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티를 입은 사람들과 긴팔티를 입은 사람들이 한 거리에 보이고, 6월의 중순이 이제 막 지난 때부터 나는 장마를 기다린다. 이맘때쯤이면 나는 높은 계단을 오르느라 땀을 흘리던 당신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때때론 먼저 앞서 당신의 손을 잡아 끌어올리기도 했고, 때때론 당신 뒤를 쫓으며 양 손바닥으로 엉덩일 밀어 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입으론 힘들다 말했지만 당신의 다리는 멈춤 없이 내 부축에 고마워했다. 또 우리 집이 있던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나선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비가 오던 날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당신이 들고 있던 우산으로 계단을 톡톡 두드리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신의 뒤를 쫓는 동안 계단을 내려다보며 당신이 우산으로 계단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처음 크게 싸웠을 때를 기억한다. 크게 싸우고 올라탄 버스 안에서 서로 미운 것을 보이기 싫어 우린 같은 목적지를 두고도 다른 길로 걷겠다며 억지를 부렸고, 나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 앞에서 오늘은 밀어주어야 할지 당겨주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담배를 태웠다. 우습게도 먼저 택시를 타고 도착한 당신이 내게 '어서 올라오라'고 전화를 하기 전까지 말이다. 종종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당신도 혹시 장마를 기다리나. 혹시 아직도 우산으로 계단을 톡톡 두드려 내게 길안내를 해주고 있을까. 당신은 아직도 내게 잘 잤느냐 인사를 건네고, 나는 없는 당신을 고민하며 타박타박 담배를 태운다. 그리고 이제 막 6월이 지나갈 중순이면 나는 여전히 이른 장마를 기다린다.
좋은 느낌이야. 폭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그라들지도 않는 문장들. 정형화된 이미지나 별거 아닌 내용 같지만 선만 잘 지키면 이렇게 음~음~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왜 화자를 목에 문신이 있는 여자로, 상대방을 뚱뚱한 털복숭이 남자로 상정하게 되는 걸까.
잘쓰네
좋다. 좋은 느낌이다. 좋은 느낌으로 출발한 글은 좋은 느낌의 글이다. 그리고 그런 글은 좋은 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글로서 팔리는 쓺과 시로서 팔리는 쓺이 조금 다르다는 걸. 쓴 다는 목적테에 이르기 위해서는 글을 쓴다는 것과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예술로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은 좋은 글로서의 한계가 있다. 글로서 휘발될 지 사유를 통한 시적 세계에 안에서 휘발될 지 어떤 힘이 더 활발한 것인지에 대해 나는 말해주고 싶다 - dc App
여기서 댓글 달며 꼰대짓 하는 놈들은 궁금한걸게야 너가 글이 아닌 시로서 자신을 소비한다면 어떤 시가 나올지에 대해 문득 궁금할 것이거든 그것은 또 다른 재능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테고, 그냥 이 말이 하고싶었어 글을 쓰는 것으로 좋은지에 대해 - dc App
솔직히 나는 김멍멍의 운문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궁금한데 일기나 묶어서 내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