌려들어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네."
"자네는 생각보다 상당한 이론가였군."
파우스트는 조금 화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만 나는 실례하겠네. 나의 외로된 사업을 즐기러 가야하거든. 아무쪼록 자네도 자네 적성에 맞는 사업을 찾길 바라네."
피우스트에게는 아직 내가 시를 짓는다는 얘기를 한 일이 없다.
"그래, 잘가게 친우여."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나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시를 지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방안을 맴돌기 시작한다. 나의 집 문의 주석으로 되있는 문고리를 잡자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시죠?"
나는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보았다. 거기에는 파우스트와 사탄이 있었다.
"자네는 진실의 나무를 믿는가?"
"그게 도대체..."
"정말 멍청하군.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일반화 된 교리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파우스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당부하겠네. 내가 오늘 이 곳에서 자네를 붙잡은 이유는 자네가 지금 대단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당부하려는 것일세. 자네가 최근에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보게나. 자네는 자네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어. 나도 자네 같은 때가 있었지. 코흘리개 주제에 삼라만상의 지혜를 다 안다는 식으로 잰채를 하던 시절 말이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요?"
"자네는 잠시 나를 따라와야겠군."
그 때 문 틈 사이로 악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악마는 날개를 펴고 쏜살같이 날아와 나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네는 파우스트의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옥에도 죄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나는 순간 이지적 충격을 받아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이승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지옥에서 고통받는 자들은 많았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죄를 저지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지옥에서도 이승의 일 이외에 것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지옥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 같지만 지옥에 대해서 나 또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죄는 무엇입니까?"
"자네가 왜 기억을 잃었는지 대충 알 것 같군."
악마는 날개를 접고 한숨을 쉬었다.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은 재밌는 것이지... 어떤 자는 그것을 잊으려 노력하고 어떤 자는 그것을 다시 엊으려 노력한다."
악마는 파우스트의 목덜미를 잡았다. 파우스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허공에서 졸도했다.
"죽은 겁니까?"
"만약 영혼의 감각과 이성을 지니지 못한 상태를 죽은 것이라 하면 나도 알 수 없는 것이지. 하지만 영혼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
악마가 발로 파우스트의 배를 차자 파우스트는 다시 일어났다.
"이제부터 죄인 파우스트에 대한 심판을 시작한다. 목도하는 자는 엔트..."
파우스트를 적당한 자리에 세워두고 악마는 나를 집에서 끄집어냈다.
"나무 인간을 십자가 삼아 돼지를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어르신."
파우스트는 악마의 발에 이마를 대고 흐느꼈다.
"그러면 자네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저는..."
"그리고 어차피 자네의 사체 또한 살아있는 영혼일세. 그저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네. 그건 나도 확답을 줄 수는 없는 부분이고, 그저 영원히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자네의 원초적 두려움은 자네가 육체를 가질 때의 기억을 이 곳까지 옮겨와서 생각을 해서 그렇다네. 사실 자네가 너무 두려워 할 건 없어."
악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파우스트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악마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래, 그럼 자네의 친구에게 물어볼까?"
악마는 나의 팔로서 쓰이는 가지를 오른손으로 비틀며 말했다. 고통이 느껴진다.
"자네는 친구를 위해 고통을 참을 수 있는가? 자네가 노력하면 이 친구를 구할 수 있네."
"그게 어떤 노력이지요?"
"글쎄... 어떤 노력일까?"
악마는 자신의 필요에 대해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 방편을 떠올리는 소비자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악마는 재밌는 이야기를 원한다. 악마는 재밌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원해.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직접 겪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어야한다. 악마를 즐겁게 할 이야기를 가져오도록... 파우스트, 이 친구가 자네를 도와준다했으니 만일 자네가 이야기를 못구해온다면 이 친구도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야."
"저도 도와야하는 겁니까?".
"그건 자네의 자유지. 이 자유로운 지옥에서 죄를 짓는 쓰레기가 탄생하다니 파우스트 넌 정말 훌륭한 돼지야. 네 주인이 안다면 너의 구유에 들어가는 음식이 반으로 줄어들겠군."
파우스트는 땅에 배를 깔고 미친듯이 몸을 떨어댔다. 그의 소지 위에 악마의 황금 편자가 짓밟았다.
"아아아악!"
"영혼의 반향이군! 아주 재밌어! 이 발굽 안에 자네의 고통이 들어갈 걸세! 마치 천국의 맛이겠군 그래!"
내게 하나의 궁금증이 일었다.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혼이라면 고통도 영혼인 것인가? 하지만 불꽃처럼 인 생각은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쓰잘데기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말 편자의 위에는 피까지 번지고 있었다. 말 편자는 파우스트의 이빨을 으깨고 살집을 파고들었다.
지옥에도 플라타나스 나무가 우거진 지대가 있다. 사실 우거졌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고, 진창과 그 사이사이의 커다란 조약돌들로 만들어진 인도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플라타나스들이 있는 장소가 있다. 인도를 중심으로 플라타나스 너머엔 꼬마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꼬마 건물들은 키가 플라타나스 만큼 크다. 꼬마 건물들은 모두 2층짜리 건물이다. 모두 못생기고 빈약한 회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그 중 단 하나도 같은 형체를 한 건물은 없었다. 문의 위치나 창문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플라타나스는 잎이 없다. 그리고 가지의 끝단이 모조리 잘려나가 있었다. 껍질이 선인장 가시처럼 일어나 하얀 속살을 드문드문 드러내고 있었다.
한 소녀가 밀짚바구니를 들고 뛰어다닌다. 꼬마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하늘은 회색 종이로 된 천막, 플라타나스와 건물들이 천막을 떠받치고 있지! 회색 하늘에 커다란 고양이가 발톱을 갈면 보푸라기가 떨어진다네. 찬 보푸라기가 쌓이고 녹는 와중에 여러 생각이 들지. 왜 천막은 녹아 없어지지 않을까. 아참! 천막이 녹으면 비가 내린다네. 오늘같은 폭풍우가 내리는 날에 나는 생각했네 천막은 바람에 녹아내리는 것이라고..."
"아... 걱정이 태산이야. 이렇게 비가 내려서야..."
"자넨 그걸 걱정하고 있나? 나는 체벌이 걱정이라네.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지옥에서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다니! 더군다나 나의 잘못도 아닌 멋대가리 없는 돼지의 잘못을 내가 떠안게 되었네."
"너무 그러지는 말게. 자네에겐 아무 일도 없을테니."
나는 당나귀와 함께 인도 옆으로 난 넓은 도로로 말 없는 마차를 타고 달렸다.
"저 소녀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있군."
"그러게 말이야. 축축하고 눅눅한 옷을 입고 마른자리에 가면 심각한 이질감과 살끝에서 에리는 약간의 간지러움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
"나에 비하면 자네의 간지러움은 아무것도 아닐 걸 내 귓바퀴에 달린 이 놈도 나름대로의 생장이란 걸 한단 말일세. 그럼 이 기생충 같은 놈의 뿌리가 내 몸속의 혈류를 침범하는 기분을 받는 날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 그런데 꼭 비가 오는 날에는 그 기분이 더욱 심각해지는 거야. 나는 진심으로 이 녀석을 떼어내고 싶은 심정이네."
"마치 자네의 업처럼?"
"글쎄 그건 나의 업이 아니라니까. 파우스트 녀석 얼굴이 뭉개진채로 우리 집앞에서 한나절 기절해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더군 그 후로 얼마간 연락이 없어서 내가 혼자 이야기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 거네."
"그래서 온 곳이 마녀들이 사는 이 마을인가?"
"그래, 마녀라면 어떤 즐거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라. 사탄이 마음에 들어할만한 그런 이야기를..."
"자네가 저주 만나는 마녀의 집에는 갈텐가?"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라네. 하지만 그녀가 아니면 나를 도울 마녀가 없어. 나는 마녀와 악마들의 연회에 한 번도 참석한 적도 없고, 따로 얼고 지내는 마녀도 없지. 사실 이번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온 곳일세."
"그녀의 집이 어디인지 아나?"
"레테의 집은 검은 흑요석의 벽으로 만들어진 집이네. 금으로 된 빗장을 가진 나무 문과 유리창은 모두 속이 비치는 얇은 천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지. 집 앞에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자라고 그 위에 하늘의 눈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다람쥐가 한마리 앉아 있다네."
"그런 집이라... 그래서 어디 있는 집을 말하는 거지?"
"그건 나도 알 수가 없네."
"자네는 전에 이 곳에 와본 적이 없는가?"
"사실 그렇네."
당나귀는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본다.
