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신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먹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그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대로 먹지 않으면 죽기는 하지만 난 그 정도가 심했다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으니까
그렇다면 뱀파이어처럼 피를 마셔볼까? 아니 이건 아니다.
난 그냥 걸신들린 것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저주를 내렸는데 앞으로 태어날 자식이 끔찍한 허기에 평생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나서도 그 말을 꺼림직하게 여겼는데,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나는 정말 허기를 달고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분유를 몇통이나 마셔댔고 밥을 밥솥째로 비웠다. 용한 점쟁이에게 가봐도 딱히 별 수가 없다며 효과없는 부적 몇장 써준 게 전부였다. 먹은 게 살로 가지도 않아서 나는 또래보다 키도 몸무게도 작고 덜나갔다.
내 식비로 인해 우리집은 가산이 거덜날 지경이었기에 난 어릴 때부터 먹고살 궁리를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연예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얼굴은 아빠를 닮아 잘생겼지만 키가 작았기 때문에 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키즈모델의 일을 맡았다. 나는 계약서에 계약금 대신 식비로 지급하라는 조항을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었고 기획사는 그로인해 훗날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밖에서 먹는 밥은 해결되었다 해도 이게 문제다.
'1학년 3반 김재영은 밥을 한번만 풀 수 있음'
배식대 입구에 쓰여있는 문구를 원망스레 쳐다보며 나는 주걱으로 밥을 퍼냈다.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내가 밥을 다 먹어버려 나보다 뒤에 도착한 애들이 밥을 먹지 못하자 선생님들이 의논해 내린 결론이었다. 친구들이 키득거리면서 내가 정말 한번만 밥을 푸는지 지켜보았다. 나는 급식실을 둘러보고, 목표물을 발견한 뒤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왕따였다. 5반 이건우. 나는 그와 밥을 같이 먹어주고 그는 내게 남는 밥을 준다는 일종의 거래를 함으로써 그는 자존심을 지켰고 나는 밥을 얻었다.
사실 그에게 말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내가 걸신이라는 저주에 걸린 이유는 아버지가 친구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래서 괴롭힘당하는 이건우를 지나치지 못했다.
이건우는 착했다. 그리고 유명한 맛집을 하는 멋진 형을 두고 있었다. 이건우는 학교가 파하면 날 데리고 그 식당에 데리고 갔고, 그런 날이면 이건우의 형은 식당 문을 일찍 닫고 우리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 형을 좋아했다.
이건우는 오늘도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다. 새로 생긴지 얼마 안된 멍이었다.
나는 그것이 퍽 안타까웠지만 도와줄 수는 없었다. 애들끼리의 다툼은 교묘해서 제3자가 해결하려고 들면 더 심해지고 음지로 숨어버린다. 결국 해결해야하는 건 본인이었다.
이건우는 말수가 줄었다. 그는 밥을 퍼서 내 식판에 옮겨주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위에서 식판을 내려쳐 이건우의 얼굴에 음식물이 쏟아졌다. 이건우 뒤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이건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건우 머리에 붙어있는 밥을 떼내 먹기 시작했다. 녀석 뿐 아니라 이건우, 그리고 식당 안의 구경꾼들 모두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건우 옷에 붙은 콩나물과 그 날 특식으로 나온 탕수육까지 주워먹었다. 이건우는 깨끗해졌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음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벌받아."
그 뒤로 이건우가 나를 멋진 형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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