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오면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찬란한 빛. 밝음. 아침이 오는가 보다. 좋은 일이지. 빛은 항상 우리에게 뭐랄까? 희망, 긍정, 행복 같은 거를 주는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어둠을 좋아해. 왜냐고?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그런 거야. 그렇게 태어난 거야. 마치 박쥐나 올빼미처럼. 그냥 어둠에 익숙해. 하지만 그렇다고 아침을 원망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아침이 와야 사람들이 깨어나 움직일 거고 그래야 거리가 부산해질 거고 그래야 그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기거든. 


그럼 너의 취미는 <사람 보기> 인 거야?


그렇지. 사람 보기. 유심히 관찰하기. 유럽의 늙은이들이 히틀러 시절부터 하고 있다는 그 행위 있잖아. 베란다에서 멍 때리며, 혹은 에스프레소 한 모금 홀짝이며, 오가는 인간과 차와 말, 자전거와 유모차를 유심히 살피는 것. 그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야. 나의 일상 말이야. 시간 보내기에 이만한 것이 없지. 나의 시간은 너도 잘 알잖아? 그냥 영원이야. 끝이 없지.


그럼 종일 집에만 있는 거야?


그렇지. 온종일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지. 그래서 빛이 싫지만 반기는 거야. 은둔형 외톨이라고 해서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거든. 원래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남과 이별, 증오와 그리움, 끌림과 반목을 교차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으니까…. 나도 그런 거지. 벗어날 수가 없지. 다만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할 뿐이지. 즉 머릿속으로만 만나는 거야. 상상이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을 봤지. 그녀는 어리고 여리고 가냘프고 청순해 보였어. 마치 내 첫사랑을 보는 것 같았어. 청순미의 끝판왕. 내 가슴의 영원한 낙인. 그녀는 급히 골목을 뛰어가더군. 나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어. 사실 그런 충동을 지금까지 많이 느꼈지만 한 번도 불러 본 적은 없어. 내가 얘기했잖아. 나는 직접 만나는 것은 싫어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뭐, 그야 뻔하지. 그냥 상상하는 거지. 그녀의 삶. 그녀의 인생. 그녀의 고난과 행복, 그녀의 비밀과 세상에 드러남.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 등등. 그래, 나는 늘 이런 식이지. 늘 숨어서 사람들을 관찰해. 마치 CCTV 같은 존재지. 따분하지 않냐고? 뭐, 따분할 때도 있고 재밌을 때도 가끔은 있어. 하지만 이젠 익숙해. 이렇게 지낸 지가 꽤 됐거든. 음…. 그러니까…. 대략 3년 정도 되었구나. 우리 흥민 빌라가 리모델링 한 게 딱 3년 되었으니까. 


그럼, 여기서 3년 산 거야?


아냐. 일 년 더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총 4년 살았지.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냐고? 음…. 너에게 말하기는 좀 뭐한데…. 사실 여기로 오기 전에 감옥에 잠깐 있다가 나왔어. 


감옥에? 몇 년 동안? 왜? 


하나씩 물어봐. 대답하기 헷갈리잖아. 얼마 안 돼. 3년 선고받았는데 1년 반 만에 특사로 풀려났어. 운이 좋았지. 대통령 보궐 선거가 있었거든. 이전 대통령이 끼리끼리 꽤 많이 해 먹었는가 봐. 무슨 말인지 알지? 안 좋은 쪽으로…. 그러니 사람들이 그렇게 들고일어났겠지? 지구를 떠나라고. 아무튼 나는 그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 


죄목이 뭐냐고? 음…. 그게 그러니까…. 너에게 사실 말하기가 무척 쑥스러운데…. 그게…. 그러니까…. 성범죄야. 강간미수. 미안해. 너가 실망할 줄 알았어. 하지만 조금 억울한 면이 좀 있긴 있어. 그래. 사실이야. 강간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꾹 참았거든. 정말이야. 초인적인 힘으로 나의 충동을 억제했어. 즉, 나의 이성이 강했던 거야. 혹은 미래에 펼쳐질 고난을 두려워했던가…. 아무튼 내게도 약간의 선한 면 혹은 약한 면 혹은 다르게 생각하는 강한 면 이 있다는 뜻이지.


무슨 말이야? 지금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미안해. 과거 이야기는 늘 불편해서 그런 거야. 알잖아? 떨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껌딱지처럼 사방에 붙어 다닌다는 거.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녀를 돌려보냈지. 그리고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운전대를 다시 잡았지. 택시 운전을 했거든. 야간에만. 내가 얘기했잖아. 나는 어둠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어떻게 잡혔냐고? 당연히 그녀가 신고했으니까 잡혔지. 나는 신고 안 할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무척 악랄한 여자였어. 그래 그녀는 틀림없이 악녀였어. 


악녀라고? 그녀는 강간당한 거잖아? 아니 강간당할 뻔한 거잖아? 그런데 왜 악녀라고?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음…. 그녀가 먼저 유혹했거든. 내 말은 사실이야.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녀가 어떤 상태로 내 차에 탔고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그녀의 젖가슴을 내게 들이밀었는지. 그러니 나는 억울하다고 하는 거야. 정말이지 그녀의 술수에 넘어간 거야.