"이 넓은 마을에서 어떻게 그 집 하나를 찾나?"
"그거야..."
"그나저나 삭막한 동네로군."
힌 무리의 마녀가 길 모퉁이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각각의 마녀들의 옆에는 피붙이 어린 아이들이 마녀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이번 게임에서는 내가 이겼어!"
"아니야! 내가 이겼어 분명 주사위 숫자가 적게 나온 쪽이 이기는 거라 했잖아!"
"아니야 2개의 주사위 중 하나라도 가장 적은 수가 나온 쪽이 이기는 거랬어."
"2개를 합해서야!"
마녀 둘이 열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당나귀는 그녀들의 옆에 마차를 세우고 내려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고결한 마녀 여러분! 저는 술집을 운영하는 당나귀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성원 덕분에 잊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뜨내기 장사꾼이지요. 미천한 제가 감히 무엇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당나귀는 마치 광대라도 된 양 작위적인 웃음을 하고 몸을 베베꼬면서 마녀들에게 아양을 떨었다.
"정말 짜증나는걸?"
"그럼 우리 이 당나귀를 경품으로 하도록 할까?"
"그래, 꼭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도박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이것 하나만 확실히 하면 좋겠어. 만약 내게 이 당나귀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 당나귀의 갈퀴를 황금으로 만들거야."
"나는 이 당나귀의 눈을 뽑아서 다이아몬드로 채울 거야. 그리고 그 안에 그의 눈이 사라진 슬픔을 집어넣을거야."
"나는 이 당나귀의 발굽에 황금 편자를 박을 거야. 그리고 당나귀 위에는 가장 무거운 안장을 얹어야지. 그리고 매일 같이 당나귀를 타고 박차를 가할거야. 그러면 언젠가는 말처럼 빨라지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나귀는 잠시 몸이 굳었다가, 바로 마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빨리 도망치자!"
말 없는 마차는 주인의 말에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빨리! 더 빨리!"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마차는 어느새 마을의 도로변을 지나 숲 속의 진창을 달리고 있었다. 숲 속을 열심히 달리자 한 채의 오두막집이 나왔다.
"정말이지 무섭군... 자네도 조심하게. 우리 같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화한 영혼들도 마녀 앞에선 한 낱 물건에 지나지 않아."
"레테는 상냥한 마녀였던 것이군."
"그건 그녀가 젊은 마녀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네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서 일지도 모르지."
"그녀의 마음에 들어? 자넨 방금 마녀들이 하는 짖을 못봤나? 마녀들은 마치 어린아이 같아..."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바이네. 그녀들은 비극과 희극을 분간하는 능력이 없지. 그녀들은 분별력 없는 푸줏간의 주인이야. 나중에는 자신의 살마저 끊어서 팔 영혼들이라고."
"어찌됐건 살아남았으면 된 거 아닌가? 이 오두막집 주인에 대고 한 번 물어보자고."
문을 두드리자 빗장이 저절로 튕겨져 나왔다. 나와 당나귀는 빗장을 피하느라 문 앞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
안에서는 작고 젊은 돼지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그 안에는 여러 식생이 사는 정글과 같았다. 집의 나무 바닥을 뚫고 여러 식물들이 집을 빼곡히 메운 것이다.
"10년 전에 작고하신 주인님 이후로 처음 보는 움직이는 영혼들이군요. 여러분 같이 춥고 가녀린 영혼들에게는 양송이 스프 정도가 필요하겠죠? 안그런가요?"
키가 50센티 남짓 되어 보이는, 두 발로 걷는 그 돼지는 식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그 보다 배는 큰 당나귀와, 그 보다도 큰 나는 나무 사이에 끼거나 덩쿨에 몸을 베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나무들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알게 뭔가. 어쩌다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건지."
"그래도 저 돼지는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자기 주인이 죽었다는 걸 보면... 그런데 어떻게 영혼이 죽을 수 있는거지?"
"아마 죽은 게 아니고 저 망측한 돼지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친 모양이지."
"나도 자네의 생각과 같네."
"어서 오세요!"
정글지대를 벗어나자 작은 나무 탁자가 하나 놓여있는 작은 공터가 나왔다. 나무 탁자 위에는 햇볕 같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너무도 작위적인 느낌이 나는 그 빛은 마치 위에서 조명으로 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면 광원은 없었다. 먼지 같은 어둠이 가득한 심연 뿐이었다.
나무 탁자에 준비된 의자에 돼지가 앉는다.
"앉으세요. 제 의자 외에도 3개의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 곳은 제 주인님의 자리였군요."
돼지가 측은하게 빈 의자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손님이 오셨으니 주인님을 데려와야겠군요."
돼지는 별안간 테이블 옆에 놓인 보물상자에서 해골이 된 시체 한 구를 꺼낸다.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테이블로 돌아와 자신의 옆 자리에 앉힌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모양이군..."
당나귀가 말했다.
"정말로 해골이 되어버린 건가? 움직일 수는 없는 거고?"
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런 모습에 커다란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옥에서 하루 종일 고문을 당하는 죄인들은 머리가 잘려나가도, 다음 날이면 다시 멀쩡하게 온전한 몸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건 말도 안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내가 소리치자 당나귀가 나의 볼기짝을 치며 말했다.
"자네가 맞을 수도 있어. 돼지가 뭔가 장난감을 가지고 우릴 놀리는게 맞을 것이네. 그러니 진정하고 일단 앉게."
"하... 그래. 맞아 레테! 돼지야. 혹시 레테의 집이 어디있는지 알고있니?"
"레테라면 그 어린 마녀를 말하는 모양이군요. 글쎄요. 그 여자의 집은 제가 가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자네의 주인이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서나 들을 수 없겠나?"
당나귀는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돼지에게 물었다. 그의 음흉한 어조 속에는 그의 괴팍한 욕구가 녹아들어있는 듯 했다.
"주인님의 죽음을 말하는 거군요. 아니 이걸 죽음이라 불러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솔직히 주인님의 지금 상태에 대해서 뭐라 형언하기도 어렵네요. 이 상태는 도무지... 어찌됐건 주인님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그래,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나 말하라고!"
"그건... 아 잠시만요 손님이 온 것 같네요."
돼지는 황급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제기랄 우리도 도망쳐야돼!"
"그게 무슨 말이지?"
"마녀들이 우릴 쫓아온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돼지가 나간 반대편길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자 나무들이 서로를 끌어 안으며 나무 우리를 만들어냈다.
"큰일났군. 누군가가 우릴 못도망치게 나무들을 묶어버렸어"
"마치 갈대밭을 헤쳐나가는 개처럼 나무들을 구부릴 수만 있다면..."
"우린 독안에 든 쥐인 걸세! 젠장... 여길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하기사 자네도 술을 만들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으니 대접을 받아온 거지. 여기서는 자네의 그런 노고를 알 턱이 없으니. 자네도 파우스트 같은 신세가 되겠구만."
"파우스트 같은 신세라면... 무슨 뜻이지?"
"누군가의 가축이 될거란 말일세!"
"자네는 벌목을 당하거나 장식품을 만드는 데에 쓰이고 말거야!"
"자네는 푸줏간에서 온 몸이 해체될 걸?"
"설마 마녀들은 육식을 하나?"
"그건 나도 모르지...
"세상에 나는 어쩌면 좋아!"
당나귀는 미친듯이 원형 우리를 쏘다녔다. 그의 침과 눈물 그리고 오줌이 이 나무 저 나무에 흩뿌려졌다.
"엔트..."
이 목소리는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오 레테여..."
"레테라면 그 마녀 아닌가?"
"주인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주인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우리의 한 켠에 길이 나있었고, 그 곳에는 레테와 작은 돼지가 함께 있었다.
"주인님 저의 불찰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작은 돼지는 미친듯이 떨며 중얼거렸다.
"왜 저를 찾으신거죠?"
레테가 해골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발로 차며 말했다.
"안돼! 주인님!"
돼지는 미친듯이 달려가 해골을 부둥켜 안았다.
"혹시 제게 들려줄 모욕적인 언사라도 준비하신 건가요?"
"그래, 너에게 충분히 욕설을 퍼부어주지. 그 전에 레테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글쎄요... 일단 말해보세요."
레테는 방금 전까지 해골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상한 얘기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이야기를 찾고 있어. 악마도 홀릴 만큼 신선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레테 자네는 혹시 악마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바가 없는가?"
"글쎄요. 소마주를 진탕 마시고 소와 말의 형상을 불러와 그 위에서 성희를 즐기는 사탄과 마녀의 이야기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요? 이야기라... 애초에 이야기라는 건 뭘 말하는 거죠?"
