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나 있었다. ‘두려움을 이겨내세요’라는 조언이 꼭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헛웃음이 났다.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을 경계하고, 사랑하고, 밀어내고. 그게 내가 맺은 관계의 형태였다. 곁을 내어줄수록 나를 파먹고 들어올 테니. 그게 멀어지는 이유가 될 테니. 손에 힘을 빼고 흘러나가는 이들을 가만히 두었다. 내가 붙들고 살 수 있던 것은 후회, 미련, 그리움처럼 철이 지나야만 통증이 생기는 흉터뿐이었다. 외로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죽은 이의 특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해학과 근원지가 같은 말이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대요. 듣고 무너졌어요. 왜 더 지독하게 숨기지 못했을까. 화는 내가 내고 있는데 왜 미안할까. 참 역겨운 게요, 더 화가 나더라고요. 어떤 점이요? 연민이나 동정도 사랑의 한 종류 같아서요. 그게 비중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못나서요.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나 하나 따져도 돼요? 살살해주면요. 정말로 솔직했던 적은 있어요? 치부를 드러낸 뒤에 상대의 진심이 연민이나 동정이 아닐까 혼란스럽다는 건데, 정말 솔직한 적은 있었는지 생각해봐요. 사실은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일종의 구원을요. 구원이요? 거창한 게 아니고 그런 모습을 드러내도 사랑받고 싶은 거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그럴까요. 약간 열이 올랐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요. 그 사람의 심연을 전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랑할 수 있나요? 그게 안전하니까요. 냇가에 발 담가본 적 있어요? 처음엔 물을 들여다보고 한발 한발 걷는데 둔탁한 돌의 촉감과 함께 안정적인 걸음이 쌓이면 그냥 앞을 보고 걷게 되잖아요. 뾰족하고 날카로운 게 밟힐 거라는 두려움은 멀어지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신뢰예요. 한발 한발 불안하게 걸으면 결국 물에서 나와야 하니까요. 이어지는 이야기에 어떤 벽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사람의 깊이가 닿질 않아서 한참을 허우적대며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마음이 요동치는데 한편으로는 고요해졌다. 그게 너무 이상하고 낯선 감정이어서 목이 타지도 않는데 컵을 계속 들어올렸다. 제 생각은 그래요. 흘러가게 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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