결국 그 여자는 술 먹고 새벽에 너를 유혹한 거구나? 


그렇지. 그런 거지. 그런데 나의 몸뿐만이 아니었어. 내가 밤새 번 내 돈까지 탐하더군.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온라인에 뿌렸지. 동영상 말이야. 결과는 대박이었지. 삽시간에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한 거 있지. 아마 천만 영화보다 그 뭐더라? 이순신 장군 나오는 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 영화보다 내 것이 더 빠르게 퍼졌을 거야. 생각해봐! 얼마나 멋지고 짜릿한 일이야!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가 세상 끝까지 무한히 번지고 있다고…. 정말 짜릿하지 않아?


그래서 그 동영상이 너의 재판에 도움이 된 거야? 아니. 그 반대야. 판사의 분노만 샀지. 왜냐면 가장 결정적인 돈 이야기를 그녀가 꺼내기 전 나의 블랙박스를 그 사악한 년이 뜯어 버린 거 있지. 그러고는 자기는 술이 떡이 되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발뺌한 거야. 그러니 내가 고스란히 뒤집어쓴 거고. 하지만 우리 변호사가 똑똑해서 양형 거래를 한 거지.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불행 중 다행이네.


그렇지. 그만한 게 다행이지. 요즈음같이 무서운 세상에…. 다만, 한가지, 성범죄자에게 주어지는 주홍글씨가 출소 후에도 내가 집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는 수단이 되고 말았어. 


주홍글씨? 


그래, 그거. 전자발찌. 이거 차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놀라운 과학 기술.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거야. 인공위성이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거. 그래. GPS.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경찰본부 모니터에 빨간 점으로 표시되지.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집에 콕 박혀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나 구경하는 거지.


내가 한 가지 재밌는, 나에 관한 사실 알려줄까? 


응, 그래. 뭔데?


사실 나는 범죄 관련하여 악연이 많은 사람이야. 정말이지 재수가 더럽게 없는 인간인 셈이지. 내가 뜻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운명적으로 혹은 우연히 그런 몹쓸 일에 휘말리게 된 거야. 궁금하지? 


그렇게 자꾸 질문 식으로 말하지 말고 그냥 말을 해. 너는 그게 항상 문제야. 그냥 너가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떠벌리고 싶은 것을 그냥 말하면 될 것을…. 항상 입이 근질근질하잖아. 맞지? 그래, 그러니 그냥 말을 해! 꼭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는 거…. 그거 정말 나쁜 버릇이야. 


알았어. 그럼 말할게. 미안해. 오랜만에 너를 보니 그냥 옛날 습관이 나와서 그런 거야. 이해해. 


오랜만이라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해? 줄곧 네 곁에 붙어 있었잖아. 너는 404호. 나는 504호. 천장 너머 내가 있고 바닥 넘어 너가 있는데…. 뭘 오랜만이라는 거야? 


아무튼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거는 꽤 오래전이잖아. 나는 그 얘기야. 


그건, 너가 우울증에 빠져 꼼짝도 안 하고 구석에만 처박혀 있었으니까 그런 거지. 


그래, 알았어. 미안해. 너 마음 충분히 알고 있어. 이 세상에 마음 터놓고 이렇게 마주 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이제 우리 둘뿐인 거…. 나도 잘 알지. 아무튼 미안해. 그동안 외롭게 해서.


됐어. 지금이라도 너가 이렇게 나타났잖아. 그럼 된 거지. 뭐. 그래, 아무튼 너의 이야기 계속해봐. 어떻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전 나에 대하여 잠깐 기술하고 넘어갈게.


사실 나는 숙맥이야. 말더듬이기도 하고. 물론 얼굴이야 좀 곱상하게 미남형이라고 다들 그러지만, 여자 앞에서 그 흔한 인사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어. 그러니 학창 시절 연애는 꿈도 못 꾸었지. 그저 짝사랑 몇 번 하다가 끝난 게 다야. 


너도 나만큼 불쌍한 인간이구나.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내가 만약 너 정도의 허우대만 갖추었다면 여자 걱정은 안 하고 살았을 것 같은데….


고마워.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줬어.


아냐. 진심이야. 너가 워낙 안 꾸며서 그렇지! 본바탕은 차은우 못지않아. 진심이야. 


뭐, 사실, 가끔 내게 대시하는 여학생이 있긴 있었어. 하지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종일 말 없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이 세상에 단연코 단 한 명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아! 그러고 보니 잠깐, 한가지가 생각난다. 이건 중요한 일이야. 꼭 너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이지.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기이하고 짜릿했던 그 날. 그래!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지.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보자 그러니까 그날이 언제였나? 틀림없이 군대 가기 전이었어. 왜냐하면 군 생활 내내 그날을 곱씹었거든. 아무튼 그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날. 나는 모처럼 만에 정장을 쫙 빼입고 외출했어. 아마 내가 정장 차림을 한 것은 신입생 환영회 이후 처음일 거야, 마저. 틀림없이 그랬어. 왜냐하면 처음 정장을 입었을 때는 헐렁하다고 느꼈는데 그날 옷을 입는데 조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살이 그만큼 찐 거지.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대학 생활을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아마 내 생에 가장 좋았던 순간을 그때뿐이었을 거야.


