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귀 방>


셔츠를 입었을 땐 이렇게 하면 된다. 통풍이 잘되는 곳을 찾아간다. 가슴팍에 있는 단추 두 개를 고른다. 윗단추와 아랫단추 사이에, 그러니까 명치보다 더 안쪽으로. 복도까지 닿게 손을 집어넣는다.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확보해놓은 부지에 찾아가는 방법이다.


그새 빽빽해진 것 좀 봐


단숨에 끼쳐오는 향내


남미 향을 담았다던 디퓨저를 책상에 놔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밭에 자주 찾아오는 편인데도 나는 늘 모르겠다. 입이 벌어지고 만다. 당장 흰쌀밥 흑미밥 밥에 넣을 만한 잡곡들…… 잎에다 올려놔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찰기가 입속에서 몇 바퀴씩 감싼다고 생각해봐. 적당히 찰진 밥을 한 품에 안아줄 당귀들이 여기 이렇게나 많고


작은 당귀 밭

밭을 품고 있는 당귀 방

벽과 천장과 창문과 손잡이

제각기로 쳐다보는 당귀들


저들끼리 깍지 낀 당귀들은 선택받지 못했다지, 뽑아내니까 바스러지는 거 봐, 어떡해, 말하면서 당귀를 거두는 손짓은 거침없다. 이 당귀들을 모두 뜯어 먹는 생각만 하면 참기름 고춧가루 버무리는 손처럼 즐겁다. 기분 좋은 숨을 들이마시자 당귀 향이 가득 들어왔다. 신나서 줄기들을 샅샅이 뒤지다가 어느 손가락이 건드린 당귀가 그렇게 싱싱하다는데…… 싱싱한데 싱싱? 잠깐만 싱싱은 아닌 거 같은데 싱싱…… 차라리 밍밍…… ?


그 주변 좀 젖혀봐


줄기가 잘 안 잡혀


나는 밭에 멈춰 섰다. 그 부근을 제대로 들추자 당귀 줄기를 타고 올라 꼬물꼬물…… 언젠가 하천에 가면 주근깨가 간지럽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분에서 빠져나온다.


당귀 밭에서 빠져나와

당귀 방에서 빠져나와

복도에 늘어선

적근대 방

치커리 방

상추 방

케일 방

겨자 방

호박잎 방……

내가 자처한 방들……


오늘 점심은 쌈밥을 먹으려고 했다. 두부를 으깬 강된장도 올려 먹으려 했는데…… 나는 도통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얼마 전 집 안 냉장고 구석에서 녹고 얼고 녹다 잿빛으로…… 물컹해진 치커리의 퀴퀴한 냄새. 치커리를 처분했던 일이 떠오른다. 냉장고는 당항하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지금도 밭 구석에서 뭉쳐지고 물컹해질 당귀들……


이거 봐, 복도에 또 멈춰 섰잖아


셔츠 밖에서부터 들어온 흰 김이 복도를 감싸고 나를 감싸고 나서야 복도에 멈춰 섰다는 걸 깨달았다. 당귀 방으로 흰 김이 들어가려 할 때 나는 당귀 방이 아닌 복도 밖으로 뛰쳐나간다.


셔츠 단추들 사이로 당귀 진물을 가득 묻히고 빠져나오는 축축한 손


단추가 튕겨 나갔으면 아마 실밥을 쥐고 한참을 부엌에 서 있었을 것이다. 새까맣게 그을린 찜기 앞에서 당귀 향과 탄내를 동시에 훅 들이켰다. 찜기에 물을 붓자 엄청난 연기가 솟아오른다. 흰 김과 연기가 동시에 당귀 방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손은 가끔 답답해 죽겠다. 손을 보고 있는데도 흰 김과 연기에 관한 생각을 참을 수 없다. 관자놀이를 스쳐 머리 주변을 맴돌아 구름을 형성해내는 형국으로 나를 감싸고 돈다.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떡해?


구름이 감싸고 토닥거려준대도……


그러고선 당귀들에게 찾아가 스콜을 흩뿌려놓는다면……


나는 니트릴 장갑을 갈아 끼고 셔츠 단추들 사이를 지나 단숨에 당귀 방을 향해 손을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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