"그게..."
갑자기 은방울 꽃이 일어나 말했다.
"지금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것 만큼 한심한 일은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레테 당신을 쭉 지켜봤는데 마음에 안 드는 구석 뿐이에요. 이야기라면 뭔가 영혼 사이의 교감을 담은 이야기를 해야지 뭐라고요? 성희를 하는 이야기를 해준다고요? 누가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죠?"
"이 멍청한 은방울꽃아 조용히해! 악마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라면 레테가 생각하는 이야기가 맞을 거야."
레테는 의미심장한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쉽지만 악마의 취향은 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그저 어젯밤 방탕하게 취하고 함부로 영혼의 표면을 (어쩌면 영혼으로 구성된 육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부글부글 끓는 포도주 속에 담고, 화톳불 위에 얹은 항아리 속 포도주를 바로 그 속에서 마시며 포주 노릇을 하는 악마의 주문을 기다리는 일 만이 제 삶의 낙이죠. 그리고 가끔 저를 탕녀라고 놀려대는 당신 집에 가서 당신의 음담패설을 듣는 것도 제 낙이에요. 그런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말도 안되는 얘기죠."
레테의 말이 끝나자 당나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저 당신의 아름다움의 찌꺼기라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 찌꺼기 마저도 임자가 있다니."
나는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은방울 꽃이 말했다.
"저 여자는 기분 나쁘군요. 엔트님..."
"어찌됐건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이 마을에서 소마주에 절은 채 밖을 쏘다니는 마녀들은 자신보다 약한 영혼을 보면 영혼을 마구 부셔버리니까요. 영혼의 육체라고해서 영생을 누리리란 보장은 없지요. 저도 지금까지 죽는 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요."
"그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지?"
"보장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레테는 돼지가 끌어안은 해골을 보며 말했다.
"저걸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마녀 조차 이 세상의 특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 것인가? 나는 다시금 거울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나의 침울한 표정을 보며 레테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런 표정도 재미있군요. 저는 이만 가보겠어요. 다음에 만나면 절 모독하고 호도할 발언들을 마구 준비해 놓으라고요."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사랑했던 소녀여
나는 지금 그대에게 편지를 써요. 사실 그대에게 붙이지 않을 편지이며 제 진심에 대한 간증일 뿐인걸요. 하지만 이것은 그대의 영혼에 보내는 편지에요.
사랑했던 소녀여 우린 같은 교정에서 만났지요. 그대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겠지만, 저는 너무도 깊이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의 작은 호의에도 너무도 순수한 진의를 발견하던 나였기에... 아니 죄송해요. 당신의 의도보다 제가 훨씬 앞서나간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소녀여
점차 불안의 황망함과 그 안에 부는 시원한 나선의 바람이 나를 휘감는다오. 그대를 생각하면 뜨거운 피가 샘솟는 와중에도 피부결을 따라 찬 공기가 일고, 그 바람의 물살을 따라 전율이 일어나는 것이오. 그대와 내가 사랑을 하게 된 지 벌써 10년이나 되었소.내일도 편지를 쓸테요. 내 사랑이여.」
이도한 유튜브 가기: https://youtu.be/RU9Nt5b6IG4
지금은 예전같은 필력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 소설의 완결을 내년까지 내볼 계획입니다.
하지만 다시 우울해지면 연재를 중단할 계획입니다. 과거에 썻던 분량을 갤러리에 공개합니다. 유튜브 링크는 글 말미에 놓겠습니다.
시멘트 집에 사는 엔트에게 정을 통할 마녀가 찾아온다
엔트와 마녀
어렸을 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꺼내려 거울을 부셔버린 적이 있다. 거울 속의 나를 꺼내고 무한히 뻦은 저 안 속의 평형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안은 무소음의 세계였고 공해나 감관의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저 매끈한 판넬 위에 그림자처럼 미끄러저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사람의 형상이 그 세계의 저편에 준비되어 있다가 미친듯이 달려와 그 사람이 선 장소를 비추는 영역에 태연히 들어온다. 그러고선 바보같은 연극을 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거울 속 나를 탈출 시키기만 한다면, 더 이상 멸시 당하는 잡종의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좋다. 우선 너 스스로가 나를 멸시하고 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는 도저히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다가 저 안의 아무 생각도 없는 그리고 하루 약 1시간의 '모사'의무만 다하면 되는 저 형상에 눈이 가게 된 것이다.
나는 먼저 거울을 깨고 그 안의 형상을 흠씬 두드려 패주려 했다. 그리고 그에게 진공 세계의 규율이 아닌 이 진짜 세계의 규율을 설파한 후 내가 거울 파편이 남겨놓은 진공세계의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것은 이론상 관짝의 문을 열면 사체가 나오는 정도의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내가 거울을 깨부순 즉시 거울의 세계는 파괴되었고 수많은 세계들로 와해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들어가려 한 저 세상이 이 세계의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자하는 열망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연구 중이며 언젠가는 꼭 거울 속에 들어가고 말리라!
한 머저리 시인은 거울 속의 자신과 악수를 하지 못한다고 한탄해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우선 자신이 아닐 뿐더러 악수를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우선 자신이 아닌 자와 악수를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해야할 것이 있다. 그 인간을 거울로부터 꺼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이룩할 수 있다.
태만
태만과 권태
태만과 권태
태만과 권태
그런데 그런 상념마저 없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그래 꼭 그 거울일 필요는 없었다. 다른 거울을 찾아보자!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강한 감정을 이 작은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원망스럽도다. 내게 작은 그대의 몸을 안기란 너무도 쉬운 일일텐데. 그대의 무거운 마음을 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내 내 마음 이 작은 몸으로 이 강한 외로움을 견디기가 가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만다. 파란처럼 부서지는 머릿속 난파선을 보라 아니 볼 수 없다. 머릿속에는 눈이 없다. 이내 부서진 파편이 머릿 속을 찌르고 욱신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난파선 속에는 보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물을 엊기 위해 머릿속에 들어가 줄 작은 난쟁이는 구하지 못했다.'
난파선이란 허무를 말하는 것인 모양이다.
나무 위에 담쟁이 덩굴이 타고 오르고 그 위에 잔뜩 이끼가 끼어있다. 위에서 보면 바퀴의 회전축처럼 정원의 중앙에는 나무가 서있고
길은 하늘로 솟구치는 나무와 같다
길은 땅을 흐르는 강과 같다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을 저질렀다."
처형인이 상아 같은 은빛 검을 든채 벌거벚은 육신 앞에 서있다. 이 자는 영혼 뿐만 아닌 육신이 함께 지옥에 끄달려온 것이다.
"그대의 영혼은 줄달음 칠 것이며, 육신은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지옥의 밤이 오기 전에 지옥의 하늘에는 일식 중의 태양과 같은 검은 눈동자가 떠있다. 그 검은 눈동자의 홍채 속에는 모든 지옥에서의 일들이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지옥에도 이젠 마천루가 있다. 그러나 악마들의 취향에 맞게 반파되어 땅에 아무렇게나 사선으로 꽂혀있다.
몇몇은 불타 총석정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미이라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심미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들이 괴상한 건물들을 쌓아올리고 부수니까 지옥에 괴기망측한 흉가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죄인은 얼굴을 들고 처형인에게 질문한다.
"나의 죄는 무엇인가?"
"죄라..."
처형인은 지상의 황혼녘과 같은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하늘을 바라본다. 그 중앙엔 검은 자위가 떠있다. 불의 구름이 날아다니며 구름을 사냥하고 있다. 구름은 비명을 지르며 연무를 흩뿌리며 증발해버린다.
"너의 전생에 대해서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뭐라 말할 방법이 없다."
처형인은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너의 죄가 '가장 악독한'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명심해라. 이제껏 단 한명의 사람만이 그 죄를 입고 이 땅에 발을 디뎠다."
하늘의 검은 자위는 동공을 키우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볼 수 있다니."
"저런 악독한 쓰레기는 죽어 마땅해요."
좌중은 이곳 저곳에서 죄인을 비난하고 있었다.
거인 둘이 죄인의 헐벗고 망가진 육신에 불타는 십자가를 던진다. 죄인은 미친듯이 발버둥치며 십자가로부터 벗어나온다. 이미 몸에는 화마의 흔적이 선명이 새겨져있다.
"자, 이 불의 채찍을 주마. 이 불의 채찍으로 십자가를 동여매고 끌면 훨씬 나을거야."
처형인은 자기 허리 춤에 차여진 마대자루에 들어있던 불의 고리로 만든 채찍을 죄인에게 쥐어준다.
"내가 이것을 동여매고 끌면 되는 것인가?"
