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피 저녁 깨를 수놓던 노을은
이내 밤의 그림자에 갇힌 듯
하루를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네
물구나무선 나무들과 풀들도
허물어봤자 여름이지
땀 꽤나 닦아 봤을 너저분한 수건
여름과 겨울의 사이에서 널 만난 건
하나의 행운이었을 테지
미친듯이 땅을 갈고리로 패봐도
땀보다 먼저 내릴 비를 숭고히 받아들여
내 쇠고랑의 깊이는 밤보다 옅을 테지
오늘 밤은 달이 뜬다는 얘긴 없었어
달이 뜨기 전부터 세워놓은 장대에는
이미 그림자가 기울었는데
그 그림자는 내 낯과 거릴 멀리하지
한층 밝아 오기에, 우리들은 그리 친하진 않으니까
친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을 그림자에서
밤을 홀딱 새워, 또 지겨워진 촛불은...
그리고 나서야 진정한 밤이 오지
초승달 기운에 넋두리를 반길
그러한 밤에는 말야
두 눈을 뜬 채 지새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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