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이 이번호까지만 내고 무기한 휴간한대.
보통 무기한 휴간은 폐간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더라.
에픽 몇가진 정말 문제였다는 생각해서 여기 글 남겨.
이번이 마지막이라니 누군가는 남겨놔야 할 거 같아.
1.
에픽은 원고청탁을 편집위원간 회의를 거쳐서 한대.
편집위원 중 한 분은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야.
얼마전 고요서사 블로그에 윤치규 작가에게 감사드린다는 글이 올라왔어.
내용 보니까 유료로 모임을 하는데, 마지막 기념 장소 섭외를 윤치규 소설가가 해줬다는 내용이더라.
12월 초에 있었던 행사더라구.
문학서점이 작가한테 공간을 빌려주는 일을 할 텐데 반대 경우잖아?
작가가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있는 대표가 하는 유료 모임에 필요한 공간을 섭외해줬다는 거야.
차경희 대표가 어떤 공간이 필요했는데 윤치규 작가가 거기 잘 맞는 공간을 평소 알고 소개해줬던 것일 수도 있어.
아니면 대표가 직접 해야 할 대여 절차확인 같은 자질구레한 일 대신 봐줬다거나 잘 아는 공간을 돈 안 받을 수 있게끔 해줬다거나.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대표가 감사하다고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편의를 봐줬다는 것은 틀림없어.
근데 지금 이 당시 한 명은 잡지에 누굴 실을지 결정하는 편집위원 신분이야.
한 명은 원고 청탁을 받아야 하는 작가 입장이야.
청탁을 주는 편집위원은 작가로부터 크든 작든 도움 받는 걸 경계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보니 윤치규 작가는 차경희 대표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에픽에서 원고 청탁을 받은 시점이었어.
이번호에 글이 실렸거든.
나는 편집위원과 작가들이 저런 도움 가지고 거래하듯 청탁 주고 말고 하는 사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근데 이런 협력관계는 미묘한 구석이 있는 거라.
나중에 받을 도움을 생각하고 도움을 주기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적어도 누군가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처신에 신경 쓰는 거구.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유로 상부상조하진 않아.
지금처럼 지면 발표라도 끝났거나 편집위원 끝난 시점이면 몰라.
그땐 편집위원이 청탁 준 글을 작가가 쓰고 서로 주고 받는 시점이었어.
그 시점엔 서로가 그런 식의 호의를 베풀면 안 되는 거야.
공정한 필드라고 생각할 수가 없잖아.
작가 편집위원 둘 다 문제야.
이런 과정을 알고 나면 작품이 곱게 보이겠냐구.
차경희 대표는 사업가이고 유료 모임이면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결국 사업이라고 봐야 하잖아.
다른 곳 편집위원 신분으로 원고 청탁을 준 작가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것도 자신의 사업에 혜택될 수 있는 도움을?
그런데도 고맙다는 글까지 올린 걸 보면 차경희 대표부터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거 같아.
차경희 대표가 에픽 편집위원 들어갔을 때 정말 기대했어.
한국 문학 문제라고 계속 말해오던 사람이었어.
내 주변 작가님 중에 고요서사에서 책 많이 샀는데,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한 분도 봤네.
차경희 대표가 에픽 편집위원이고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하는데 친한 척 인사하면 안 될 거 같다고. 그게 맞는 자세 아냐?
지금도 구글에서 에픽을 검색하면 '에픽 투고'가 연관 검색어로 나와.
누군가는 에픽 1호에서 했던 편집위원들 약속 믿고 여기에 투고하려고 준비했던 사람들이겠지.
그런데 원고 청탁 주고받는 작가와 편집위원이 다른 곳에서도 상부상조하고 있다는 걸 보면 어떤 심정이 들까.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으니 그동안의 열정이 머쓱하진 않을까.
편집위원과 작가 사이에 지면 청탁 가지고 인맥 하나 더 늘어나고, 상부상조할 끈끈한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에픽은 차경희 대표가 욕하던 예전의 개저씨들 문학이랑 뭐가 그렇게 다른 걸까?
2.
김경주 시인은 6년 전에 세월호 추모글 청탁을 받았는데, 차현지 소설가에게 대필을 맡겼어.
당시 저는 작가적 자의식이 없는 신인이었던 데다 글을 쓸 기회가 너무나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차현지 작가는 3년 전에 대필 사실 폭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더라구.
누가 먼저 대필을 제안했는지 주장이 서로 달라.
근데 확실한 건 차현지 소설가가 대필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점이야.
위계에 의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거부하지 못한 책임이 사라질 순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성인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조차 책임을 지는 거야.
독재자 밑에서 부역한 사람들, 일제 밑에서 부역한 사람들이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겠지.
실제로 이를 지시한 권력자 보다 책임이 덜할 순 있어도 그 책임이 사라지진 않아.
그때 일은 크게 세 가지 잘못이 있어.
하나는 글을 의뢰한 사람한테 당사자들이 저자 이름을 잘못 알린 사기죄, 김경주 시인 차현지 작가 둘 다 해당되지.