"그래."
죄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십자가와 채찍을 연결했다. 그러고는 오른쪽 어깨에 들춰맸다.
"아 그리고 몸 조심하길 바란다."
처형인과 죄인의 얼굴이 마주한다. 죄인의 동공은 숨 쉴틈도 없이 커져있었다.
"그대의 죽음 뒤에 놓인 것은 '무'다"
"지옥에서도 죽는단 말인가?"
"영혼이 죽으면 다신 살아나지 못해. 이 곳에 화한 너는 지금 육신과 영혼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조만간 영혼만 남게 될 것이고 결국엔..."
죄인은 불의 채찍이 가하는 어깨 위의 고통도 잊고 처형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형벌의 집행을 맡았다는 건 너의 존재는 말소 된다는 의미이다. 저 심연의 아귀와 같은 눈망울 속에 빨려들어갈 수도 있지. 아니면 지옥 테두리에 있는 파도가 일지 않는 망각의 바다 속에 들어갈지도 몰라. 영혼이 죽는다는 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죄인에 대해 흥미가 떨어진 나는 나의 작은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곳에는 마녀 레테가 있었다.
은발 머리에 가녀린 몸을 가진 갓 성인이된 젊은 흰 핏덩이를 지닌 그녀. 피부는 옥처럼 맑아 안으로 푸른 혈관이 비춰진다. 눈썹이 짙고 눈이 큰 말괄량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의 올라간 입꼬리, 옴팡진 가슴...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야에 놓인 종이 거룻배를 보고 있었어요."
종잇장은 물에 젖어 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재밌군."
"물 속을 바라보는 건 정말 재밌어요. 여러 공상을 하게 만들죠."
"어떤 공상이지?"
"물 속을 거닐다보면 나는 숨을 쉬고 싶다네 아가미를 달고 해저의 저변을 멤도는 모습. 망각의 강 속을 헤엄치다가 나는 이 곳에 왔네.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기억 없는 그 세계로."
"아름다운 시군. 자네는 매일 같은 성희와 마법의 향연이 만족스럽지는 않은가?"
아! 이승의 숙녀였더라면... 그녀가 이승의 숙녀였더라면ㅡ
"저는 이 거룻배를 보는 것이 좋아요."
"그건 이미 거룻배가 아니야. 젖은 종잇장일 뿐이지. 오늘은 누구를 상대하기로 되어있나?"
"그건 저의 맘이죠."
"그래, 내가 알 필요는 딱히 없을 거 같군."
"엔트님은 왜 이러시죠? 평소와 같지 않군요."
"뭐가 그렇다는 거지?"
"평소 같으면 지옥에 대한 온갖 멸시와 조롱의 언사로 저를 기쁘게 할텐데. 지금은 오히려 진중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저를 화나게 하고 있어요. 저의 시에도 온갖 더러운 비평을 쏟아넣고 시의 항로를 뒤바꾸어 놓을텐데."
"이를테면?"
"저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어서 빨리 가장 저속한 말들로 저의 시를 물들여주세요."
"귀찮군."
"그렇담 저도 오늘은 가야겠군요."
레테가 집을 나가려 하자. 나는 그녀의 머릿카락을 살짝 붙잡는다. 그녀의 머릿카락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불로 화하는 형벌이 있으라!"
소녀는 뒤를 돌아본다.
"오늘은 시가 떠오르지 않는군. 그래도... 잠시 나와 어울려주지 않겠나?"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아니 그녀는 마녀다.
"마녀를 흠모하다니 단단히 미쳤군."
술집의 당나귀는 나에게 검은 소마주를 내준다.
"소마 열매를 따다가 이 지하감옥 철창 속에 갖힌 멍청한 뚜쟁이들에게 주면, 이 멍청이들이 못이 산더미같이 박힌 나무통에서 발로 소마를 빻지. 그러면 땅바닥에 있는 홈으로 된 수로를 통해, 다음 방으로 그 과즙이 흐르는 거야. 그 방에서 멍청한 부자들이 빻아 만든 버찌와 포도즙과 만나고, 그 다음은 지하수로로 연결되어 거대한 항아리 속에 담기지. 항아리 아래에는 거대한 화로가 있는대 그 안의 불쏘시개들은 방화범이라네. 그리고 가끔 풀무질을 하는 일은 사탄이 직접 하고 있지."
"그렇담 자네는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르지. 이 세상에서 고통이야말로 최고의 주화이니. 고통을 모아 빵을 사고, 고통을 모아 집을 사고, 고통을 모아 술을 살 수 있으니! 그런데 풀무질을 하는 사탄이 그 고통을 죄다 받아간다네. 생각보다 누군가를 고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아 자네에게 줄 것이 있네."
"그 호리병에는 노란 고통이 들어있군."
당나귀는 노란색 호리병을 내게 건넨다.
"이건 내가 사탄씨에게 받은 거라네. 지상에서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아 자살을 택한 소녀의 것이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나?"
"명예살인을 하려는 여자친구의 오빠를 죽인 애인 때문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린 여인이지. 오필리아나 데스데모나와 같은 처지야."
"오필리아... 데스데모나..."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정신착란 아니겠는가? 그들의 삶 속에서 보면 고통이지만 이 술 속에 담그면..."
술 속에 고통의 연무가 흩뿌려진다. 연무는 가라앉아 술의 색을 흐린다.
"예술이 되지."
"예술이군 순일한 감정이 아닌 고통과 사랑이 섞인 감정."
"마셔보게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것을 애써 잊으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릴 때 그런 슬픔이 느껴진다. 격정적인 눈물을 흘릴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지고 몸이 나른해지며 정신이 피폐해져간다. 그렇게 고통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장을 태우는 듯 강하게 짓누르다가 숨 쉴틈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고통의 양감이 느껴진다. 고통의 커다랗고 보드라운 손이 느껴진다."
"자네는 모르긴 몰라도 전생에 시인이었을 거야. 자네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이 지옥에 떨어지고 사람의 형상이 아닌 엔트의 형상일리가 만무하지. 자네가 가끔 읊조리는 시의 수준이 호메로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야."
"시인은 지옥에서도 대접받는 모양이군."
"그래, 지옥에는 죄인들만 오지만 유독 대접받는 죄인들이 있지. 그리고... 그건 어떻게 된건가?"
"그거라니..."
"이번에 온 대역죄인 말일세."
"아 그 자 말인가? 십자가 형이 선고되었더군."
"십자가라... 하하. 아주 재밌는 친구로구만."
"결국 영혼은 소각시킬 예정이라 하네."
당나귀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영혼을 소각한다고? 전례가 있는 일인가?"
"자네가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알겠나?"
"하기사 나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알까..."
"그래, 자네가 가장 많이 아는 법이지."
"혹시 기분이 상한건가?"
당나귀는 약하게 웃으며 작게 말한다. 그의 표정이 얄궂게 느껴지나 미워할 수 없다. 약간의 동정을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미안하네."
"아니야. 자네, 이 고통의 호리병을 주겠네."
"그거 아나? 이 고통은 나의 고통과 형질이 같은 거 같아. 나의 고통을 추출해서 마시면 딱 이런 맛이겠구만."
"나는 마시지 않을 걸세. 자네같은 쭈글탱이 나무인간의 고통이라면 말이야."
나는 미친듯이 웃다가 당나귀의 손에서 고통이 담긴 호리병을 낚아챈다.
표정을 굳히며 그에게 말한다.
"어떤 고통이면 좋겠나?"
"일단 아무 고통이나 3닢 주게나."
나는 고통이 담긴 은화를 3닢 꺼내서 당나귀에게 준다.
"고통은 좋은 것이야."
"그렇고말고, 금권정치를 하시는 하늘나라의 주인님께 만세!"
"그래..."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내 귓바퀴 근처가 간지럽다. 그 곳에 기생하는 은방울 꽃이 깨어난 것이다.
"제길... 한 번만 더 얌전히 안있으면 니 녀석을 떼어내버릴테다."
"죄송해요.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부끄러운거죠? 마치 돌팔매를 당해 온몸에 멍이든 화냥녀가 된 기분이에요."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래 벌거벗은 녀석이 새삼스럽군."
"아니에요. 오늘의 느낌은 조금 달라요... 또 이상한 걸 마셨군요."
"제발, 왼쪽 발이 염소인 신사 분을 만나 내 왼쪽 귓바퀴를 발로 걷어차달라고 하고 싶군."
