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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앞의 해장국집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넓은 홀에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외국인의 금발은 쉽게 눈에 띄었다. 일행인 한국인과 오래 본 아주 막역한 사이인듯 그들은 영어로 담소를 나누었다.
리암이라는 이름의 외국인은 한국인 일행을 신부라고 불렀다.
신부, 사격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한국에서 남자들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니까요.
끄덕끄덕
리암은 본국송환 날짜가 언제라고 했죠? 내일이야.
이세준은 용모가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나 서품을 받은 정식 신부였다. 구치소에서 나온 시간이 일러 끼니를 때울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에 먼저 들어오자고 한 건 그였으나 막상 음식이 나오자 미안했던지 리암에게 물었다.
맵지 않아요? 해장국 한국인이 아니면 잘 못먹을건데.
리암은 몇번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확실히 맵다. 혀를 고통이 감싸는 감각. 한국인들은 이런 고통을 맵다면서도 즐긴다고 했던가.
매워. 하지만 속이 개운하면서도 화가 풀리는 기분이 드는게...마음에 들어.
이세준 신부는 하하, 하고 기분좋게 웃었다
한국인 다 되었네요
그들은 6개월 전 처음 만났다. 주한미군 중위가 술을 마시고 오밤중에 명동성당 문을 부수었다는 소식은 대한민국을 소요케 했다. 명동성당이 한국에서 가지는 역사적 상징이나 주한미군의 정치적 상징성은 여러 사람 골치를 아프게 하는 일이었으나 명동성당 주임신부는 아주 평화롭게 종교적으로 해결했다.
앞으로 반년간 제이슨 리암 중위는 명동성당에서 봉사할동을 해야하며 그 감시인은 문제아 신부, 이세준이 맡기로.
이세준 신부는 처음에 제이슨 리암 중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술마시고 성당기물을 부수는 중차대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진심으로 뉘우치는 눈빛이 아니었다. 다만 군인답게 성실해서 잡초뽑기나 짐나르기 등 힘쓰는 일을 곧장 해냈기에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고 같이 저녁을 드는 사이는 되었다.
리암 중위가 봤을 때 이세준 신부는 감정에 솔직했고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종교는 시대에 맞춰 해답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모가 잘생겨서 사랑에 빠진 여신도들도 있었으나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예 춤까지 추며 전도를 하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문제아 신부라고까지 불리었음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것이 리암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암과 함께 고아원에 봉사를 갔을 때 이세준 신부는 가요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까지 얌전히 있던 리암은 술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향해 다가가 입을 맞추고 혀를 섞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세준 신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진정이 된 후 그는 리암에게 부대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군 부대를 찾아갔다. 이세준신부는 자신이 당한 일보다도 자신의 종교가 당한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진보적이라 해도 신부는 신부였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자들만이 어찌되었든 신부 서품을 받을 수 있는 법이었다.
중령은 면담한 자리에서 역시 부대 안에서 문제아인, 리암의 과거이야기를 꺼냈다.
리암은 아이를 안고있는 민간인 여인을 적군으로 오인해서 쏴죽인 일이 있었다. 그 후로 술과 약이 없이는 잠이 들지 못하는 지독한 PTSD를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해성사실에서 처음에는 담담히 죄를 고백하다가 이내 감정이 격해진 리암은 고함을 질렀다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오 존재합니다
이세준신부는 곧바로 받아쳤다.
내가 혀를 섞었을 때 당황해서 몸이 굳었던 주제에.
제이슨 리암 중위는 코웃음을 치며 벽을 쾅쾅 두드렸다.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신이 존재하면 나는 살아있어서는 안된단 말입니다. 나는 전쟁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1959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을 받았습니다.
리암은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권총입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도록 항상 장전해놓죠. 제 고통은 이정도입니다.
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세준 신부는 조용히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두 사람은 고행의 십자가 길을 걸어 가장 큰 조각상 앞에 도달했다. 권총은 장전이 되어있었다. 해는 핏빛으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신부는 성스러운 조각상, 아기예수를 마리아가 품고 있는 성모상을 겨누고는 들고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름다운 조각상은 신부의 손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소리가 크게 울리자 이윽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중위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묻고 싶었다. 넌 신부잖아. 미쳤어? 그러나 이세준 신부의 표정을 보자 그는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기분이었습니까? 이런 기분이었군요.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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