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자꾸 해석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되는데 그게 하나의 기준이 되면 안되는 것이다


기묘한 등단제도, 평단의 입김이 한 몫 하는 거다


시나리오를 예로 들어볼까?


90대만 하더라도 장 자끄니 장 뤽 고다르니 레오 까락스니 이런 애들의 꿈 꾸는 듯한 영화들이 참 많았다 


이 장르에도 혀로 먹고 사는 애들은 늘 있어왔어서 거기 또 그들만의 리그가 생겼던 거지


그런데 이건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의 공허감, 절망감의 발로였던 것이지 영화의 발전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플롯들을 안티플롯이라고 한다


요즘 좋은 영화의 기준은 뭐냐? 관객 동원수가 절대적이고 평론가들의 평이 그걸 부연한다


영화사 100년 동안, 이미 해먹던 것에서 더이상 할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 플롯의 해체 같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면 


지금쯤 베를린 천사의 시 8탄이나 퐁네프의 연인들 13탄이 나와 극장에 걸리고 있겠지


니들은 이런 영화들이 "영화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시로 돌아와보자


인간이 시를 읽는 이유는 보고 느끼고 즐기기 위함이다


시가 적힌 책을 돈을 주고 사 보면, 그 값으로 시인이라는 예술가는 과일과 빵을 사 먹는 것이다


예술이란 늘 이래왔던 거다


나도 예술가이면서도, 이 본질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형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장르는 거기 무슨 칼 융이니 뭔 개같은 것들이 들어있다고 한들


그런데 자기 읽은 것으로 시를 쓰는 것은 얼마나 가난하고 조악한 시인 것이냐


독자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한 장르의 결말은 딱 하나 뿐이다


자유시 서정시의 문제가 아니다 김소월 박목월 이상이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한다 해도


독자와 같이 누리는 진실, 이 둘 중 하나만 없어도 그건 그냥 잉크 낭비 일 뿐이다


시는 끊임없이 쇄신해야하는 쌍라이트 형제 이후의 비행기나, 애플의 아이폰이 아니라 원래부터 예술장르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