"과거에는 모든 꽃에 이름이 있어라. 사랑받는 소녀여 모든 꽃에 이름이 있어라. 연인과 헤어져도 같은 꽃을 바라보면 같은 심사에 휘말리곤했지. 같은 꽃밭에 영혼이 공서하며, 피안화의 강을 건너면 꿈결처럼 한줄기 꽃이 되어있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름 없는 꽃이 많아라. 아무도 이름 있는 꽃에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네. 이제 망가지는 마천루를 목도하며 빈곤한 분노에 젖어드네. 망각만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라. 아마 이승은 지옥보다 더욱 망가져있을지니..."
나는 짐짓 놀라 은방울 꽃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나는 육안으로 은방울꽃의 봉우리를 적확하게 본 일이 없다. 은방울꽃이 나의 안면을 향해 자신의 봉우리를 아무리 기울여도 귓바퀴에 난 꽃이 나의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리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은방울꽃이 점점 자라고 있음으로 언젠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너 그 시는 직접 지은건가?"
"글쎄요... 꿈결에 들은 것 같기도 하네요."
"무슨 뜻인지는 알고 읊조리는 거지?"
"글쎄요... 아마 몹시 화가 난다는 의미겠죠."
"내 생각도 같네. 아 이제 오는군."
첫번째 봉우리의 정상에서 수많은 좌중은 죄인을 기다린다. 죄인은 10000개의 나무 계단을 오른 후 모래로 된 지면에 발을 디딘다.
죄인이 발을 디디자 모래는 투명한 비늘이 되어 하나하나 날카로운 날을 곧추세운다.
"날카로운 분노의 씨앗이다."
"아니다. 날카로운 쾌락의 씨앗이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저 자의 고통을 보라. 우리는 환희를 느끼고 함성을 지르고 죄인을 향해 야유를 날리면 그만이다."
'모든 형벌은 전생의 죄가 연원이 되리라.'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죄인은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모래였던 투명한 비늘들이 발바닥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발 속은 모조리 투명한 비늘들로 채워져있을 지경이었다. 비늘이 뼈를 대신하고 죄인은 파행을 계속한다.
"쓰러진다면 재밌을텐데."
어느 청중이 말하기 무섭게 죄인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죄인의 몸을 모래바닥은 삼키기 시작한다. 말그대로 삼켜버리는 것이다. 죄인의 몸 면면에 마구 파고들어 비늘이 된 모래가 죄인의 몸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리고 잠시 지표에 흥건했던 피도 모조리 삼켜져버렸다.
"뭐야 죽은거야?"
"지상 최악의 죄인이라며!"
"영혼을 끄집어내라! 화형시켜라!"
그 순간 모랫바닥 속에서 영혼이 튀어나왔다. 영혼은 도깨비불 같이 생기기도 사람 같이 생기기도 했다. 그것은 마구 줄달음을 쳤는데 결국 그 영혼이 향한 것은 악마의 호리병이었다.
"한심하군. 너는 도망치더라도 내게 붙잡히게 되어있지."
죄인의 뒤에 서있던 악마가 죄인이 죽은 자리에 염력으로 모래성을 쌓는다. 다 만들어진 모래성은 죄인의 형상과 같았다.
그리고 호리병을 열자 영혼은 모래성에 빨려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모래성은 투명한 비늘이 되었다가 사람의 살갖을 지니게 되었다.
"다시 걸어야한다."
악마의 말에 죄인은 다시 십자가를 끌고 앞으로 향한다.
그의 비명이 귀곡성처럼 하늘에 울려퍼진다.
"이것은 거짓 피와 살을 떼어 나누어준데에 대한 형벌."
옹졸한 거짓말 만큼의 모래가 살을 가득 메운다. 죄인은 거짓말 또한 하고 살았던 것이다.
나의 집은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아니, 사실은 담장만 그렇다. 그리고 사실 그 담장도 거의 완파되어 어느 정도의 흔적만 남아있다. 이 집은 내가 지옥에 오기 전부터 있었는지 지옥에 온 후에 지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집이 붉은 칠이 되어있는 옹졸한 집이며, 아무도 찾지 않는 숲의 변두리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이승에서 넘어온 마천루들과 함께 넘어온 집일지도 모른다. 전생의 내가 살았던 집인지 다른 사람이 살았던 집인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거주해오던 그런 관습이 있는 집이다.
나는 항상 지옥에도 '소유'라는 인습이 있어왔는지 그리고 현재에는 소유라는 인습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옥의 재화는 고통이다. 고통을 사기 위해 고통을 팔고, 고통을 엊기 위해 고통을 준다. 그런대 고통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도 느낄 수 없는데 줄곧 고통의 소유에 대해서는 어떤 작은 의구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인습이다. 그런데 지옥의 인습은 인습이 없는 것이다. 지옥은 철저한 순수의 세계로 모든 존재의 영혼만이 모인 곳이다. 그 지옥에서조차 소유라는 인습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레테를 생각할 때 그런 의구심을 더욱 느꼈다. 감정이 존재하고 그 감정이 기거하는 나의 영혼을 감정이 자꾸 충돌질 할 때, 나는 그녀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육신(사실 그녀의 육신 또한 이 곳에서는 영혼에 불과하다)을 손에 넣는 일이 과연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어느새 까마귀가 집 앞의 가지만 앙상한 식수 위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지겨운 일이군."
"저는 저 소리가 마음에 드는 걸요..."
"너를 뽑아버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너를 지금이라도 당장 뽑아서 내던지고 싶군."
"다시 잠들테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 와중에 시를 쓰고 계시는 군요. 또 그 마녀한테 써주는 사랑시인가요?"
은방울 꽃의 말소리를 막으려 오른손으로 그를 꽉 쥐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대가 사탄들의 무리 속에서 환희에 젖어 삶의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대가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마녀이건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 죽어 다시 태어난 마녀이건 내겐 상관이 없소. 사실 나는...'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정절이나 정조라는 단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한 여인이 결혼을 하기 전에 정절을 빼앗기면 영혼의 크기가 반토막 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빼앗기면 그 반이 된다. 이 셈법은 계속되어 영혼이 전소할 때까지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 여인에게서 나오는 아이는 영혼이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삶을 살면서 여러 혼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 중 어미의 것은 없다. 그렇게 아이의 혼은 자연이 어미가 된다. 사실은 말이 자연이지 아이의 몸에 엉겨붙는 귀신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이 세계에서는 정절을 지키지 않아도 영혼에 아무런 손상이 가해지지 않는다. 일단 이승의 여인이 정절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영혼의 분열을 다시 말해보자. 정절을 지키지 않아 파괴된 반쪽짜리 영혼은 어디로 갈까? 지옥이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영향을 받는다. 육체는 정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에 육체는 영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는 너무도 복잡하여 뭐라 말 할 수 없다. 정신 또한 영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영혼은 육체에 의탁되어 있을 때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 오면 영혼만이 남게된다. 영혼은 독자적인 정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의 정신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다.
영혼이야말로 자아이기 때문이다.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다. 그런데 진정한 자신은 죽은 이후의 세계에서만 이성과 육체에 의해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성과 육체에 의해 붕괴될 대로 붕괴된 것이 지옥으로 온다는 점이다. 과연 몸과 정신에 해로우면서 영혼에게 만큼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또 오는 군 그 멍청한 쓰레기 녀석"
"파우스트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 멍청한 연금술사.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군."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야 틀림없어. 그 인간은 고통 없이 고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하고 다니지. 사실 태만만이 그의 유일한 과업이야. 열렬히 태만할 수 있는 건 그 녀석 뿐이랄까..."
"하지만 엔트님도 그러신걸요."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게."
파우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파우스트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구유에 입을 쳐박다가 왔더니 몸이 찌뿌둥하군."
"거만한 돼지 같으니라고..."
파우스트는 육중한 몸을 흔들의자에 뉘이며 말했다.
"돼지라... 그래 내가 돼지인 것은 맞지. 엄연한 돼지의 영혼이니까."
"자네 같은 돼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군."
"내 사업만 성공하면 자네에게 하루에 2전 이상의 고통을 주도록하지. 양질의 것으로 말이야."
"고통은 금과 같은 것이어서 실제로 불쾌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절대 엊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자네는 절대 내 말을 듣지 않는군."
"어떤 점에서 금과 같다는 것이지?"
돼지는 흥미를 느낀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바로 자연상태에서만 나온다는 것이지."
"그럼 그 자연이란게 무엇인가?"
또 지리한 선문답이 시작될 것이 두려워진 나는 파우스트를 한번 물끄러미 쳐다본 후 뒤돌아섰다.
"나를 시기하는 눈빛이구만."
그저 창문 밖을 바라본다.
