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경우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사는 동안은 시인으로 평가받아본 적이 없음
시인으로 인식된 적도 없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 가족과 지인 몇 사람 밖에 없었음.
죽고 나서야 시집이 출판되면서 시인이 되었고 지금은 한국에 사는 나도 그 이름을 알음.
윤동주 시가 출판되기 전에
그가 살아있을 때 출판사에 시를 갖다줬으면 출판사는 뭐라 했을까
선생님 이건 우리 출판 그거랑은 안 맞네요 라고했을까?
윤동주는 정지용의 서문이 아니었으면 출판이 안 됐을 거임 - 이건 결국은 평가지만 모든 게 끝난 다음의 평가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좀 더 구별적인 논제라고 생각
하지만 흥미로움
이를테면 초예만 봐도 아주 흥미로운 논제지
자주 하는 말이 그거니까 결국엔 진짜가 드러날거라고
그리고 항상 창작자의 예술이 가지는 존재론적 특별성과 비개인으로써의 대중은 대립하기도 하고
그리고 죽은 다음의 명성 같은 건 창작자 본인에게는 정말로 쓸모가 없지
ㅋㅋㅋㅋㅋ 혹시라도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 딸은 충분히 먹고 살겠군
딸 생각부터 하네
그러니까 예술에 대한 평가를 대중의 평가와 창작자 본인의 평가로 나눈 다음에 대립시키고, 창작자 본인의 평가를 어떻게 평가할 거냐는 건데
딸이 제일 소중하니까 다른 건 관심 없음
장인어른, 식사 하셨습니까? 인사 올립니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시대적인 요소도 있고. 비시대적인 요소, 공간적인 요소, 비공간적인 요소, 비보편적인 취향도 개입해서
116은 그걸로 시 한 편 써라 볼품없이 쓴다는 생각으로
초예처럼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절대 나쁘게 생각하지 않음)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는 다들 공유하겠지
어. 하지만 갑자기 너무 어려운 이론을 아는 게 힘들거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글을 읽기 힘들다면 음악이나 그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생각 같아. 우리가 꼭 수능 1등급이어야 하지는 않잖아
당장 할 수 있는 공부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반짝반짝하게 사는 법부터 배우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
하지만 쓰는 사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어? 그게 도중이라면 더욱 더
물론 내 작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취한 상태로는 전혀 내 작품을 볼 수 없으니까 뽕두에게 술 고만 먹으라고 잔소리 하는 거고. 내 눈에서 일단 합격을 받아야 그다음에 타인의 평가에 수긍할 수 있으니까
음악이나 그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생각 같아 동의동의 영화나 기타 예술 전부 좋아
솔직히 나는 밥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글 써서 밥 먹고 살기는 글렀어.
맞아 그래서 누군가는 아마 시인들 중 대부분이 반병신이라고 말했던 거 같아 그 사람은 아마 에밀리 디킨슨은 거의 히키코모리같은 생활을 했잖아? 라고 말할 테고. 동기-생산
재능은 좋은 선물이지만 잘 다루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니까. 가끔은 슬픈데(아 물론 내가 재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재능을 타고나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보면서) 슬픔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니까 ㅋ
미야자와 겐지
211.227 어디 간거야 갤에 오면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