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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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에 적힌 글 크게 낭독하고 도망치는 또라이짓 했다는 거 아닌가
고요한 시와 산통을 깨는 코멘트의 이질성이 아침부터 어질어질하노 ㅜ
ㅜㅜ - dc App
씻길 필요가 없는데 억지로 씻김=무언가를 강제함 도서관=정숙해야 하는...그런 강제성을 띄는 장소들 중 하나 거리가 젖은 것= 새를 억지로 씻겨서 물이 사방으로 튀듯이 사람들도 저마다 강제로 뭔가를 요구당하거나 하게 되니까 그런 압박에 대한 저항을 나타냄 이런 해석을 본 적이 있음
그렇군요 우리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새에게 강제하기까지 하다니... - dc App
아진 씨가 옮겨준 해석은 정황에 맞춰 좀 더 면밀해질 필요가 있어. 이 시의 주요한 아이러니는 시의 제목과 시 속에 등장하는 책의 내용 사이에 발생해. 제목은 구관조 씻기기인데, 새에 관한 책에서는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새를 씻기지 말라고 하는 거지. 여기에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끼어들어.
또 하나 이 시를 운동시키는 게 “새”와 “책”의 유비 관계인데, 이게 들어서면서 독특한 작용을 해. 새 씻기기라는 이미지와 새에 대한 사랑(침범하지 않기,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알지?)이라는 현실적 윤리 사이의 모순이 책에서 재발하는 거야. 다시 말해, 책을 사랑한다면 책을 읽지 마시오 라는 명령.
이 지점에서 시 속의 도서관은 일종의 새장이 되고 격리 공간이 된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더없이 고요하고 가상에 한없이 가까운. 그런데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도서관을 나섰을 때 외부가 젖은 모습을 보여줘. 거리를 적신 이 물은 새가 스스로 씻을 때 사방으로 튀기는 물을 연상시키고. 역전이 일어나는 거야.
이 도서관이라는 신기루가 새의 세계이고 새장인 줄 알았는데… 도서관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책이 계시하는 어떤 진실을 담보하는 완전한 세계, 그런 것처럼 그려지던 도서관이 갑자기 새에게서 ‘버림받는’ 거야. 그럼 아까 새어 들어와서 책의 삽화를 비추던 빛은 뭐지. 쾌청한 날씨는.
그게 바로 이 시가 그려내는 독서 행위 자체인 거고, 한 권의 책이자 일종의 closed-circuit인 도서관은 거짓 신호로 가득한 공간이 되는 거지. 결국 비닐로 감싸져 있던 건 도서관이 아니라 저 외부의 세계. 그리고 나의 독서(시)가 세계를 성공적으로 유비하는 것 같아도(‘이거 진짜 새가 몸 씻은 물 아냐?’)
그건 언제나 “그냥 느낌”일 뿐이다(황인찬 시 독자에겐 익숙한 언술이지). 그런 계시와 실재의 만남은 사후적으로 조립된 이미지로써만 가능하니까. 이 인식에 직관적으로 뒤따르는 외로움, 불일치감, 허무함 등이 표현되어 있는 시인 것이다.
그러니 뽕두라는 친구는 황 시인 시에 거 뭐 있어? 계집 같은 시 어쩌고 하기보단 제대로 읽기를 해보는 편이 좋다 이거야~ 시 올리는 거 보니까 정말 괜찮게 쓰던데. 에고가 큰 거 나는 진짜 좋아하는데, 영리한 사람은 메타가 되고 망설이는 지점이 있어야 한당
꿈보다 해몽인 것 같다는 느낌 잘 듣긴 했음 - dc App
읽기를 발전시키다 보면 결국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 자체를 넘어서야 할 때가 온다. 시는 답을 맞춰야 할 문제로 주어진 게 아니고, 시의 ‘해석’은 해몽이 아니라 또 다른 꿈이다. 독서는 이기적으로 해야 한다. 시 쓴 사람을 위해 읽지 말고 언제나 나한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해석을 선택해라.
시를 주의깊게 읽어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사랑한다면 책을 읽지 말라는” 금기, 그리고 안과 밖의 역전과 그에 따른 차단/소외감은 시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음. 아니 그걸 다 의도하고 썼을 리가 없어 같은 반응은 훈련된 작자를 너무 노리스펙 하는 것이다. 의도가 중요함? 쓴 사람은 의도가 아닌 자기 감각을 전개한 것임. 우리가 다시 접도록
궁금한 건 새가 씻기운 게 아니라 스스로 씻은 결과라 볼 해석의 단서는 뭐야..? 물이 튀었다면 씻기운 것도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