"자네도 그깟 유리창이나 깨부수는 바보같은 짖은 그만두고 나처럼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게나. 자네 같은 경우도 특이한 영혼을 지녔기에 나무의 형태를 하고 지옥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자고로 특별한 영혼이라면 반드시 자신만의 생산적인 활동을 즐겨야하는 법. 그것은 비단 고통을 위한 것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하는 것이어도 좋지. 나 같은 경우에도 사실 즐거움을 엊기 위해 고통을 만들려고 하는 거라네. 오늘도 하늘의 눈을 계속 바라보다가 그 방정맞은 추임새에 취해 그만 눈알이 핑 돌뻔 했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양립할 수 없는 두 우주를 머릿 속에 그려넣고 두 우주가 부딪혀 산산히 조각나버리는 상상을 한다네. 그것은 두 구슬이 부딪혀 부서지는 것과 같지. 그런 재밌는 상상을 눈을 감고 하다보면 어느새 구유에는 음식이 들어와있네. 그러면 그것을 먹고 나서 잠을 자는 거야. 암실의 문이 열리는 날이면 또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네를 보러오기도 하는 것일세."
나는 그 암실이라는 존재가 퍽 신경쓰였다. 그리고 파우스트에게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암실에 누가 음식을 넣어주는 거지?"
"글쎄 내가 알 수 없는 때에 알 수 없는 자가 넣어준다네."
"이해를 할 수 없군. 자네는 암실에 꼭 돌아가야만 하나?"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나는 파우스트의 정체가 언제나 궁금했다. 그의 이름은 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파우스트 박사와 같았지만 그 멍청함과 지리멸렬함으로 미루어보아. 실제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저 파우스트 박사를 좋아하는 파우스트로 변장한 악마에게 속은 학생보다도 못한 머저리였음이 틀림없다.
"전생에 자네는 무엇을 했나?"
"나 말인가?"
그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신의 아들일세."
"그깟 천칭으로 이 세계를 더럽히지 말게. 독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가? 신의 아들이란 말은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야."
"독신자라... 재밌군. 독신... 신을 모독하는 일... 흐흐흐."
돼지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실은 나는 전생에 파우스트 박사였네."
"그래서 자네의 이름이 파우스트였던 건가?"
"그런 셈이지."
"실제의 자네는 어떤가? 악마와 계약을 했는가?"
돼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했네."
사실 나는 파우스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전생의 나 또한 파우스트였다는 말이네."
"그런데, 자네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쪽의 사람아니었나."
"그래, 나는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네."
"어떻게 그 세계의 기억을 다시 찾은 거지?"
"글쎄... 기억이란 것이 보통 잊어버리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모르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건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직접 물어봤다할까?"
파우스트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해바라기처럼 그의 새카만 홍채는 신기한 문양을 하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인지 이해가 안되는군. 자네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아가서 물어볼 용기가 있다고? 제발 허풍떨지말고 진실을 말하게. 자네가 파우스트 박사가 아닌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어. 솔직하게 말할까? 자네는 돼지 썩은내가 진동하는 구유통 같은 존재일 뿐이야. 자네는 그저 움직이는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네. 파우스트박사? 자네가 파우스트라면 나는 명왕성에 사는 파란 혜성같은 영혼 일게 틀림이 없네. 내가 지옥 가운데에 있는 영혼의 불구덩이 속에 빠져도 나는 명왕성에 있는 거라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아주 재밌는 말이군."
피우스트의 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의 노여움을 삭히느라 마음 속으로 커다란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네는 내가 여기에도 있고 명왕성에도 있고 그렇게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건 재밌는 일이군."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미 나에게서 분열되어 나온 영혼이 설령 명왕성에 산다고 해도, 그리고 그 영혼이 혜성처럼 꼬리를 가진 불길이고 파란색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건 내가 아니야."
"그렇게 말한다면 자네야말로 속 편한 인간... 아니 영혼이라 할 수 있겠군. 나의 경우는 영혼이 반파되어 지옥으로 씻겨져 나온 고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이 말은 조금 흥미가 동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영혼은 영혼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나는 자네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글쎄...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갑자기 파우스트는 일어서서 집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실의 세계에서도 고통은 주화로 쓰이는가?"
"쓰이지 않지."
"그런데 유독 영혼의 고통은 어딘가에 담을 수도 있고 소유할 수도 있지."
"글쎄... 소유라는 말은 조금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럼 자네의 생각에 육체와 정신의 고통이 분리 되어있듯 영혼의 고통도 분리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가?"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네."
"거짓말!"
돼지의 두 눈은 갑자기 충혈되었다. 그는 두 팔을 땅으로 활짝펴며 소리쳤다.
"자네는 그 사실을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 분명해."
"그래도 나름 간음하는 여자가 육체와 정신이 황홀경에 있을 때에 영혼이 부둣가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처럼 망가져 지옥으로 끌려들어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네."
"자네는 생각보다 상당한 이론가였군."
파우스트는 조금 화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만 나는 실례하겠네. 나의 외로된 사업을 즐기러 가야하거든. 아무쪼록 자네도 자네 적성에 맞는 사업을 찾길 바라네."
피우스트에게는 아직 내가 시를 짓는다는 얘기를 한 일이 없다.
"그래, 잘가게 친우여."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나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시를 지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방안을 맴돌기 시작한다. 나의 집 문의 주석으로 되있는 문고리를 잡자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시죠?"
나는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보았다. 거기에는 파우스트와 사탄이 있었다.
"자네는 진실의 나무를 믿는가?"
"그게 도대체..."
"정말 멍청하군.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일반화 된 교리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파우스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당부하겠네. 내가 오늘 이 곳에서 자네를 붙잡은 이유는 자네가 지금 대단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당부하려는 것일세. 자네가 최근에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보게나. 자네는 자네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어. 나도 자네 같은 때가 있었지. 코흘리개 주제에 삼라만상의 지혜를 다 안다는 식으로 잰채를 하던 시절 말이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요?"
"자네는 잠시 나를 따라와야겠군."
그 때 문 틈 사이로 악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악마는 날개를 펴고 쏜살같이 날아와 나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네는 파우스트의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옥에도 죄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나는 순간 이지적 충격을 받아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이승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지옥에서 고통받는 자들은 많았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죄를 저지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지옥에서도 이승의 일 이외에 것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지옥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 같지만 지옥에 대해서 나 또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죄는 무엇입니까?"
"자네가 왜 기억을 잃었는지 대충 알 것 같군."
악마는 날개를 접고 한숨을 쉬었다.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은 재밌는 것이지... 어떤 자는 그것을 잊으려 노력하고 어떤 자는 그것을 다시 엊으려 노력한다."
악마는 파우스트의 목덜미를 잡았다. 파우스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허공에서 졸도했다.
"죽은 겁니까?"
"만약 영혼의 감각과 이성을 지니지 못한 상태를 죽은 것이라 하면 나도 알 수 없는 것이지. 하지만 영혼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
악마가 발로 파우스트의 배를 차자 파우스트는 다시 일어났다.
"이제부터 죄인 파우스트에 대한 심판을 시작한다. 목도하는 자는 엔트..."
파우스트를 적당한 자리에 세워두고 악마는 나를 집에서 끄집어냈다.
"나무 인간을 십자가 삼아 돼지를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어르신."
파우스트는 악마의 발에 이마를 대고 흐느꼈다.
"그러면 자네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저는..."
"그리고 어차피 자네의 사체 또한 살아있는 영혼일세. 그저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네. 그건 나도 확답을 줄 수는 없는 부분이고, 그저 영원히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자네의 원초적 두려움은 자네가 육체를 가질 때의 기억을 이 곳까지 옮겨와서 생각을 해서 그렇다네. 사실 자네가 너무 두려워 할 건 없어."
악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파우스트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악마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래, 그럼 자네의 친구에게 물어볼까?"
악마는 나의 팔로서 쓰이는 가지를 오른손으로 비틀며 말했다. 고통이 느껴진다.
"자네는 친구를 위해 고통을 참을 수 있는가? 자네가 노력하면 이 친구를 구할 수 있네."
"그게 어떤 노력이지요?"
"글쎄... 어떤 노력일까?"
악마는 자신의 필요에 대해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 방편을 떠올리는 소비자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악마는 재밌는 이야기를 원한다. 악마는 재밌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원해.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직접 겪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어야한다. 악마를 즐겁게 할 이야기를 가져오도록... 파우스트, 이 친구가 자네를 도와준다했으니 만일 자네가 이야기를 못구해온다면 이 친구도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야."
"저도 도와야하는 겁니까?".
