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후 산책을 시작했다. 이사 온 동네가 마음에 드는 점은 바닷가가 가깝고 아파트 단지 안팎 주변으로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개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는 5층 정도 높이의 이름 모를 침엽수들이 일렬로 심겨 있는 단지 측면 산책길을 따라 단지 밖으로 나간다. 통행로가 중간중간 심심하지 않게 오솔길처럼 구불구불하게 깔려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아서, 호젓한 기분을 느끼며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이 길의 매력이다. 단지 쪽문을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만개한 벚꽃 나무가 150m 정도 일직선으로 펼쳐진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걷게 된다. 벚꽃 길 아래를 걷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제아무리 무뚝뚝한 상남자라 하더라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그들도 최소한의 기쁨 포인트는 마음속 어딘가에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벚꽃 길이 끝나면 아파트 단지 중앙 통행로를 가로질러 공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40m 정도 걷게 되는데, 이 길에는 평평한 회백색 돌판이 살짝 틈을 두고 듬성듬성 박혀 있는터라 이게 또 돌판 디딤을 신경 쓰며 뒤뚱뒤뚱 걷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정작 공원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냥 일반적인 보도블럭들이 늘 보던 대로 깔려 있고, 공원 중심부 길가로는 큰 나무들이 없어서 별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농구 코트와 테니스 코트 주위를 허리 정도 높이의 조경수들이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마침 중학생으로 보이는 10명 가량의 급식들이 반코트 농구 시합을 하고 있어서, 지나가는 중에 호기심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워낙 농구공을 끼고 살았던 터라 보자마자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참 지지리도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냥 농구가 아니라 농구공을 매개로 한 그들만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유독 덩치 크고 뚱뚱한 거인 친구가 골대 맞고 떨어진 공을 잡아서, 허우적대는 자세로 한 골을 넣는 장면에서는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좋을 때다라고 생각하며, 계속 해안가 산책길을 향해 걸었다. 공원에서 아파트의 또 다른 외곽 측면 길로 들어서면, 이제는 키가 큰 거대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신기한 공공 운동기구들도 군데군데 여러 대 설치되어 있는데, 역시 구불구불한 통행로를 따라 소나무 향을 맡으며 걷는 재미가 있다. 여러 다양한 외래종 견공들과 마주치는 장소가 바로 이 산책길이다. 소나무 산책길이 끝나는 곳에는 탁 트인 작은 광장이 나오고, 가끔씩 흔들의자에 할머니들이나 고삐리들이 몇 명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거나 멍때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광장 건너편에는 750m 정도의 해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보통 1회 왕복을 하는데 이 해변 산책길의 첫 번째 매력은 바다와 배와 섬들을 볼 수 있는 점이고, 두 번째는 발 지압을 할 수 있는 돌길이 있다는 점이다. 신발을 벗고 이용하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돌 표면이 깨끗해 보이지 않고 나무 발디딤목에는 이끼도 제법 끼어 있어서, 나는 신발을 신고 이용한다. 오늘은 다이어트에 열심인 늘씬한 처자들은 안 보이고 산책 나온 아줌마 일행과 마주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6명이 2열 3행으로 절도있게 걷는 모습에서 군대식 구보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차이점이라면 걸으면서 쉴 새 없이 웃고 떠든다는 점이었다. 호젓한 산책길 분위기를 즐기는지라 빨리 지나들 가시라고 옆으로 잽싸게 길도 비켜드리고, 발걸음도 제자리에 서다시피 속도를 늦췄다. 바다 건너 멀리 섬 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하늘에는 석양의 흔적만 미세하게 남아 있었지만, 해수면에 비치는 구름의 반영은 여전히 볼 만했다. 꽤 어둑해진 터라 색은 사라졌지만, 흑과 백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아름다움이었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돌아가는 길에 어두운 산책길 공터에서 여자아이 셋과 엄마로 보이는 어른 한 명이 서서 뭔가를 하는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면서 줄넘기 소리가 들렸을 때야 뚱뚱한 엄마한테 이끌려 애들도 함께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쨌거나 그들은 가족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순간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스프라이트 제로 캔 하나를 따 마시며, 나도 내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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