아무튼 나는 제법 멋진 모습으로 버스를 탔지. 승객이 꽤 많았어. 당연히 서서 갔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한 느낌이 내 손에 전해지는 거 있지. 뭔가가 이상했어. 그래서 가만히 버스 기둥을 잡은 내 손을 쳐다보니…. 하하하…. 어떤 여학생의 손이 자꾸 내려와 나와 부딪히는 거야. 자자 자. 이 상황을 한번 속으로 그려봐 봐!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이 막 떠오르거든. 버스 기둥을 잡은 내 손. 그 손 위에 하얗고 조그마한 손이 차츰차츰 내려오다가 내 손과 닿으면 다시 올라가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려와 다시 내 손과 닿는 거지. 어때? 상상되지? 


그래, 그녀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거야. 즉,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빠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나는 평소에 옷을 더럽게 못 입는 편이야. 아니 아예 신경도 안 쓰지. 내가 생각하는 옷의 개념은 단 하나야. 보온용. 그러니 어디 외출할 때면 먼저 눈에 띄는 아무거나 입고 돌아다니지. 즉, 늘 후줄근하거나 밋밋하지. 이런 타입의 인간이 딱 한 가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알아? 그래, 그거야. 어느 날 갑자기 친구나 친척, 혹은 지인들 앞에 바로 쫙 빼입고 나타날 때지.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감탄을 금치 못하지. 


“와!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다!”


“와! 이게 누구 신가? 내가 알던 그 사람, 마저?”


“와! 숨겨진 비경이 따로 없네!”


나는 그날 내 옆에 서 있는 그 여학생을 통해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자신감을 느꼈지. 즉, 나를 쳐다보는 모든 이의 시선에는 같은 느낌이 배어있는 거지.


“와! 정말 잘생겼다!”


나는 당당하게 버스에서 내렸어.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몇 걸음 뒤에서 따라 오더군. 나는 쾌재를 불렀지. 물론 그녀는 내 유형은 아니었어. 뭐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못생겼어. 크고 둥근 안경을 쓰고 입, 코, 눈이 모두 작았어. 키도 작고 가슴도 밋밋했지. 하지만 나는, 하늘이 주신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어. 바로 성적 호기심 말이야. 


너도 한번 생각해봐! 눈부신 이십 대잖아! 질풍노도의 시기! 치마만 스쳐도 불끈불끈 아랫도리가 발광하던 그런 시기잖아! 하지만 내 신세가 그때까지 어떠했는지는 내가 말했잖아. 비참했지. 여자 친구가 없는 극소수의 좀생이 대학생. 바로 나지. 내 친구들은 만났다 하면 지난밤을 스쳐 간 황홀했던 정사에 대해 침을 튀기며 자랑하던 그 고통의 순간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견뎌야 했던 그 시절이었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어떠했겠어? 


굳은 결심을 했지. 꼭 저 여인을 잡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이번에는 꼭 총각 딱지를 떼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몇 글자를 적은 뒤 종이를 찢어 그녀에게 건넸지. 그녀는 냉큼 받을 줄 알았는데 약간 주춤거리더군. 평소의 나라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을 거야. 암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지. 소크라테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거든. 하지만 그날은 달랐어. 원인을 알 수 없는 강한 자신감이 나의 통제를 벗어났거든. 세상의 모든 여인이 나를 끔찍이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심한 착각을 품을 수밖에 없게 만든 멋지고 광택 나는 정장. 나는 당당하게 그녀의 앙증맞은 손을 잡고 나의 쪽지를 건넸지.


물론 그 쪽지에는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적혀있지. <디토텐> 카페 일 층. 저녁 7시. 나는 일 층에다 밑줄을 쫙 그었지. 왜냐하면 그 카페는 모두 4층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즉, 모든 층이 카페인 거지. 내가 그 카페로 정한 이유는 간단해. 친구에게서 들은 정보가 있거든. 일 층은 그냥 개방된 보통의 카페야. 뭐, 스타벅스 같은 곳이지. 2층은 약간의 칸막이가 있고 파스타 같은 음식과 맥주, 칵테일 정도를 음미할 수 있지. 인테리어 조명이 있고 일 층에 비하면 약간 어두운 편이지. 3층으로 올라가면 조명은 더욱 어두워지고 칸막이는 더욱 촘촘해지지. 양주와 안주가 제공되지. 음악은 크고 신나지. 그리고 마지막 4층. 그래 너가 생각하는 바로 그거야. 완전히 밀폐된 공간. 음악은 끈적끈적하지. 중저음의 색소폰이 은은하게 각각의 공간을 감싸며 흘러내리지. 


마저. 너가 상상하는 그것. 과도한 스킨쉽으로 이끄는 황홀한 칸막이. 만약 너가 1, 2, 3층을 모두 거쳐 이곳까지 올라왔다면 너는 알코올이 증폭한 본능에 중독된 채 헬렐레하며 그녀의 피부에 집착하는 한 마리 귀여운 범고래로 변신해 있음을 느낄 거야.