"그건 자네의 자유지. 이 자유로운 지옥에서 죄를 짓는 쓰레기가 탄생하다니 파우스트 넌 정말 훌륭한 돼지야. 네 주인이 안다면 너의 구유에 들어가는 음식이 반으로 줄어들겠군."
파우스트는 땅에 배를 깔고 미친듯이 몸을 떨어댔다. 그의 소지 위에 악마의 황금 편자가 짓밟았다.
"아아아악!"
"영혼의 반향이군! 아주 재밌어! 이 발굽 안에 자네의 고통이 들어갈 걸세! 마치 천국의 맛이겠군 그래!"
내게 하나의 궁금증이 일었다.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혼이라면 고통도 영혼인 것인가? 하지만 불꽃처럼 인 생각은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쓰잘데기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말 편자의 위에는 피까지 번지고 있었다. 말 편자는 파우스트의 이빨을 으깨고 살집을 파고들었다.
지옥에도 플라타나스 나무가 우거진 지대가 있다. 사실 우거졌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고, 진창과 그 사이사이의 커다란 조약돌들로 만들어진 인도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플라타나스들이 있는 장소가 있다. 인도를 중심으로 플라타나스 너머엔 꼬마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꼬마 건물들은 키가 플라타나스 만큼 크다. 꼬마 건물들은 모두 2층짜리 건물이다. 모두 못생기고 빈약한 회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그 중 단 하나도 같은 형체를 한 건물은 없었다. 문의 위치나 창문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플라타나스는 잎이 없다. 그리고 가지의 끝단이 모조리 잘려나가 있었다. 껍질이 선인장 가시처럼 일어나 하얀 속살을 드문드문 드러내고 있었다.
한 소녀가 밀짚바구니를 들고 뛰어다닌다. 꼬마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하늘은 회색 종이로 된 천막, 플라타나스와 건물들이 천막을 떠받치고 있지! 회색 하늘에 커다란 고양이가 발톱을 갈면 보푸라기가 떨어진다네. 찬 보푸라기가 쌓이고 녹는 와중에 여러 생각이 들지. 왜 천막은 녹아 없어지지 않을까. 아참! 천막이 녹으면 비가 내린다네. 오늘같은 폭풍우가 내리는 날에 나는 생각했네 천막은 바람에 녹아내리는 것이라고..."
"아... 걱정이 태산이야. 이렇게 비가 내려서야..."
"자넨 그걸 걱정하고 있나? 나는 체벌이 걱정이라네.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지옥에서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다니! 더군다나 나의 잘못도 아닌 멋대가리 없는 돼지의 잘못을 내가 떠안게 되었네."
"너무 그러지는 말게. 자네에겐 아무 일도 없을테니."
나는 당나귀와 함께 인도 옆으로 난 넓은 도로로 말 없는 마차를 타고 달렸다.
"저 소녀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있군."
"그러게 말이야. 축축하고 눅눅한 옷을 입고 마른자리에 가면 심각한 이질감과 살끝에서 에리는 약간의 간지러움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
"나에 비하면 자네의 간지러움은 아무것도 아닐 걸 내 귓바퀴에 달린 이 놈도 나름대로의 생장이란 걸 한단 말일세. 그럼 이 기생충 같은 놈의 뿌리가 내 몸속의 혈류를 침범하는 기분을 받는 날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 그런데 꼭 비가 오는 날에는 그 기분이 더욱 심각해지는 거야. 나는 진심으로 이 녀석을 떼어내고 싶은 심정이네."
"마치 자네의 업처럼?"
"글쎄 그건 나의 업이 아니라니까. 파우스트 녀석 얼굴이 뭉개진채로 우리 집앞에서 한나절 기절해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더군 그 후로 얼마간 연락이 없어서 내가 혼자 이야기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 거네."
"그래서 온 곳이 마녀들이 사는 이 마을인가?"
"그래, 마녀라면 어떤 즐거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라. 사탄이 마음에 들어할만한 그런 이야기를..."
"자네가 저주 만나는 마녀의 집에는 갈텐가?"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라네. 하지만 그녀가 아니면 나를 도울 마녀가 없어. 나는 마녀와 악마들의 연회에 한 번도 참석한 적도 없고, 따로 얼고 지내는 마녀도 없지. 사실 이번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온 곳일세."
"그녀의 집이 어디인지 아나?"
"레테의 집은 검은 흑요석의 벽으로 만들어진 집이네. 금으로 된 빗장을 가진 나무 문과 유리창은 모두 속이 비치는 얇은 천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지. 집 앞에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자라고 그 위에 하늘의 눈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다람쥐가 한마리 앉아 있다네."
"그런 집이라... 그래서 어디 있는 집을 말하는 거지?"
"그건 나도 알 수가 없네."
"자네는 전에 이 곳에 와본 적이 없는가?"
"사실 그렇네."
당나귀는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본다.
"이 넓은 마을에서 어떻게 그 집 하나를 찾나?"
"그거야..."
"그나저나 삭막한 동네로군."
힌 무리의 마녀가 길 모퉁이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각각의 마녀들의 옆에는 피붙이 어린 아이들이 마녀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이번 게임에서는 내가 이겼어!"
"아니야! 내가 이겼어 분명 주사위 숫자가 적게 나온 쪽이 이기는 거라 했잖아!"
"아니야 2개의 주사위 중 하나라도 가장 적은 수가 나온 쪽이 이기는 거랬어."
"2개를 합해서야!"
마녀 둘이 열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당나귀는 그녀들의 옆에 마차를 세우고 내려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고결한 마녀 여러분! 저는 술집을 운영하는 당나귀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성원 덕분에 잊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뜨내기 장사꾼이지요. 미천한 제가 감히 무엇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당나귀는 마치 광대라도 된 양 작위적인 웃음을 하고 몸을 베베꼬면서 마녀들에게 아양을 떨었다.
"정말 짜증나는걸?"
"그럼 우리 이 당나귀를 경품으로 하도록 할까?"
"그래, 꼭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도박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이것 하나만 확실히 하면 좋겠어. 만약 내게 이 당나귀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 당나귀의 갈퀴를 황금으로 만들거야."
"나는 이 당나귀의 눈을 뽑아서 다이아몬드로 채울 거야. 그리고 그 안에 그의 눈이 사라진 슬픔을 집어넣을거야."
"나는 이 당나귀의 발굽에 황금 편자를 박을 거야. 그리고 당나귀 위에는 가장 무거운 안장을 얹어야지. 그리고 매일 같이 당나귀를 타고 박차를 가할거야. 그러면 언젠가는 말처럼 빨라지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나귀는 잠시 몸이 굳었다가, 바로 마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빨리 도망치자!"
말 없는 마차는 주인의 말에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빨리! 더 빨리!"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마차는 어느새 마을의 도로변을 지나 숲 속의 진창을 달리고 있었다. 숲 속을 열심히 달리자 한 채의 오두막집이 나왔다.
"정말이지 무섭군... 자네도 조심하게. 우리 같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화한 영혼들도 마녀 앞에선 한 낱 물건에 지나지 않아."
"레테는 상냥한 마녀였던 것이군."
"그건 그녀가 젊은 마녀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네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서 일지도 모르지."
"그녀의 마음에 들어? 자넨 방금 마녀들이 하는 짖을 못봤나? 마녀들은 마치 어린아이 같아..."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바이네. 그녀들은 비극과 희극을 분간하는 능력이 없지. 그녀들은 분별력 없는 푸줏간의 주인이야. 나중에는 자신의 살마저 끊어서 팔 영혼들이라고."
"어찌됐건 살아남았으면 된 거 아닌가? 이 오두막집 주인에 대고 한 번 물어보자고."
문을 두드리자 빗장이 저절로 튕겨져 나왔다. 나와 당나귀는 빗장을 피하느라 문 앞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
안에서는 작고 젊은 돼지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그 안에는 여러 식생이 사는 정글과 같았다. 집의 나무 바닥을 뚫고 여러 식물들이 집을 빼곡히 메운 것이다.
"10년 전에 작고하신 주인님 이후로 처음 보는 움직이는 영혼들이군요. 여러분 같이 춥고 가녀린 영혼들에게는 양송이 스프 정도가 필요하겠죠? 안그런가요?"
키가 50센티 남짓 되어 보이는, 두 발로 걷는 그 돼지는 식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그 보다 배는 큰 당나귀와, 그 보다도 큰 나는 나무 사이에 끼거나 덩쿨에 몸을 베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나무들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알게 뭔가. 어쩌다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건지."
"그래도 저 돼지는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자기 주인이 죽었다는 걸 보면... 그런데 어떻게 영혼이 죽을 수 있는거지?"
"아마 죽은 게 아니고 저 망측한 돼지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친 모양이지."
