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의 병사
“넌 아이를 낳을 수 없어. 그러니 목숨을 버려서 일하고 싸우다 죽어야 한다.”
병사는 어릴 적에 그렇게 말하던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물집이 잡히고 상처투성이인 손으로 장창을 고쳐 쥔다. 서라벌 근처 숲에서 베어낸 긴 소나무로 만든 장창에 베여 손가락 둘을 잃은 병사이기도 했다. 장창을 쥐고 나서 소금에 절인 주먹밥과 마를 먹을 수 있었다.
대열을 맞추고 선다. 길기로 너 댓 장은 되는 장창들이 빽빽이 늘어선다.
고향엔 여자와 아이만이 남아 농사짓고 세금을 내고 있다. 그들은 대를 잇고 신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병사가 다른 이들과 함께 번갈아가면서 안았던 여자의 살 내음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고 병사는 투구 아래서 히죽 웃었다.
장창은 길었고 무거웠다. 어께로 버티고 팔꿈치에 끼고 다리로 견디며 다른 병사들과 몸을 붙여 장창을 지탱한다.
머나먼 곳에서 온 군대가 바닷가에 늘어서있다. 기병이다. 두려움이 일지만 화랑들은 물러날 곳은 없다고 했다. 당나라의 군대에 깨지면 어머니는 죽을 것이다.
병사가 자신의 창을 배운 데로 세운다.
적이여 어서 오라.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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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내 소설. 아래가 코파일럿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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