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나의 마지막 시험문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서술하시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오고 있었다. 10시 30분까지 시험장에 가야 했던 나는, 혹여나 쌓인 눈 때문에 대중교통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아서 지각이라도 할까 봐, 씻지도 않은 채 1년째 기르는 중인 머리만 질끈 묶고 학교로 출발했다.
다행히 버스는 제시간에 출발했고, 또 학교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일찍 시험장에 도착해 준비해 둔 답안을 읽으며 기다렸다. 시험은 정각에 시작했다. 나는 준비해둔 답안을 쓰기 시작했다. 한창 열심히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쓰고 있는데, 갑자기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자신을 바꾸는 데 실패한 사람이, 지금은 세상이 왜 변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변하긴 했다. 3년 전, 학교를 휴학하기 전, 20대 초반의 나는 시험지에 답안을 이렇게 빽빽하게 쓰지 않았다.
3년 전 8월, 나는 학교에 휴학 신청서를 던졌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입학이 그리 어렵지 않은 지방사립대, 그곳에서 세 학기 평균 2.5를 겨우 넘는 학점, 학교생활을 잘 하지도,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사람.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소설 쓰기였다. 그래서 휴학했다. 대학생인 나를 소설가인 나로 바꿔보기 위해서. 그리고 3년이 흘렀다. 3년간 여러 대회에 내 소설들을 출품했다. 신춘문예는 물론이고 어디 이상한 사이트에서 정체 모를 개인이 하는 공모전까지. 잡지사에도 물론 투고했다. 하지만 모두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뿐이었다. 내 소설을 실어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내가 허황된 소설가라는 꿈을 꾸는 동안, 다른 이들의 시간도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졸업했고, 또 누군가는 일찌감치 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자 생활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나의 세상만 변하지 않았을 뿐, 다른 이들의 세상은 3년만큼 변해 있었다.
지난 3월부터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안 쓴 건지 못 쓴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나름 잘 완성했다고 생각한 단편소설이 기대했던 잡지사의 투고에 떨어진 후, 손이 자판 위로 올라가질 않았다. 그저 나의 세상에게 배신당했노라고, 한탄만 할 뿐이었다.
지난 9월에는 복학을 했다. 3년 만에 하는 공부였지만 생각보다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왔다. 그렇게 돌아오기 싫은 학교였는데, 막상 돌아오니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 첫 학기가 끝났다.
오늘 이 글은 지난 3월 이후 9개월 만에 쓰는 글이다. 왜 이걸 쓰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시험을 치르며 헛웃음이 났을 때, 지금 이 감정을 꼭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다. 3년 전, 휴학을 결심하며 나서던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은 비로 바뀌어 있었다. 쌓여있었던 눈은 어느새 조금씩 녹고 있었다. 내가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녹은 빙판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2022. 12. <12월의 어느 눈 오는 날에>
넌 반드시 좋은 소설가가 될 거야. 내 말 믿어도 돼.
소설은 머리 나쁘면 못 쓴다 지잡출신이면 걍...
ㅆㅂ 댓 달지 말고 대가리나 박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