"나도 자네의 생각과 같네."
"어서 오세요!"
정글지대를 벗어나자 작은 나무 탁자가 하나 놓여있는 작은 공터가 나왔다. 나무 탁자 위에는 햇볕 같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너무도 작위적인 느낌이 나는 그 빛은 마치 위에서 조명으로 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면 광원은 없었다. 먼지 같은 어둠이 가득한 심연 뿐이었다.
나무 탁자에 준비된 의자에 돼지가 앉는다.
"앉으세요. 제 의자 외에도 3개의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 곳은 제 주인님의 자리였군요."
돼지가 측은하게 빈 의자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손님이 오셨으니 주인님을 데려와야겠군요."
돼지는 별안간 테이블 옆에 놓인 보물상자에서 해골이 된 시체 한 구를 꺼낸다.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테이블로 돌아와 자신의 옆 자리에 앉힌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모양이군..."
당나귀가 말했다.
"정말로 해골이 되어버린 건가? 움직일 수는 없는 거고?"
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런 모습에 커다란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옥에서 하루 종일 고문을 당하는 죄인들은 머리가 잘려나가도, 다음 날이면 다시 멀쩡하게 온전한 몸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건 말도 안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내가 소리치자 당나귀가 나의 볼기짝을 치며 말했다.
"자네가 맞을 수도 있어. 돼지가 뭔가 장난감을 가지고 우릴 놀리는게 맞을 것이네. 그러니 진정하고 일단 앉게."
"하... 그래. 맞아 레테! 돼지야. 혹시 레테의 집이 어디있는지 알고있니?"
"레테라면 그 어린 마녀를 말하는 모양이군요. 글쎄요. 그 여자의 집은 제가 가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자네의 주인이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서나 들을 수 없겠나?"
당나귀는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돼지에게 물었다. 그의 음흉한 어조 속에는 그의 괴팍한 욕구가 녹아들어있는 듯 했다.
"주인님의 죽음을 말하는 거군요. 아니 이걸 죽음이라 불러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솔직히 주인님의 지금 상태에 대해서 뭐라 형언하기도 어렵네요. 이 상태는 도무지... 어찌됐건 주인님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그래,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나 말하라고!"
"그건... 아 잠시만요 손님이 온 것 같네요."
돼지는 황급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제기랄 우리도 도망쳐야돼!"
"그게 무슨 말이지?"
"마녀들이 우릴 쫓아온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돼지가 나간 반대편길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자 나무들이 서로를 끌어 안으며 나무 우리를 만들어냈다.
"큰일났군. 누군가가 우릴 못도망치게 나무들을 묶어버렸어"
"마치 갈대밭을 헤쳐나가는 개처럼 나무들을 구부릴 수만 있다면..."
"우린 독안에 든 쥐인 걸세! 젠장... 여길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하기사 자네도 술을 만들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으니 대접을 받아온 거지. 여기서는 자네의 그런 노고를 알 턱이 없으니. 자네도 파우스트 같은 신세가 되겠구만."
"파우스트 같은 신세라면... 무슨 뜻이지?"
"누군가의 가축이 될거란 말일세!"
"자네는 벌목을 당하거나 장식품을 만드는 데에 쓰이고 말거야!"
"자네는 푸줏간에서 온 몸이 해체될 걸?"
"설마 마녀들은 육식을 하나?"
"그건 나도 모르지...
"세상에 나는 어쩌면 좋아!"
당나귀는 미친듯이 원형 우리를 쏘다녔다. 그의 침과 눈물 그리고 오줌이 이 나무 저 나무에 흩뿌려졌다.
"엔트..."
이 목소리는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오 레테여..."
"레테라면 그 마녀 아닌가?"
"주인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주인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우리의 한 켠에 길이 나있었고, 그 곳에는 레테와 작은 돼지가 함께 있었다.
"주인님 저의 불찰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작은 돼지는 미친듯이 떨며 중얼거렸다.
"왜 저를 찾으신거죠?"
레테가 해골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발로 차며 말했다.
"안돼! 주인님!"
돼지는 미친듯이 달려가 해골을 부둥켜 안았다.
"혹시 제게 들려줄 모욕적인 언사라도 준비하신 건가요?"
"그래, 너에게 충분히 욕설을 퍼부어주지. 그 전에 레테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글쎄요... 일단 말해보세요."
레테는 방금 전까지 해골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상한 얘기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이야기를 찾고 있어. 악마도 홀릴 만큼 신선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레테 자네는 혹시 악마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바가 없는가?"
"글쎄요. 소마주를 진탕 마시고 소와 말의 형상을 불러와 그 위에서 성희를 즐기는 사탄과 마녀의 이야기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요? 이야기라... 애초에 이야기라는 건 뭘 말하는 거죠?"
"그게..."
갑자기 은방울 꽃이 일어나 말했다.
"지금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것 만큼 한심한 일은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레테 당신을 쭉 지켜봤는데 마음에 안 드는 구석 뿐이에요. 이야기라면 뭔가 영혼 사이의 교감을 담은 이야기를 해야지 뭐라고요? 성희를 하는 이야기를 해준다고요? 누가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죠?"
"이 멍청한 은방울꽃아 조용히해! 악마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라면 레테가 생각하는 이야기가 맞을 거야."
레테는 의미심장한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쉽지만 악마의 취향은 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그저 어젯밤 방탕하게 취하고 함부로 영혼의 표면을 (어쩌면 영혼으로 구성된 육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부글부글 끓는 포도주 속에 담고, 화톳불 위에 얹은 항아리 속 포도주를 바로 그 속에서 마시며 포주 노릇을 하는 악마의 주문을 기다리는 일 만이 제 삶의 낙이죠. 그리고 가끔 저를 탕녀라고 놀려대는 당신 집에 가서 당신의 음담패설을 듣는 것도 제 낙이에요. 그런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말도 안되는 얘기죠."
레테의 말이 끝나자 당나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저 당신의 아름다움의 찌꺼기라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 찌꺼기 마저도 임자가 있다니."
나는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은방울 꽃이 말했다.
"저 여자는 기분 나쁘군요. 엔트님..."
"어찌됐건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이 마을에서 소마주에 절은 채 밖을 쏘다니는 마녀들은 자신보다 약한 영혼을 보면 영혼을 마구 부셔버리니까요. 영혼의 육체라고해서 영생을 누리리란 보장은 없지요. 저도 지금까지 죽는 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요."
"그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지?"
"보장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레테는 돼지가 끌어안은 해골을 보며 말했다.
"저걸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마녀 조차 이 세상의 특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 것인가? 나는 다시금 거울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나의 침울한 표정을 보며 레테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런 표정도 재미있군요. 저는 이만 가보겠어요. 다음에 만나면 절 모독하고 호도할 발언들을 마구 준비해 놓으라고요."
'지옥의 겟세마네 동산'
「사랑했던 소녀여
나는 지금 그대에게 편지를 써요. 사실 그대에게 붙이지 않을 편지이며 제 진심에 대한 간증일 뿐인걸요. 하지만 이것은 그대의 영혼에 보내는 편지에요.
사랑했던 소녀여 우린 같은 교정에서 만났지요. 그대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겠지만, 저는 너무도 깊이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의 작은 호의에도 너무도 순수한 진의를 발견하던 나였기에... 아니 죄송해요. 당신의 의도보다 제가 훨씬 앞서나간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소녀여
점차 불안의 황망함과 그 안에 부는 시원한 나선의 바람이 나를 휘감는다오. 그대를 생각하면 뜨거운 피가 샘솟는 와중에도 피부결을 따라 찬 공기가 일고, 그 바람의 물살을 따라 전율이 일어나는 것이오. 그대와 내가 사랑을 하게 된 지 벌써 10년이나 되었소.내일도 편지를 쓸테요. 내 사랑이여.」
이도한 유튜브 가기: https://youtu.be/RU9Nt5b6IG4
문장력은 좋은데 내용은 너무 추상적이야.
모아질듯 하면 탁 흐트려트리고 내가 뭘 읽은건지모르겠다 다만 아주 몰두해서 쓴 느낌이 난다 지옥과 영혼 등에 대한 이해가 좀 깊었으면 다른 작품이 나왔을까? 물론 이대로도 좋은데 형식은 실험적이고 내용은 판타지물 같아 곤혹스런 느낌이었다. 노가다하믄서 글쓰기 힘들텐데. 나도 밤에 일하며 그림 그린 적 있다. 재즈음악가 칼라블레이도 그렇게 음악 시작했다고했다
꽤 재밌네
지린다
읽다 포기 어려운 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