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쇄원에 대한 문화유산적 평가

소쇄원에 대한 문화유산적 평가는 두 가지 방향을 통해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첫 번째는 소쇄원과 관련된 경관적 가치와 관련된 시적 가치일 것이다.

소쇄원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명승으로 유명한 곳이다. 소쇄원의 지리적 현황부터 보면, 소쇄원의 남쪽에는 무등산, 뒤쪽에는 장원봉이 있어 산이 소쇄원을 보호하는 듯한 모양새가 나타난다. 주변에 많은 사찰과 누정이 위치하는 것만 봐도 이 일대가 과거부터 상당한 명승지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소쇄원의 자연경관을 노래하는 소쇄원 48, 30영이 지어졌던 것이다. 소쇄원 48영과 30영의 내용을 보면, 소쇄원의 자연풍경에 대해서 가감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시와 소쇄원도를 통해 우리는 소쇄원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쇄원의 뛰어난 자연경관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으며,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역시 우리에게 잘 남아있다. 자연경관과 시는 미래에도 우리의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2. 소쇄원에 대한 느낀점과 감상

소쇄원에 대한 느낀점 역시 두 갈래로 서술하고 싶다. 먼저, 소쇄원의 자연경관과 주변현황이다. 소쇄원은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이며, 앞에는 상당히 큰 호수인 광주호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소쇄원을 찾고 있다. 나는 자연경관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것을 보려고 멀리 올 정도로 중요하게 생가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쇄원은 단순히 자연경관만 뛰어난 곳이 아니라서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소쇄원은 광주 중심부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는 데까지 최소 30분이 넘게 걸리는 외진 지역이며, 광주를 제외하면 근처에 큰 도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그로 인해 이 일대가 큰 상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쇄원 근처에서 상업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해나간다. 필자는 이 하나만으로도 소쇄원은 가치가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역사적인 가치이다. 소쇄원을 만든 사람은 소쇄공 양산보로 호남에서 꽤나 유명했던 사람이자 기묘사화로 사사된 조광조의 제자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보고 그가 지은 시를 본다면 그가 얼마나 스승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경관을 노래한 시를 보면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화려한 수사를 이용하지는 않고 있다. 이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쇄원은 당시 선비의 절개와 의리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당대의 절개와 의리는 많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기묘사화가 발생하기 약 60년 전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비들이 동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의리보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계유정난의 최대 공신 중 한 명인 한명회가 죽은지 고작 30여년 밖에 안 되던 상황으로 의리를 배신한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들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기묘사화를 일으킨 훈구파는 이들의 잔재였다. 양산보는 뛰어난 문인이었기에 기묘사화 이후 다시 출사할 수 있었겠지만, 스승을 생각하고 의리와 절개를 지키며 이곳, 소쇄원에 남아있었다. 소쇄원 자체가 의리이자 유교적 상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쇄원을 구경하면서 든 생각은 아름답다였다. 내가 조선시대의 건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도 하고 소쇄원에 남아있는 건축물이 별로 없었기에 건축물과 관련된 감상은 시골과 잘 어울린다?’, ‘친구들과 모여서 사진 찍기 좋은 고풍경이네정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쇄원에 있는 건축물을 구경하고 자연경관을 함께 보면서 걷고 또 걷으며 친구들과 함께 사진도 많이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다음에 이와 비슷한 곳을 거닐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미리 검색해보고 찾아오는 것이 나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