둘째는 독자에게 작가 이름을 당사자들이 잘못이라는 걸 알고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 역시 김경주 시인 차현지 작가 둘 다 해당되지.
셋째는 권위자가 자신의 제자에게 대필이라는 형식을 의뢰했거나 용인한 죄, 김경주 시인의 잘못이지.
저중 가장 큰 죄는 대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독자를 기만한 죄야.
그런 관행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폭로한 건 용기있는 행동이지만, 동시에 그런 부당함을 수락한 폭로자 자신도 같은 이유로 용서받아선 안 되는 거야.
더 큰 잘못은 김경주 시인이라고 생각해.
김경주를 옹호할 생각 없어.
그리고 나는 김경주 시인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글 발표 못하는 거 같은데 시인이나 작가한텐 그게 벌이지.
그리고 김경주 시인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차현지 작가도 그보단 덜할지라도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근데 차현지 작가는 폭로 이후 자신의 첫 단행본을 내고, 에픽 9호에도 글을 수록했더라. 폭로 후 불과 3년 안에 다 이뤄졌어.
우리 모두 알아. 작가에겐 자신의 글을 소개할 수 있는 지면을 얻는 게 큰 상이야.
김경주 시인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면, 차현지 작가도 적어도 그에 준하는 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왜 별다른 공백기도 없이 작가로서 좋은 기회를 받게 된 걸까.
누군 용서 받고 벌을 받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걸까?
어떤 작가는 왜 기회를 받고 상을 받는 걸까?
대필이라는 터무니 없는 짓거리로 독자들을 기만한 둘 다 용서할 수 없어야 하는 게 아닐까?
김경주 시인은 벌을 받는 거 같은데, 차현지 작가는 누구에게 용서를 받았던 걸까?
고졸이신가
바로 왔네 ㅋㅋ
한국 문학 뭘 바래... 다 흑화돼서 나오는 거지.
구멍가게 마인드로 문학하는데 안 망할리가
바닥이 너무 좁아서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다닐 수는 없는 것 같음 완벽한 공정을 기한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수준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공감하며 잘 읽었어.
귀중한 증언
잘 읽었음.. 이따위로 하는데 잘 되었으면 더 화날뻔..
수준에 맞게 놀다가 수준에 맞게 갔구려 허허
2번의 경우는, 착취당했다는 폭로였기 때문에, 차현지는 피해자라서 활동이 가능한 것 아닌가 싶네요.(글을 읽어보니 다른 이야기가 더 있나 보네요. 그렇다면 님의 말에 설득되네요.)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차현지 소설가보다는 김경주 시인이 더 유명인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글로 못 뜨니 폭로로...여론전으로...
아이피 갈고 왔는가 ㅎㅎ
내부자가 숨겨진 걸 들춰내야 폭로고 공개적으로 블로그든 잡지든 글쓴 걸 가지고 좋다 싫다하는 걸 평가라고 하지. 1번이든 2번인든 새로운 내용 아님. 1번은 다 글로 지금 올라왔다는 거고 2번은 당시에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하지만 글 자체는 쓰게 해주는건 맞지. 판단은 다 각자 몫
맞음. 실제 이해관계가 있느냐랑은 상관없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함. 그렇지 못하면 신뢰가 떨어지고 문제제기가 계속 나오겠지. 이제야 이런 얘기가 좀 나오네.
그런가; 문제상황을 직시하였음에도 위계에 의한 행위를 한 결과도 위법 사항이면 당연히 처벌을 받긴 하지. 다만 정상참작이 될 뿐이지. 정상 참작은 하겠지만, 도덕적 책임까지 다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원문 글 내용도 맞고, 커리어랑 폭로를 연결짓지 말아야 한다는 님 말도 맞고 어려운 문제이긴 하네. 진작부터 이런 토론이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네. 왜 없었지?
그렇다면 차현지작가는 글쓴이에게 용서를 받지 못해서 글도 쓰지 말아야하는 것인지? 그리고 아직 등단 못했거나 등단했지만 지면이 없는 글쓴이를 위해 작가들끼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도 누르면 안되는지? 결국은 여우와 신포도로 느껴짐. 한예종, 문창과, 편집자, 연고대 국문과 등 문단 내에 실제 수많은 학연과 지연이 존재하고 그게 조금씩은 영향을 주겠지만
왔노 ㅋㅋ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결국은 소설이고, 시가 좋아야 등단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소설과 시가 좋지 않은데 인연이 있다고 챙겨줄 정도로 문단이 여유가 있거나 의리가 있지 않음. 심사위원 중에 선생님이 있어서 등단했다고? 그 선생님의 수많은 제자 중에 소설과 시를 잘 써서 등단을 했겠지. 세상은 늘 공정했는데 왜 본인에게만 공정하지 않을까?
이게 문갤 평균인데, 닉스가 나와서 놀랐다. 논점을 벗어나야 문갤이지.
문제제기와는 별개로 소설은 상당히 좋았다. 작가나 편집위원이나 오해받지 않게 조심해야지.
ㅎㅎㅎㅎ 지금 이말이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