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글의 제목에서, 뽕두 형님은 '내일도 날씨가 좋다면 시를 쓰겠다'고 했다. '내일도 날씨가 좋다면'이라는 표현은 오늘 날씨가 좋았단 걸 암시한다.(암시가 아니라 대놓고 말하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 뽕두 형님은 내일도 날씨가 좋다면 시를 쓴다. 날씨가 좋아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오늘같이 맑은 날이 이어지는 것이 헛헛해서' 시를 쓰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을 뽕두형은 '원전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먹을려고 고기 잡겠냐?'라는 날카로운 비유를 통해 드러낸다.
낚시를 처음 배울 때, 사람들은 낚시왕을 꿈꾸며 낚싯대를 붙잡았을 테다. 실내 낚시터에서 배웠을 수도 있고, 고깃배에 뉘어 선원의 흥취를 함께했을 수도 있다. 더 많은 물고리를 잡기 위해, 쉼 없이 찌를 바라보며 물고기가 낚이기를 기다린다. 이는 초조하고, 반응이 없다면 지루한 과정이다.
낚시가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사람들은 물고기를 '가지기' 위해 고기를 잡는다. 이 가진다는 건 회를 떠서 먹는 일일 수도 있고, 어탁을 뜨고 물고기는 바다에 풀어주는 일일 수도 있다. 낚시를 통해 무언가를 얻는다. 성취감, 혹은 쾌감. 대부분은 이를 위해 낚시를 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조차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은 고기를 낚는 일도, 맛있는 물고기를 먹거나 최고의 기록을 세우는 일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질려서가 아니라, 익숙해져서 그렇다. 이제는 낚시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 낚시를 하지 않는다. 낚시를 통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낚시를 한다. 그걸 보통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이제 낚시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 아니라, 나 그 자체가 된다. 낚시를 하지 않을 때조차, 낚시를 모르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낚시를 하지 않아도 나는 낚시꾼이고, 물고기를 낚지 못해도 나는 낚시꾼이다. 흔히 말하듯이 흐르는 물에 인생을 낚지 않아도 괜찮다. 인생은 이미 낚싯바늘에 걸려있으니까. 무언가를 삶의 일부로 삼아버린 사람에게, 인생은 그저 미끼처럼 걸려있게 된다. 그래서 인생을 걸었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뽕두 형님은 '내일도 날씨가 좋다면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무언가 건져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건져낸 것만 골라내더라도, 양동이 몇 동이 정도는 가득 채운다. 뽕두 형님에게 시를 쓴다는 건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져내는 일이 아니다. 낚싯바늘에 인생을 걸어 바다에 쳐넣는 일이다. 바다에 잠겨 죽겠다는 말이다. 뭍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숨 쉬던 사람이라, 태어낢이 아쉬워 바다에서 살다 죽겠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서, 물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헛헛해서 빠져 죽겠다는 말이다.
내일도 날씨가 좋다면 시를 쓸 테다. 아직은 숨이 남아 살아남았으니. 날숨에 죽으리라.
헉 쓰니야!! ㅠㅠ 띵문 연재 재개되서 허버허버 개추박았긔윤 ㅠ
ㅖ
좋다잇 - dc App
쫌 하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