그리고 그날. 그래. 내가 자신 있게 말했잖아. 내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기이하고 짜릿했던 그 날이라고. 자정 알람이 은은히 메아리치던 그 순간 우리는 칸막이가 주는 안락함에 젖어 뜨겁게 서로의 혀를 탐닉하고 있었지. 그리고 모텔로 향했지. 당연한 절차 아니겠어? 나는 비로소, 마침내 내 친구들이 그렇게 입이 마르게 자랑하던, 그동안 내 귀에 대고 고통의 망치질을 해 마침내 내 영혼까지 멍들게 했던, 그 러브모텔의 내부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관찰했지. 아! 정말이지, 그 황홀함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후드득 떨려. 내 안의 주홍글씨.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그 총각 띠를 마침내 뗀 거지.


나는 그때를 표현한 가장 멋진 것을 알고 있어. 이것과 아주 흡사하지. 이효석의 그 유명한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그래, 바로 그거와 아주 흡사해. 장돌뱅이 허 생원이 주야장천 이야기하고 회상하는 바로 그것. 첫 경험. 세상을 다 가진 그 쾌락의 꼭짓점.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그 절정의 안도감. 나는 밤새도록 잠 한 숨자지 않고 그녀에게 아낌없이 내 모든 것을 다 주었지. 그리고 거의 산 송장이 된 채 숙소로 돌아온 나는 거의 사흘 정도를 누워있었지. 


그 사흘 동안 내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아무튼 확실한 거는 하루하루가 갈수록 그녀에 대한 나의 끌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거지. 즉,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휴지통에 버리고 말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병신같은 짓이었어. 후회막급이지. 얼마든지 더 즐길 수도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었는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어. 뭐랄까 그냥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어. 


그런 거 있잖아. 산악 그랜드슬램 같은 거. 세계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한 최고의 산악인. 하지만 그도 첫 등반에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을 거라는 거지. 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날씨, 훌륭한 가이드를 만나, 뜻한 것보다 손쉽게 등반에 성공했다면 그의 두 번째 등반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을 거야. 나도 그런 거지. 의외로 쉽게 등반을 하자마자 간악함이 끝 간 데 없이 솟아올랐던 거지. 그래서 좀 더 멋지고 좀 더 기대치에 부응하고 좀 더 섹시한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허황한 믿음을 갖게 되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때 그 여자에게 만족하고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그랬으면 내 인생은, 어찌 보면 좀 지루하거나 심심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성범죄 전과자로 낙인찍힌 밑바닥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지. 하지만 어쩌겠어. 모든 가치 있는 순간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법. 그러니 그게 인생이지. 삶이 모범 답안처럼 그렇게 깍듯하고 반듯하게 구성되어 있다면 그건 인간의 인생이 아니지. 그냥 머스크 형님이 말씀하신 데로 그건 그냥 시뮬레이션 된 세상의 꼭두각시일 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어두운 이야기


자, 이제 나의 어두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해. 궁금하지? 


내가 어쩌다가 빛보다 어둠, 평온함보다 분탕함, 행복보다 고통, 희망 보다 절망, 정직보다 거짓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아니지, 그 평범보다 더 한심했던 내가 이런 추악한 인간으로 낙인찍혔는지….


하지만 그에 앞서 잠깐…. 헤헤헤…. 그래, 미안해. 나에 대해서…. 즉, 나의 배경에 대해서 나의 경력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미안해. 하지만 이 부분도 꽤 재미있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지는 마. 알겠지. 자, 그럼 시작한다.


나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어. 비록 지방이지만 꽤 명문 있는 국립대였으므로 걱정한 것보다는 쉽게 직장을 잡을 수 있었지. 아, 물론 대기업은 아니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이력서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리고 일차 서류전형에서는 모두 합격했지. 왜냐하면 내 학업성적이 아주 좋았거든. 


내 자랑은 아니지만, 소싯적 고향에서 신동으로 이름을 꽤 날렸거든….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하지만 문제는 면접이었어. 내가 그랬잖아. 말더듬이라고. 그래 그게 나의 첫 사회생활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 아니 어찌 보면 내 인생을 갉아먹은 가장 큰 장애였어. 학창 시절 항상 불안했거든. 특히 고등학교 중학교 때. 발표 시간 말이야. 혹은 일어서서 교과서 읽기 같은 거 말이야. 늘 불안에 떨었지. 그리고 실제로 딱 한 번이지만 그 고통을 몸소 겪기도 하였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정말이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어. 국어 시간이었는데, 그때가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선생이 나를 지목하며 읽기를 시킨 거야.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가 하얗게 텅 빈 상태에서 한 줄의 문장을 마치 무한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계속해서 반복했지.


그 그 그 그 그러니까 까 까 까 까 나 나 나 나 나 나 는 어 어 어 어….


교실에 정적이 흘렀어. 하지만 그 정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정적이 절대 아니지. 모든 친구. 그래 내 친구들. 매일, 같이 수업받고 밥 먹고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그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웃음을 참기 위해 극한의 입 틀어막음을 애쓰는 그런 정적이었지. 그러다 결국 한 녀석이 터졌지. 절대 참을 수 없는 웃음. 그러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터져 나온 거야. 그래 그 웃음. 그래, 그건 절대로 다른 이들은 경험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이지. 나는 그 순간,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 만약 학교 옆이 마포대교였다면 정말로 뛰어들었을 거야. 퐁당.


