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해피 갓(Happy, happy God)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햇빛은 창문으로 들어와 부유하는 먼지를 타고 둥둥 떠다녔다. 소년은 창 밖 운동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둘로 갈리아 축구하는 데 여념이 없는 두 발들, 환호와 함성. 소년은 언젠가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명백한 수비수의 실책이었다. 한 골을 먹히고 침울해할 여유도 없이 그는 다시 움직여야만 했고 그런 그의 머리를 17번이 헝클어뜨리며 위로해주었다.
그 때부터였다. 공을 차는 그들이 부럽다고 생각하게 된 건.그는 등번호 17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기시간이 종료되고 휴식을 위해 개수대에 이동해 물을 입에 갖다댄 순간, 소년과 17번의 눈이 마주쳤다.
17번은 소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지? 요즘 매일같이 우리가 축구하는 걸 보고있던데, 축구팀 관심 있어?”
“보는 건 좋아하는데, 해본적은 한번도 없어.”
“그럼 해보면 되지.”
17번은 씩 웃고는 창고에 있는 팀원을 향해 ‘여기 유니폼 조끼 하나 더 가져다줘.’ 하고 외쳤다.
“아냐, 난…”
“해보면 금방 감 잡고 실력 늘어. 우리 축구팀에 스카웃예정된 선배도 있어서 수준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축구팀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선생님, 수호 데려갈게요’ 하고 17번은 1층 창문을 넘어 손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안아들었다. ‘너 밥좀 많이먹어야겠다.’ ‘이거 놔’ 따위의 말을 하는 그들에게
선생은 물론이고 수업을 듣는 같은 학생들 중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이번에는 더 심했을까. 아주 잠깐 공을 향해 달렸을 뿐인데도 숨이 세차게 차더니,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웃는 얼굴로, 그렇지 잘한다 하며 쫓아오던 17번이 안색이 질려 달려오는 모습을 가물거리는 눈으로 바라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 아시잖아요. 수호가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건, 어머니의 헛된 기대사항일 뿐이라는 것을요. 지금 수호와 같은 반 아이들 부모에게서 제가 얼마나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는지 아십니까.”
“수호가 운동하느라 무리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거예요. 자기가 하겠다고 한것도 아니라면서요.”
병원에서 눈을 뜨자 작은 목소리를 실랑이하는 두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담임과 엄마다.
“선생님, 전 살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찬란했어요. 어쩌면 그 기억때문에 지금 살아가는지도 몰라요. 우리 수호, 수호가 시한부 판정을 받아 3년도 못산다고 해도 고등학교 졸업은 시켜주고 싶어요.. 그럴 권리는 있는거잖아요.”
소년은 깨어있었음에도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담임이 돌아가고 나서 소년의 엄마가 소년의 손을 붙잡고 ‘…엄마가 틀렸을까?’라고 중얼거릴때까지.
“나 입부시켜줘.”
소년은 밥을 먹고 있던 축구부원들 중 17번으로 기억하고 있는 얼굴에게 말했다.
“잡일이라도 할게.아니 축구공만 닦아도 좋아, 그러니까 유니폼 조끼, 나한테 돌려줘.”
안돼, 내가 너희 엄마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줄 알아. 또 10분만 뛰다가 기절해서 실려가려고? 절대 안돼.
하고있는 말이 거친줄도 모르는 듯 17번은 거리낌없이 반대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운동부 코치가 갑자기 말했다.
“유니폼 줘.”
“네?”
17번뿐만 아니라 식당 안의 시선이 일제히 의아한 빛을 띄었다.
“유니폼 돌려주라고.”
소년은 정말로 축구공을 닦기 시작했다. 다 합해 열다섯개인 축구공을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껏, 낡고 해졌지만 부드러운 헝겊으로 정성껏 닦았다. 닦고 나서 그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차가운 얼음물과 수건을 준비한 채로 경기를 마칠 부원들을 기다렸다.
언젠가부터 소년의 교내 축구팀 매니저가 되었다.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 누구라도 운동장 그늘 벤치에서 축구공을 끌어안은 채, 축구팀 경기를 보는 검은 비니를 쓴 소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혈관이 비쳐보일정도로 창백한 피부에 큰 눈에는 선망을 가득담고 그는 그렇게 있었다.
가끔 경기를 마친 부원들이 얼음물과 수건을 찾으러오면서 비니를 동료의 머리칼을 흩뜨려뜨리듯 만질 때, 소년은 더할나위없이 환하게 웃곤 했다.
그런 그의 웃음을, 17번 소년은 말없이 바라볼 때가 있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소년은 숨을 거두었다. 고교생활은 어땠느냐고 엄마가 묻자 소년이 말했다. 행복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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