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와 절름발이
변호사 이서인은 깔끔한 성격이었다. 몇 주 전 그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 앞에 자그마한 구두닦이방 컨테이너가 생겼다. 1평 남짓한 공간에 문은 살떨리는 외풍을 막기에는 역부족해보였고 온풍기 한 대만이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서인은 직접 구두를 닦을 수도 있었지만 역시 남이 해주는 것이 훨씬 편했다. 이서인은 곧 구두닦이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
구두닦이의 이름은 정기형이었다.기혼인 그는 자신의 가족 사진을 벽에 걸어놓았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사진 속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만 봐서는 꽤 젊고 잘생겨서 굳이 돈이 적게 벌리는 구두닦이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오지랖 넓은 노인들도 더러 있었으나 궁금증은 곧 해결되기 마련이었다. 그는 다리를 절었다.
이서인보다 정기형의 말수가 더 많았다. 구두닦이 정기형은 구두를 닦는 동안 기다리는 손님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넉살좋게 떠들었다.
“구두 닦는 김에 밑창도 가는 게 좋겠어요. 아니, 구두가 이태리제네, 히야…”
이서인은 강박적으로 손목시계를 흘끗 보았다. 재판까지 아직 꽤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약 먹을 시간이었다. 그는 생수병을 가방에서 꺼내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 약봉지를 입에 털어넣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우울증약이었다. 이서인이 전처와의 이혼 후 얻은 병이었다. 뒤에서 말이 많은 사무실 직원들의 눈을 피해 그는 사무실 밖에서 약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뭐하시오?”
약간 나이가 있어보이는 생경한 말투에 이서인은 고개를 들었다. 다 닦았나 해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정기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덜 되었는데 이서인이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고 있자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이서인은 피식 웃었다.
“전재산을 세고 있어요.”
정기형이 궁금해하자 그는 통장잔고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정기형은 0이 몇 개인지 세다가 포기한 모양이었다. 구두를 몇번 닦아야 이정도 돈을 모을 수 있을까, 무슨 생각인지 훤히 드러나는 얼굴로 정기형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이서인은 씁쓸히 말했다.
“전처와 재산분할하느라 반을 뜯겼어. 이런 내가 한심하지.”
정기형은 기죽은 얼굴에서 금방 얼굴이 펴졌다.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는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만 있으면 평생 남의 구두만 닦아도 행복할 수 있다오. 그런 게 진정 삶 아니겠소.”
이서인에게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살라는 그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의 구두를 닦으며 2천원을 받는 구두닦이 정기형은 이서인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이서인의 머릿속에서는 한참 전부터 삶이 위태롭다고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매일 바삐 시간에 쫓겨가며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입에 쓴 약을 털어가며 알수없이 밑바닥으로 치닫는 마음을 건져올리는 것도, 숫자뿐인 통장잔고를 세는것조차도 이서인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는 사람.’
정기형의 가게는 정돈되어 있었다. 안정된 정기형의 삶처럼. 이서인은 정기형의 행복이 욕심이 났다. 고작 절름발이, 구두닦이일 뿐인데 그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 보였다.
이서인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 두 가지밖에 몰랐다. 노력해서 성공하면 무엇을 얻거나, 아니면 실패였다.
이서인은 결혼에 실패했다. 그래서 구두닦이의 행복을 돈을 주고 사고 싶었다. 이서인의 내면이 비정상적으로 무너져있었기에 그런 접촉이 가능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서인은 정기형의 구두방을 자주 찾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이서인은 절절하게 고백했다.
‘나를 사랑해줘. 날 살려줘, 제발.’
정기형은 처음에 당황했다. 그러다가 이서인이 진심인 것을 알게되자 가족 핑계를 댔다. 이서인은 정기형과 함께 정기형의 아내를 만났다.
‘행복을 나눠줘, 제발.’
‘행복은 나눌 수 없어요. 가세요.’
정기형의 아내는 냉정했지만 한 번 무언가에 꽂힌 이서인을 물러서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혼으로 삶의 행방을 잃었고, 정기형은 그런 그에게 방향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우울증환자답게 집요한 이서인은 정기형의 아들이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들의 치료비를 빌미로 정기형의 아내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정기형은 마침내 이서인의 정인이 되었다. 정기형의 가족에게 이서인이 전재산을 주고 얻은 대가였다.
이서인은 변호사 사무실을 처분하고 정기형과 함께 구두를 닦았다. 구두닦는데 서투른 이서인을 정기형이 늘 옆에서 가르쳐주었다. 다정한 정기형의 앞에서 이서인은 늘 항상 서툴렀다, 그들은 두 명이서 구두 한짝씩을 닦았다. 정기형의 가족사진이 걸려있던 벽에는 이서인의 변호사자격증이 대신 걸렸다.
정기형의 전처는 행복할까? 그녀는 아들과 함께 매일 저녁 호화스러운 외식을 했다, 그런데 아빠 잃은 어린 아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정기형은 행복할까? 그는 밤마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이서인에게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정기형의 가족은 다시 만나 이서인을 남겨두고 도망쳤다.
구둣방에 홀로 남겨진 이서인은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매일 정기형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가 처분한 변호사 사무실은 주인이 몇번 바뀌더니 다른 변호사가 들어왔다. 김지호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깔끔한 성격이었다, 그는 곧 이서인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는 이서인의 사연을 궁금해했다.
“왜 전문직 자격증을 벽에 걸어두고 고작 구두닦이를 하는거요?”
이서인은 자신이 어떻게 전재산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었다. 삶이 위태로워서,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는지를 몰라서,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이리되었노라고.
김지호는 이혼소송중이었다.
김지호는 이서인이 바보같아서, 자신과 닯아서, 이서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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