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야,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은율이와 혜율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 제일 중요한 건, 난 너라는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 결혼했을까? 사실 나는, 널 보면 정말 혼란스러워. 너의 과거의 행동, 기억, 사건. 모두 내가 아는 네가 겪었을 리 없었을 것 같아서, 네가 했을 리 없는 행동이라서 네가 아닌 거 같아. 솔직하게 말하면, 네가 그런 사건을 겪고, 그런 행동을 했던 게 절대 아니길 바라.
연지야,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 그런데 가끔은 그게 너무 힘들어. 점점 드러나는 너의 과거들을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나 유약하기 때문이야. 나, 네가 외로움은 태양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내 삶에 구원이 온 줄 알았어. 드디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나타난 줄 알았어. 그런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네 존재가, 네 영혼 깊은 곳의 외로움이 내가 말했던 그림자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몰랐어. 내가 오만했던 거야. 난 이제야 그 뜻을 알았어. 사실은 네가 나보다 더 외로운 존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유약해서 네 외로움을 절대로 감당하거나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어.
연애 때부터 지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는 나에게 어디까지 말했어?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남아있어? 난 네가 앞으로 말해야 하는 영혼의 밑바닥은 어디에 있는지, 네가 내게 꽁꽁 숨겨 놓았던 절망의 구덩이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네가 함께 그 구덩이에 빠지자고 말했을 때, 그땐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그 곳에 빠져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함께 빠지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얼마나 실망할까?
나에게 어디까지 말한 거야? 어떤 사실이 남은 거야? 나는 그런 사실을 어떤 태도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들어야 해? 그런 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가 깨진 소주병처럼 거칠고 날카롭게 나의 영혼, 사랑에 대한 믿음. 그런 소중한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어.
나는 네가 참 좋았어. 물론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해. 네가 내 청혼을 받아주었을 때 그 때의 벅찼던 기분. 청혼하기 위해 가졌던 용기. 그리고 네가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사는 곳에, 그것도 그럴듯 한 신혼집도 아닌 곳인데 결혼해주었다는 고마운 마음. 네가 나의 구원이라는 게 확실해졌을 때 영혼에 차오른 행복과 충만함. 그 모든 게 나에게 남아있어. 그런데, 난 정말 겁이나. 그런 모든 게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려워. 네가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준 것처럼, 나도 내 영혼을 바쳐 네 존재를 구원해주고 싶은데, 너를 알게 될수록 내가 다짐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머리가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건가 하고 의문이 들 때도 있어.
연지야, 나는 매일이 두려워. 네가 진지해질 때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번엔 또 어떤 얘기를 할 지, 내가 그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 지, 만약 감당하지 못했다면 내게 실망해서 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술을 마시러 가는 걸 두고 보게 될 자명한 사실들이 네가 내 목을 직접 조르는 것보다 두려워. 너와 그런 대화를 할 때마다 겪는 일련의 대화 방식, 점점 묽어지는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무너지고 바스리지는 우리의 영혼. 그런 것들이 익숙해지는 내가 증오스러워.
너를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나 속 좁은 인간이라서 미안해 연지야. 네가 말했던 게 생각나, 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다 받아주고 이해해줄 수 있다고 했잖아. 너는 그걸 참 잘 지키고 있잖아. 너는 그 약속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1년이던 10년이던 지킬 수 있다는 걸 난 알아.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어. 자신이 없어. 너를 알게 되는 과정이 영혼이 짓밟히는 것 같아서, 알게 될수록 내 영혼이 지옥 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아서 너무나 괴로워.
부탁이 있어. 이제 네 과거와 사건과 상처에 대해 그만 얘기해줄 수 없을까? 나는 내 안의 네가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지금 내 안에 있는 너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그런 네가 점점 내 안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게 죽을 만큼 싫어. 내가 사랑하는 너를, 내 안의 너를, 지금 이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어. 연지야, 연지로 남아줘. 내 안의 연지가 다른 사람이 되지 않게 도와줘. 내 안의 네 모습이 영원하게 도와줘. 내 소원은 그거 뿐이야. 내가 널 사랑할 수 있게 도와줘. 내가 이런 인간이라서, 내가 너무 유약한 인간이라서, 너를 사랑하기엔 그릇이 너무 작다고 생각해도 좋아. 연지야, 그저 너를 내가 계속 사랑할 수 있게 도와줘. 네게 바라는 건 이거 하나 뿐이야. 너무나 사랑해 연지야. 사랑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구원 이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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