그런데 정말로 나를 화나게 하고 미치고 폴짝 뛰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하 참!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러니까 내가 성희롱 죄로 첫 재판을 받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지. 나를 맡은 국선변호사가 말더듬이였던 거 있지! 하! 참! 내! 아니 어떻게 말더듬이가 변호사를 할 생각을 한 거지? 말로 벌어먹는 직업이잖아! 톰 크루즈 주연의 <어퓨굿맨> 영화도 안 본 거야? 수려한 말로 악당을 골로 보내는 그 통쾌한 장면 말이야! 


만약 톰 크루즈가 말더듬이였다고 가상해봐! 어떻게 되겠어? 아마 그해 최고의 코미디 영화가 되었겠지. 그래, 그런 거야. 나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을 나의 변호사가 얼굴 두껍게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정말로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어. 그가 말더듬이였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뭔지 모르겠지?


바로 그건, 그가 변론을 막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그가 더듬더듬하며 나를 변호하는 그 순간, 모든 이가 웃음을 참고 있는 그때, 빵하고 첫 번째로 웃음을 터트린 게 바로 나라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최소한 나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나는 우리 변호사의 고통, 절망, 공포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아파하는 같은 부류잖아. 그런데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가장 먼저 터진 거지.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지. 판사는 내가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았다고 본 거야. 가중처벌. 괘씸죄. 법이 허용한 모든 형량을 꽉 꽉 채우고 말았지. 


아! 하! 하! 하! 그렇지 이 얘기는 조금 뒤 나중에 자세하게 알려 주도록 하지. 그래,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지. 마저. 내가 막 입사한 그때로 돌아가도록 하지. 아무튼 나는 대기업 면접을 모두 회피하고…. 그래, 마저, 나는 회피했어. 나도 그 말더듬이 변호사처럼 세상의 비웃음과 맞서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지. 비굴한 내 인생. 결국 단체 면접을 하는 대기업에는 모두 가지 않았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아주 조그마한 스타트업 회사였어. 


사장과 개발자 네다섯 명. 경리 여직원 한 명. 나는 온라인 노래방 개발을 맡았지. 즉, 나의 직업은 프로그래머지. 내가 그랬지? 나는 천재라고. 그래, 확실히 머리 쓰는 쪽으로 다른 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사실이야. 나의 부실한 구강 구조가 나의 뛰어난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적절히 표현을 잘 못 하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야.


내가 얼마나 뛰어났냐고?


일례로 바둑을 들 수 있지. 나는 바둑책 몇 권 읽고, 실전 경험, 한 두어 달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추어 초단으로 인정을 받았어. 대단하지? 만약 내가 10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면 아마 이런 제목의 신문 기사가 실렸을 수도 있었을 거야. 


<스승 이창호를 뛰어넘은 세계 최고의 기사 조필호 9단> 


아무튼 나는 회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방 시스템의 핵심 기능 – 노래 반주에 맞추어 가사 자막에 표시하기, 노래 실력에 따른 점수 산정하기 –을 담당하게 되었고 훌륭하게 개발을 마쳤어. 그리고 곧 우리 회사는 온라인 노래방 1위 자리를 차지했지. 나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 순간이지.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나는 곧바로 팀장으로 발탁이 되었어. 사장이 나를 끔찍하게 아꼈지. 어느 정도였냐고?


우선 사장이 온라인 노래방을 기획하게 된 이유부터 잠깐 짚고 넘어가도록 하지. 왜냐하면 그의 성향이 내 인생의 망가짐에 기초 자양분이 되었거든. 그러니까, 그거야. 사장은 음주·가무를 좋아했어. 즉, 노래방을 즐겼지. 그러다 어느 날 떠오른 거지. 


‘아! 이 좋은 노래방을 인터넷으로 매일 공짜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장의 생각을 고스란히 실현해 줄 위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어. 즉, 나 이전에 몇몇 개발자들이 만들기는 하였지만, 내가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말하자면, 완전 개판이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개발 보다 관리자의 노력이 더 필요한 시스템. 바로 그런 거지. 나의 전임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관리자를 악몽으로 끌고 갔거든.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노래 가사의 싱크를 일일이 사람이 듣고 맞추어야 했어. 한마디로 우스운 거지. 그게 무슨 시스템이야? 그냥 쌩 노가다지!


하지만 나의 시스템은 완전 자동이었지. 즉, 음원과 가사를 구매해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만 하면 곧바로 싱크율 100%의 노래가 관련 동영상과 함께 흘러나왔지. 그러니 사장이 나를 끔찍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 게다가 대규모 IT 전시회장에 출품한 우리 노래방 시스템이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투자 문의가 이어지기 시작한 거지. 그야말로 나는 삼국지의 제갈공명 같은 존재였던 거야!


이듬해 회사를 강남역세권 신사옥으로 옮겼어. 회사 직원도 40명으로 갑자기 불어났지. 나는 최연소 개발 이사가 되고 빵빵한 스톡옵션을 보장받았어. 그렇게 되자 배가 부른 사장은 그이 취미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변질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의 동반자로 내가 뽑힌 거지. 그래, 그런 거야. 운명적으로 그렇게 엮이게 되어 있는 거였지. 이제 너도 나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잖아. 그래. 나는 숙맥이고 여자 경험도 거의 없고 그저 푹신한 의자에 처박혀, 일반인들이 보고 있으면 현기증에 두통까지 쏟아질 만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빠져, 늘 날이 밝을 때까지 일만하고 있었지. 그런데 사장이 유혹한 거야. 같이 놀자고. 


그래, 그래서 시작한 거야. 강남의 초호화 룸살롱 탐방 말이야. 정말이지 연예인 뺨치는 미모의 여인들이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갖은 애교로 회삿돈, 아니지, 투자자의 돈과 나의 영혼을 쪽쪽 빨아먹었던 거였어. 사장과 나는 궁 짝이 정말 잘 맞았어. 둘 다 여자에게는 환장했거든. 사실 나는 그럴 만했잖아. 너도 잘 알다시피.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했잖아. 그러니 몸이 먼저 느낀 거지. 그러니 남의 돈 쓰는데 있어서 우리는 망설임이 없었어. 쾌락과 향락, 퇴폐와 원초적 본능의 일 년이 그렇게 흘러간 거야. 


하지만 문제가 있었지.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우리의 노래방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무료였어. 물론 최신 유행곡을 선택하면 월정액을 받았지. 하지만 유료회원의 수는 턱없이 작았어. 할 수 없이 화면에 광고를 넣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마저도 신통치 않았어. 즉, 시스템은 더할 나위 없이 우수하지만, 태생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인 거지. 게다가 사장의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이 더해졌으니…. 투자자의 돈이 일 년도 못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어. 


사장의 고민이 깊어졌지. 그러다 내가 제안을 했어. 아주 솔깃한 걸로 말이야. 사장과 나. 즉,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온라인으로 고대로 이식하고 최대화할 수 있는 거였지. 딱 한 가지, 이게 불법이라는 것만 빼면 완벽한 제안이었어. 그래, 마저. 인간의 기본 욕구를, 도파민 극대화를 이처럼 즉석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우리는 이 작업을 아주 은밀하게 시작했어. 개발실을 시 외곽 외딴곳에 두었지. 그리고 내가 신뢰할 만한, 즉 입이 무겁다고 확신할 수 있는 개발자만 따로 초청했어. 그렇게 우리의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교활한 작업이 시작된 거였어. 우리는 이 시스템을 <노예팅>이라고 불렀어. 좀 더 정확한 용어로 하자면 <음란채팅>이 되겠지. 물론 세상에 드러낼 때의 이름은 확 달라질 거야. 아주 온화하고 건전한 이름으로 말이야. 예를 들면 <행복팅> <친밀팅> <사랑팅> <해피팅> 등등.


우리 개발팀은 4개월의 개발과 1개월의 테스팅을 거쳐 완벽한 화상채팅 시스템을 결국 완성했어. 정말이지 내가 봐도 자랑스러운 결과물이었어. 나는 우리 시스템이 시범 운영을 하던 날 너무 좋아 눈물까지 쏟을 뻔했어. 다만 한가지.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지. 


아무튼 시스템이 준비됨에 따라 사장은 두 번째 필요 작업을 시작했어. 바로 여자 공급이었지. 하지만 사장에게 이건 무척 쉬운 일이었어. 그동안 전국의 숱한 룸살롱에 뿌려놓은 종자가 엄청났던 거야. 그쪽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거의 한물간 여자, 인물이나 몸매가 좀 달리는 여자, 중국의 조선족 혹은 백수로 놀고 있는 여자들까지 은밀하게 모집하였어. 그리고 폐업한 피시방을 인수하여 칸막이를 설치하고 각 방에 여자를 한 명씩 배치했지. 


마침내 우리의 노예팅 아니, 행복팅이 오픈하였어. 결과는? 우리가 기대한 그 이상이었지. 하하하. 


화상 채팅에 참여한 남자가 지급하는 돈의 액수에 따라 여인들이 걸친 옷 가짓수가 달라졌지. 그리고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프라이빗 채팅으로 전환이 되면서 진정한 음란채팅이 완성으로 치닫는 거였어. 그야말로 돈이 쏟아지기 시작했어. 나와 사장은 관리자 화면에 실시간으로 찍히는 금액을 쳐다보며 감탄과 경탄을 금치 못했지.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참, 세상에 바보가 이렇게 많다니~’


사실 내가 보기에는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거였거든. 저게 뭐라고? 그냥 액정 화면에 

벗은 여자가 남자 시킨 데로 흉내 내는 것뿐인데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돈을 쓰는 걸까?

그냥 야동을 보면 될걸? 왜 저러는 걸까요?


아무튼 우리는 신이 났지. 사장과 나의 은밀한 취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실탄을 받은

거니까. 우리의 퇴폐 향락은 더욱더 탄력을 받고 서서히 그 끝은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거야. 또 한 번의 쾌락과 향락, 퇴폐와 원초적 본능의 일 년이 그렇게 흘러간 거야. 


하지만 그거 알지? 시간은 세상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거. 그거 어디선가 들어보지 않았어? 


어둠에 갇힌 채, 마냥 지하 깊숙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우리의 노예팅 아니 행복팅은, 하지만 온라인 특성상 그 인기만큼 세상의 전면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결국 많이 이들이 꼬리를 물고 이 새로운 시스템에 발을 들이면서 우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


즉, 인기가 오르며 오를수록 우리의 지갑은 두둑해지지만 동시에 우리의 위험은 그만큼 가파르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전국의 관할 경찰, 사이버 수사대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는 거는 불을 보듯 빤한 거잖아? 알잖아? 사이버 수사대는 지역 경계가 없다는 거. 즉, 창원 경찰이 서울 용산 사무실을 덮칠 수도 있거든. 그러니 전국의 숱한 사이버 수사대가 나의 찬란한 시스템에 접속해 기웃거리고 있었던 거지. 뭐 실제로 우리 행복팅을 이용한 경찰들도 제법 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내 졸개에게 한가지 명령을 하달했지.


그게 뭐냐고? 그건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사이트를 만드는 거였어. 우리의 목표는 1,000개의 사이트. 얼핏 보면 꽤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세상에 이것만큼 쉬운 것은 없지. 개발자들의 영원한 행복 키워드. 바로 Ctrl + c (복사), Ctrl + v (붙이기) 인 거지. 그래 그거야. 그냥 사이트 소스 복사해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덮은 다음, 도메인에 붙여 넣기만 하면 그만이지. 디자이너 작업 한 두어 시간, 도메인 작업 대략 한 십 분 정도.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한 사이트 하나가 탄생을 하는 거지. 그저 우리는 도메인만 열심히 검색해서 사면 되는 거였어. 즉, 하나의 뿌리에 – 우리는 이것을 전문 학술용어로 데이터베이스라고 하지 – 천 개의 가지가 생기는 거지. 


결국, 우리는 일 년 새 천 개가 넘는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지. 경찰의 눈을 분산시키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하다가 일부 몇몇 사이트가 인기를 끌어 전면에 뜨거나 그 결과 경찰의 수사를 받는 낌새가 느껴지면 우리는 가차 없이 그 사이트를 폐쇄하는 거지. 그러면 그 홈페이지를 애용하던 멍청이들은 잠시 혼란에 빠지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 왜냐하면 우리 시대 최고의 선물, 검색의 일인자 구글이 알아서 유사한 사이트를 안내하게 되어 있거든. 그리고 노예팅 회원들은 곧 알게 되지. 자신의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고스란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적립금도 남아 있고 찜해둔 여인들도 똑같다는 것을…. 그러니 세상의 바보들은 다시 우리 사이트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거든.


그런데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었어?


어? 내가 그만둔 것을 너가 어떻게 아는 거야?


당연히 알지. 이 바보야!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만난 사이야? 우리가 나눠 마신 술병만 널어놓아도 마장동까지 가겠다. 


아! 그렇지! 헤헤헤. 미안해. 요즈음 머리가 텅 비어서 그런지 자꾸 잊어버려. 아무튼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연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행복팅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갈게.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거든.


아, 미안해. 그래 계속해.


너가 비전문가이니까 내가 아주 쉽게 설명해보게. 그러니까 이런 거야…. 같은 뿌리에서 자란 천 그루의 아카시아. 비유하자면 그런 거야. 우리 사이트 말이야. 그런데 경찰들도 우리 사이트를 지속해서 모니터링 하면서 느끼는 거지. 아니 깨달을 수밖에 없지. 사이트의 디자인과 이름, 도메인은 달라졌지만 늘 같은 아이디, 변함없는 적립금 기록, 같은 여자 등등…. 즉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사이트를 개설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그들도 알게 된다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한 거야? 뭐 해결책을 찾은 거야?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 중의 천재가 아니겠어. 


그래서? 어떻게 한 거야?


팔았지. 솔루션을. 우리 행복팅 솔루션을 돈을 받고 분양한 거지. 하나당 일억씩. 


와! 일억이나 받고 팔았다고? 그거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이 뭐겠어? 수요와 공급의 법칙. 공급이 달리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지. 우리 노예팅을 사겠다는 인간들이 엄청 많은 거야. 물론 그 소비자들은 대부분 질이 안 좋은 부류지. 즉, 음지에 숨어서 돈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종류의 집단들이지. 잘 알잖아? 그런 쪽에 한동안 몸담고 계셨으니 어련하겠어.


그러니까 자네 솔루션을 사 간 사람들이 조폭, 사채꾼, 사기꾼, 노름꾼, 여자 장사꾼 뭐 이런 애들이라는 거지?


정확히 그렇지. 어둠의 자식들. 그들은 비상하게 돈 냄새를 잘 맡거든. 한 달에 평균 10개씩 우리 솔루션을 팔아 재꼈어. 


와! 그럼 한 달에 10억씩 통장에 꽂히는 거네. 그것도 세금 한 푼 안 내는 돈으로.


그렇지. 완전 현찰 박치기지. 어떤 때는 사이트 운영 수익보다 솔루션 판매 수익이 더 높았어. 게다가 더 좋았던 점은…. 이제 완전히 다른 뿌리라는 거지. 즉, 별도의 독립 서버에서 운영하는 별개의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거지. 그러니 우리에게 향하던 모든 사이버 수사대의 시선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더더욱 좋았던 점이 뭔지 알아? 특히 내게.


질문하지 말고 그냥 말하라니까. 


아, 미안해. 이게 습관이 돼서…. 헤헤헤…. 우리의 솔루션을 사간 자들은 대부분 컴맹이야. 당연하겠지. 사람 협박하고 패는 거야 할 줄 알았지, 그들이 우리 시대 최첨단 기술을 어떻게 알겠어? 


즉, 당분간은 관리를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리고 그 관리의 책임자는 바로 나지.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 서버가 다운되거나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 누굴 제일 먼저 찾겠어? 당연히 나지. 그러니 내게 잘 보여야 하는 거지. 다시 말해 나는 그들의 귀하신 몸이 된 거지. 그 결과는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 두둑한 뒷돈은 물론이고 각종 향응 제공이 이어지더군. 즐겼지. 퇴폐스러운 삶. 바로 그거지. 불법과 나쁜 놈들에게 둘러싸여 쾌락의 끝을 달렸지. 그런 얘기도 있잖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니지 이건 비유가 적당하지 않은 거 같아. 아무튼 숙맥이 한번 맛을 들이니 헤어나지를 못하는 거지. 


이때쯤, 나의 일과를 대충 알려줄게. 


아주 늦게 일어났지.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해피팅이 가장 북적거리는 시간은 새벽이거든. 그러니 서버 다운도 그 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하지. 욕정에 굶주리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가 봐? 온라인 게임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돼. 그러니 관리자는 다른 시간을 몰라도 새벽에는 꼭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거지. 물론 내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는 아냐. 나는 대장이니까. 그건 졸병들이 담당하지.


그저 나는 편안히, 오피스텔에서, 그쪽 업체에 종사하는 여인과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으면 되는 거였어. 웬만한 시스템 문제들은 졸개들이 해결했지. 서버 다운되면 부트하면 되고 적립금 날린 유저가 있으면 다시 채워주면 그만이지. 나는 일종의 비상 대기라고 보면 편할 거야. 그러다 가끔 아주 심각한 에러가 발생하곤 하지. 서버가 완전히 다운되었거나 사이트가 망가져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뭐 그런 것들이지. 혹은 해커가 들어와서 난장판으로 만들기고 하고…. 그러면 내가 나서는 거야. 


어떻게 보면 종합병원 응급실과 비슷하지. 웬만한 건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다 해결하잖아. 아주 심각한 거 빼고는 말이야. 나는 그 심각한 것을 해결하는 맥가이버와 같은 존재지. 우리 솔루션을 사간 인간들이 어떤 부류라고 내가 얘기했었지? 그래. 질이 안 좋은 놈들 뿐이지. 그리고 그런 놈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돈에 더럽게 민감하다는 거야. 아, 물론 자본주의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동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서버가 다운되었다고 한번 가정을 해봐. 적게는 시간당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앉은 자리에서 까먹게 되는 거지. 그러니 이놈들이 그냥 있을 리가 없지. 이제 그 심각성을 약간 체험할 수 있겠어? 내가 그 시간에, 그 중요한 시간에, 서버가 다운되었고 졸개들이 해결을 못 하고 쩔쩔매고 있는 상황에, 내가 퍼질고 자고 있었다고 가정해봐. 놈들이 당장 사시미 칼 들고 쳐들어 와 내 배를 난도질해도 할 말이 없는 거지. 아, 물론 이것은 좀 과장을 섞은 거지만….


그러니 내가 잘 수 있겠어? 당연히 못 자지.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뭐 어떡하긴? 그냥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며 온밤을 지새우는 거지. 뭐, 별수 있겠어. 하지만 그래도 잠이 쏟아진다 싶으면 잠 깨는 약을 받곤 하지. 그게 무슨 약이냐고? 알잖아! 마 머로 시작하는 그거 있잖아. 왜 할리우드 영화 보면 자주 등장하잖아. 빨대를 코에 꽂고, 투명한 테이블에 도루코 면도칼로 적당히 분배한 하얀 가루를 훅훅 들이켜는 모습…. 그래…. 그와 유사한 약품들이지 뭐.


그래서 중독이 된 거야? 


그래, 그렇다고 봐야지. 너도 잘 알잖아? 쾌락의 끝은 중독으로 마무리된다는 거. 단지 중독의 종류만 틀린 거지. 섹스, 마약, 알코올, 도박, 성형, 쇼핑, 운동, 다이어트, 일, 게임, 살인까지. 


그럼 너는 섹스와 알코올, 마약에 중독된 거야?


그땐 그랬지. 


뭔가 끝이 보이는 거 같은데.


그렇지. 너도 느낌이 싸하게 오는 거지? 내가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대충 가닥이 잡히지? 하지만 거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숨어 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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